하늘을 향해 피는 꽃 13화

13화 : 마음은 하늘에서 땅으로

by 이원호

13화 : 마음은 하늘에서 땅으로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간호사는 오밤중에 해운대 바다에 허리까지 들어간 뒤 쓰러져버린 나를 사람들이 겨우겨우 끄집어내었다며, 제정신이기는 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핀잔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결국 끝까지 도착하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양실조와 탈수, 발바닥의 심각한 물집들을 제외하고는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다. 그건 두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것도 제외한다면 확실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의사는 다리가 마비될만한 특별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저 정신적인 외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후유증에 불과하니 스트레스받지 않고 푹 쉬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건 3년 전 고등학교 때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은 마비 증상이 찾아왔을 때도 받았던 진단이었다. 그때의 의사도 푹 쉬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랬었고, 마비는 푹 쉴 때마다 점점 더 심해며 의사의 말을 비웃었다. 지금도 가만히 앉아서 쉰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의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의사는 푹 쉬라며 내게 휠체어를 태워 주었다.

병원은 해운대 바닷가가 다 내려다보이는 달맞이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고, 나는 발코니에 앉아서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여행 내내 꿈에서도 그리던 목적지에 결국 도착했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무덤덤함과 짙은 슬픔이 해무(海霧)처럼 나를 뒤덮고 있었다. 결국 살아서 도착해버렸다. 용서도 죽음도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앞으로의 삶도 이리 외롭고 슬플 것을 알았기에 그 도착은 기쁠 수 없었다. 떠난다면 무언가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것은 풍경 밖에는 없었다. 나를 찾고 세상을 찾았건만 그것은 삶도 용서도 죽음도 아니었다.

하반신의 마비는 저녁이 되면 한기를 타고 척추 위로 기어 올라왔다. 고통은 온몸을 저미는 듯했지만, 그렇게 마비가 올라올 때면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몸이 마비되면 정신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상상 속에서 자괴감과 죄책감이 마음껏 자라나 절망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는 농익으며 수천, 수만 개의 씨앗을 흩뿌렸고 그 씨앗들은 또다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마음을 헤집었다. 가슴을 가득 메우며 자라는 그 감정들에 온 몸은 계속 굳어져갔다.


한 달이 지나도 마비에 차도가 없자 병원에서는 정신과 상담을 제안했다. 시간당 20만 원짜리 상담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는 제안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게 치료할 것을 당부했다.

첫 상담 세션에는 4시간짜리 심리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는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상담의사 선생님과 만나보게 해 준다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검사를 받으며 마비와 싸웠다. 검사 도중에 손가락까지 마비가 기어 올라오는 바람에 펜을 놓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온갖 종류의 그림을 그리고 문장을 완성하고 물감 죽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나방 그림을 해석하는 4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휴식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결과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을 뿐이다. 불면증과 우울증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검사가 없어도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의외로 아이큐가 희한할 정도로 높게 나와서 모두가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4시간 동안이나 값비싼 검사를 해서 얻은 결론치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정말로 머리가 아주 좋으며 우울해서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이 다라면 감기약과 초콜릿을 먹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상담자의 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상담 의사 선생님은 그 시답잖은 검사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에 손가락을 괸 채로 열심히 읽으셨다. 방안은 깔끔했고 연한 오렌지 향초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낙서들과 서울대 의대 정신과 박사 학위가 붙어있었고, 책상 위는 가지런히 단정했다. 나는 문득 방 안에 시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시간에 20만 원을 받으며 일하면 그 사람은 시계가 없어도 될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의 손가락에 걸려있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히 반짝거렸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보셨다. 대단히 젊어 보이는 피부와 눈이었다.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듯한 그 모습이 과연 내가 살아온 삶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아했지만 어쨌든 상담을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커튼이 내려오고 오렌지 향초가 켜지자 상담이 시작되었다. 초가 천천히 타들어가는 향기를 맡으며 왠지 심리상담과 점성술이 비슷한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내게 여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고 전개 순서도 상관없지만 가능한 한 기억나는 것들은 다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말이다. 머뭇거리다가 가장 이른 기억인 4살 때의 기억들부터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할아버지 댁에서 자란 얘기와 성당에 다녔던 이야기, 선연이와의 긴 인연, 현진이, 은정이, 형동이, 모든 이야기가 다 단조롭고 조용한 내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오래도록 살아온 내 사랑하는 동네와 첨예하게 외로웠던 학교생활, 나를 지탱해준 소중함, 나를 무너트린 떠나감, 배신감 죄책감 자괴감. 모든 것이 다 이야기가 되어서 스미어 나오고 있었다. 선연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려 6번의 상담이나 잡아먹었다. 나 스스로도 선연이에 대한 내 감정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지난하고 어설픈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연이를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친구로 소중히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운명적 이야기의 여주인공으로 신격화시키는 것인지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 속에서 선연이는 꽤나 모호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은정이에 대한 이야기는 의사 선생님을 아주 즐겁게 했다. 선생님은 무릎을 치고 웃으시며 자기도 그런 딸이 있다고 하셨다. 문득 저 잘 관리된 피부 아래 숨겨진 선생님의 진짜 나이는 무엇일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은정이가 심리학과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자 선생님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었다. 그 모습은 은정이와 참 닮은 것이라 나는 30년 전의 선생님 역시 은정이와 비슷한 모습의 소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상담이 20 세션이 지나갈 때쯤이 되자 내가 두고 떠난 많은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그만큼 많은 것들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어느덧 떠난 지도 3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떠나갈 때만 해도 초여름이었던 세상은 가을로 흘러가기 직전이었다. 늦여름은 그 마지막 광채로 세상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다리가 고장 나고 마음이 마비되어도 펜은 잡을 수 있었다. 어차피 1주일에 2번, 2시간가량 면담을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이야기를 세공하기 시작했다.

늦여름의 열기에 기대어 쓴 그 일련의 편지들은 오랫동안 나를 이루고 지탱하는 근간이 되어주었다. 그 편지들은 병원에서 보내지 지는 않았다. 정신병동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마음 편히 알릴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에 초연하지는 못했다. 병원에서 만난 한 미군 병사는 한국 내의 미군 부대가 법적으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령에 속해있으며 따라서 편지를 보내면 미국 소인이 찍혀서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 편지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내 사정을 딱히 여긴 그는 매달 내 편지를 한 번씩 부대로 가져가서 부쳐주었다. 덕분에 편지를 마음 편하게 쓸 수 있었다.

나는 편지를 어느 장소에서 보낸 걸로 할까 고민하다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를 그 배경으로 선택했다. 병원에서는 조금만 멀리 고개를 내밀면 빛나는 광안대교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거대하고 화려한 다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밤 상상 속에서 병원을 출발한 뒤, 멀리 안갯속에서 빛나는 광안대교까지 걷고 오곤 했다. 때론 꿈속에서 그 다리는 금문교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 마비되어서 직접 갈 수는 없었음에도, 그 길은 내가 참 좋아하는 상상 속 산책 코스였다. 그런 곳에서 편지를 적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첫 번째 여름 편지를 받은 뒤 선연이와 은정이는 모두 미국에는 왜 갔냐며 깜짝 놀랐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두 번째 여름 편지에서는 그동안 담지 못한 긴 진심을 고백할 수 있었다. 선연이에게는 담담히 말했다. 너는 하늘을 닮은 사람이라고, 그렇기에 언제나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은정이에게도 말해주었다. 너는 참 햇살을 닮아있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너는 세상을 밝게 만들고 행복을 주변 이들에게 나눠줄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 두 사람이 삶에 있다는 것은 더없이 큰 소중함이고 고마움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보냈다. 볼 수 없다고 한들 마음속에 간직된 소중함은 언제고 꺼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름 편지는 가을 편지가 되고 겨울 편지가 되었다. 신들린 마냥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 안에는 불안도 담겨있고 투정도 담겨있었다.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우울과 절망이 그대로 흘러나와 편지에 고였다. 그런 편지들은 틀림없이 읽는 사람들을 굉장히 힘들게 했을 테지만 선연이도 은정이도 한마디 불평불만 없이 내 모습을 받아주었다. 때로는 이 아이들은 내게 변함없는 애정을 건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항상 건네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넬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늘 나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었던 그들이 고마워서 그리움이 눈물이 날 듯 흘렀다.

가을이 끝날 때쯤 해서는 상담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일하게 나오지 않은 것은 성희에 대한 이야기와 그 뒤에 일어난 부산까지의 여행뿐이었다. 아무리 말하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성희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마치 자물쇠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잠겨 있었다.

몇 번의 세션을 답답한 침묵으로 보내자 정신병이 올 것만 같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으면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로 그저 빤히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선생님의 논리는 말이 나오지 않는 그 침묵의 시간이 이야기하는 순간들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1시간에 20만 원짜리 시간을 말이다. 돈다발을 소먹이로 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초조함만이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성희에 대한 이야기는 죽어도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 아픔은 마치 내 존재 자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침묵을 지키는 대신 최근에 있었던 일을 생각나는 대로 막 말하던 어느 세션 중이었다. 선연이와 여름 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무심결에 흘러나왔고 선생님은 턱을 괴고 집중해서 듣다가 얘기하셨다.

“그 여자 친구, 선연 씨라고 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그 사람 아닌가요?”

“네 맞아요.”

“진짜 관계가 아닌 것 같네요. 허상이랄까요.”

화들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메모해놓은 것을 뒤적이며 얘기하셨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선연 씨하고는 굉장히 이상적인 관계인 것처럼 느껴져요. 서로 이해하고 기댈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굉장히 신뢰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관계는 정말로 흔치 않죠. 다만, 그 표현들의 본질을 보면 실체가 없고 모호하기만 하네요. 12년이나 된 관계면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며 함께 자라나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인간적인 감정들이 자리 잡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인간적인 부분들, 좋아하고 부딪히고 속상해하는 부분들이 수호 씨가 들려주는 선연 씨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는 쏙 빠져있어요. 이상적이고 좋은 설명들만이 그 자리를 모호한 표현들로 채우죠. 그래서 머릿속에서 그려보려고 해도 선연 씨라는 사람이 어렴풋하게만 보여요. 가령 이런 표현들이 그래요. 3주쯤 전에 이런 표현을 썼네요. ‘연락하지 않고 몇 달이고 지내도 상관없이 소중하고, 다시 만난 순간이 더없이 반갑다’ 고 말이에요. 좋은 말이기는 한데 이게 또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못해요.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데 몇 달이고 연락이 오지 않고 답장이 없고 하면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거든요. 사람이라면 그건 피해 갈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수호 씨는 그런 서운한 감정들을 냄비 뚜껑 덮듯이 꼭꼭 덮어놓은 것 같아요.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함께 끓고 수증기도 새어 나오고 하면서 요리가 되어야 하는데 마냥 긍정적인 것만 가둬놓고 끓이니 맛을 알 수 없는 죽이 되어버리는 거죠.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하고 속상해도 속상하다고 말을 못 하고 있는 듯 보여요. 그리고 그건 건 아마도 수호 씨 성격도 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기대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 거예요.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세상이 온통 배신하고 흔들려도 지켜줄 것 같은 이상적인 사람을 하나 만들어낸 거죠.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 환상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예요. 수호 씨가 말하는 그런 이상적인 사랑,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고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부딪히고 엉키지 않으며 사랑하길 바라는 건 유아적인 판타지일 뿐이에요. 마치 아이가 어머니가 자기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해주길 기대하는 그 마음과도 같은 거죠.”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라고, 서운한 감정을 눌러 감춘 적 없고, 진솔하고 솔직하게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선생님이 말이 무섭도록 진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고요한 진동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 진동은 지축을 뒤흔드는 산사태가 되어 많은 것들을 뒤엎었다. 변명도 항변도 끝끝내 나오지 못했다. 깍지를 낀 채로 빤히 바라보시며 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환상 속에서 여신이 되어버린 그녀를 현실로 다시 데려오지 못한다면 이 관계는 오도 가도 못해요. 그리고 그건 당연히 선연 씨도 수호 씨도 힘들게 하겠죠. 눌러놓는다고 한들 서운한 감정도 좋아하는 감정도 언젠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선연 씨가 하늘을 닮은 느낌이라고 했나요. 어쩌면 그건 수호 씨 마음속에선 가장 진실에 가까운 표현일 수도 있어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녀를 올려놓고 그녀를 알려고 하지도, 내려 주려고 하지도 않고 혼자서 만족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선연 씨에겐 큰 상처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게 하늘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두려운 부담일지는 차마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선연 씨 본인만 알겠죠. 어쩌면 수호 씨에게 닿고 싶었는데 닿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죠. 수호 씨가 그렇게 높은 곳에 올려놓고 내려주질 않아서요.”

미안함이 애잔하게 내려앉았다. 늘 세상이 주는 부담감에 버거워하던 선연이었다. 그런 선연이를 위해주겠다고 말하면서, 힘들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말하면서 나는 다만 이기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연이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문득 의아함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선연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이고 얼마나 알려고 노력했던 걸까. 아주 작은 아픔의 조각들만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며, 나는 한 사람의 우주를 온통 다 아는 마냥 동경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성희에게 등 돌렸듯, 선연이에게도 등 돌린 채로 마냥 혼자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워지고 말았다. 미안함이 자꾸만 애잔하게 내려앉았다. 멀리서 바라볼 줄 알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진솔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사랑은 아니었나 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선생님.”

“글쎄요. 사랑한다고 말해줬던 적이 있나요?”

“네. 그럼요.”

“아뇨, 그렇게 말고요. 정말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나요.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놓은 채로 겁쟁이처럼 사랑한다고 말한 게 아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준 적이 있나요.”




1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