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14화

14화 : 달빛 기차

by 이원호

14화 : 달빛 기차





그날 밤, 잠이 오질 않았다. 꿈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선잠 속에서 정독도서관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자꾸만 나를 불러댔다. 그 밑에선 창백한 소녀가 손짓하고 있었다. 소녀는 성희와 선연이의 온통 혼재된 이미지였다. 수많은 죄책감들이 얽히고설킨 채 악몽을 만들었다. 멀리서 기차가 광안대교를 가르며 다가 소리가 들렸다. 그 경쾌한 소리는 꿈을 뚫고 현실로 나를 다시 데려와 주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자리 앉았다. 이상하게 다리의 마비가 조금 희미해진 기분이 들었다. 가끔 그렇게 마비가 희미해지는 날도 있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그것도 조금은 회복되어 가는 징조라며 의사 선생님은 좋아하곤 하셨다. 내게는 그저 삶이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말이다.

나는 오랜만에 움직이는 다리를 만끽하며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겨보았다. 많이 절룩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처음 걸어보는 발걸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병원을 나서서 세상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나와 보니 달맞이 고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달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곳은 부산에서도 가장 손꼽히게 아름다운 명소 중 하나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한 곳으로 이름이 드높은 곳이었다. 덕분에 병원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외딴 절벽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외로운 비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절뚝거리며 그 곁으로 다가가 달빛을 받은 비석 옆에 잠시 털썩 기대어 앉은 나는 먼지와 잡초 투성이인 비석을 쓰다듬었다. 그 차가운 돌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눈물로 새겨진 것 같은 문구가 만져졌다.

-사랑하는 딸 주연이에게. 그 세상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라며. 엄마 아빠가.

돌 위에 새겨져 있음에도 그 문구 속에는 뜨거울 정도의 아픔이 녹아있었다. 그 아픔의 결을 따라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소녀의 빈자리를 더듬어보았다. 이 소녀는 무엇이 아파서 이곳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던 걸까. 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지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몰랐기에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저 순간의 괴로움을 견딜 줄 몰랐던 온실 속 화초였기 때문이었던 걸까. 과연 그렇게 온실 속 화초라서 죽는 사람이 있는 걸까. 죽음이 비난받고 폄하받아야 할 정도로만 적당히 아픈데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나는 달이 환하게 비치는 바다를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등을 기대자 비석의 시원한 감촉이 척추를 훑었다. 잠시나마 이곳에서 스러져간 얼굴도 모르는 그녀와 함께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난간 밑을 내려다보자 발가락 밑의 돌이 소리 지르며 부스러져 떨어졌다. 돌이 파도까지 낙하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내 곁의 투명한 소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파도와 함께 부서지기인 너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덕 아래에서는 기차가 느린 속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언덕 사이의 좁은 길로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아름다워서, 나는 문득 그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어 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모르는 채로 모든 구속과 마비와 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떠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지, 무엇이 나의 죄책감인지조차 모른 채 무작정 도망쳤었다. 지금은 내가 도망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알게 모르게 의지를 좀먹고 있었다. 지금 충동을 결정으로 바꾸지 못하면 평생 이 자리에 못 박힐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절룩이며 뛰기 시작했다. 비록 고장 나기는 했어도 다리는 나를 배신하지는 않았다.

언덕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주체할 수 없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기차는 느리다고는 한들 그래도 부딪히면 육신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분명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넘어지거나 바퀴 사이에 깔려 짓이겨지지 않은 채로 도착할 수 있을지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기차는 화물칸 문 한 짝이 열려있었고, 나는 이상한 용기 속에서 몸을 날렸다. 한 차례의 영웅적인 도약은 비참한 죽음과 치열한 삶 사이의 강을 뛰어넘었다. 갈비뼈가 부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살아서 화물칸 안에 안착할 수 있었다.

화물칸 안에는 어슴푸레한 백열등이 삐걱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전등 빛은 갸우뚱거리며 화물차 내부를 채웠다. 빈칸의 그림자 속에는 사람이 세명이나 앉아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눈이 동글동글한 소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엄마, 쟤는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갈색 옷을 치렁치렁하게 입은 어딘지 엄숙해 보이는 중년 여성은 혀를 쯧쯧 차면서 말했다.

“아직 크리스마스는 멀었단다. 학생, 고작 그렇게 뛰어서야 어디 기차에 치여 죽을 수나 있겠나.”

순박해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얼굴에 걸린 함박웃음이 인상적인 거구의 사내였다.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대답했다.

“특별히 죽으려던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뭐, 특별히 죽었다고 한들 큰 상관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뒷말은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갈색 여인은 하얀 소녀를 놓아주었다. 소녀는 쪼르르 달려와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빛내며 말했다.

“오빠, 오빠는 내 생일 선물이어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갈색 여인을 바라보았다. 갈색 여인은 투명한 갈색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물었다.

“학생은 어디까지 가나?”

“특별히 정해진 곳은 없어요.”

“나이도 어린데 벌서 갈 곳도 모르면 어떡하나.”

나는 그분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삶의 최종 도착지가 죽음의 평온 속이라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어디까지 가시죠?”

옆에 있던 하얀 소녀가 잽싸게 대답했다.

“오빠, 우리는 집에 가요. 오빠도 같이 갈래요? 근데 오빠는 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네.”

하얀 소녀는 내 옷을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를 못해서.”
“죄송할 것 없네. 내 딸은 축농증이라 냄새를 제대로 못 맡는다네. 냄새가 난다는 건 착각이겠지.”

하얀 소녀는 곧 제 엄마 곁으로 돌아가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갈색 여인은 소녀의 행동을 무심하게 무시하면서 말했다.

“내 딸 시련일세. 약간 천방지축이지만, 자네가 신경 쓸 바는 아니네. 저쪽의 저 덩치 큰 싱글벙글한 청년은 이름이 없네. 말을 할 줄 모르거든. 내 이름은 자네가 알 것 없네. 자네는 이름이 있나?”

잠시 고민하다가 가짜 이름으로 아무것이나 생각나는 대로 댔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본명을 주는 것은 왠지 두려웠다.

“아, 저는 머루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갈색 여인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이름은 진짜 자네 이름인가?”

“네?”

“아니, 됐네. 진짜 이름이건 가짜 이름이건 무슨 상관이겠나. 시련이가 말한 대로 우리는 집에 가는 중이네. 갈 곳이 없다면 같이 동행하겠나? 목적지를 모른다면 쉽지 않은 여정 일터인데.”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 좋으니 떠나가고 싶었다.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괴로움에서 이제 자유로울 때도 되었었다. 덩치 큰 남자는 집게발 같이 거대한 손으로 쌀부대를 꺼내서 의자를 만들어 주었다. 앉으라며 어깨를 툭 치고 싱글벙글하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이빨이 다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갈색 여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저 힘센 아저씨가 필요할 땐 그래 씨를 부르면 되네.”

“아까는 저분은 이름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갈색 여인은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자네는 저런 희한한 종류의 이름도 들어봤나?”

“아뇨.”

“그래 씨라는 건 이름이 아니네. 부를 애칭이 있기는 해야 하니 그걸로 부를 뿐일세. 그래 씨는 말을 할 줄은 모르지만 묻는 말에 ‘그래’라고 대답은 할 걸세. 그 말밖에는 안 할 거거든.”

그래 씨는 더 활짝 웃었다. 크고 각진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는 함박꽃 같은 웃음이었다. 갈색 여인은 계속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자네는 우리가 무얼 하는 사람 같나?”

“글쎄요.”

“자네는 학생 같군.”

“맞아요. 너무 티가 나나요.”

“그리고 최근에 가까운 사람을 잃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기도 하고.”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남몰래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사람도 있군. 남몰래는 아닐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대놓고 좋아하는데 눈치 못 챌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 말에 섬뜩한 기분 등골을 치달았다.

“……. 저를 아시나요?”

“그럼. 달리는 기차에 고장 난 다리로 몸통 박치기를 하려들은 정신 나간 청년이 아닌가.”

다리가 고장 났다고 말했던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싹한 기분이 조금 더 강해졌다. 여인의 갈색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나는 점성술을 하는 사람일세. 내 딸 시련이는 귀신을 볼 줄 아는 심령술사고. 그래 씨는 우리의 경호원일세.”

시련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시련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시련이는 귀신을 볼 줄은 알지만 귀신 냄새는 못 맡는다네.”

“그건 왜죠?”

여인은 다시금 한심하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축농증이 있다고.”

시련이는 누워서 배를 잡고 킥킥거리며 웃었고, 여인은 고개를 들어서 문밖의 덜컹거리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죽은 자를 보는데 꼭 유령의 냄새까지 맡는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지.”


여인의 시선은 달맞이 언덕의 날카로운 절벽으로 가서 얽혔다. 절벽은 달빛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시커먼 형체가 달빛을 가르고 절벽으로부터 떨어졌다. 제대로 알아보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파도에 몸이 부딪히며 잠겨 드는 소리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섬뜩했다.

“우리는 저렇게 뛰어내리는 이들을 여자는 낙화, 남자는 낙석이라고 부른다네. 방금 전은 낙석이었네.”

“왜죠?”

“죽는 이에게 무슨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겠나. 살 수 없으니 죽는 거지.”

시련이는 절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만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엔 귀기 어린 아름다움이 있었다. 갈색 여인은 시련이의 눈을 가만히 가려주었다. 그래 씨는 육중한 철문을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닫았다. 시련이는 그제야 눈을 돌리고 다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갈색 여인은 보따리를 뒤적뒤적하더니 과자봉지 같은 것을 하나 던져주었다.

“먹겠나. 배고파 보이는데.”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일단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걸신들린 허기가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기어 올라왔다.

“이게 뭐죠? 엄청 맛있네요.”

“개밥이라네.”

사례가 들리며 씹고 있던 음식이 입술로 튀어나왔다. 시련이는 깔깔대고 웃었다.

“농담일세. 그렇게 그걸 맛있게 먹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체하지 않게 조심하게.”

“사람이 먹는 음식은 맞는 거죠?”

“먹으려고 하면 뭔들 못 먹겠나. 시련이가 만든 걸세.”

시련이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V 모양으로 펴보였고 그 모습이 귀여워서 시련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밥을 먹고 나니 금세 졸음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불빛과, 흔들거리는 기차 안의 세상과 뱃속의 음식물도 다 자장가가 되어 영혼의 깊은 곳을 간지럽혔다. 갈색 여인은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으니 구석에서 좀 자두게. 도착하면 깨워주겠네.”

내가 조금 불안해하며 자리를 잡고 눕자 시련이가 낑낑거리며 옆자리의 모포를 파고들어 누웠다. 갈색 여인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걱정 말게.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

그 말은 조금 무서운 것이기는 했지만, 나도 지치기는 했었는지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곧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씨는 잠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시련이는 옆에서 잠이 덜 깬 흐리멍덩한 눈으로 앉아있었다. 갈색 여인은 갈색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이제 내릴 시간이네.”

그 말과 동시에 그래 씨는 기차의 철문을 열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눈부신 어둠의 도시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갈색 여인은 시련이를 데리고 사뿐하게 뛰어내렸다. 그래 씨가 뛰어내릴 때는 화물칸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기차의 속도는 점점 올랐다. 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시련이가 소리쳤다.

“오빠 뛰어요! 할 수 있어!”


다리의 힘이 풀리긴 했지만 어쨌든 뛸 수는 있었다. 자갈밭에 꼴사납게 나뒹굴자, 시련이가 냉큼 달려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오빠 바보야? 제대로 내리지도 못할 기차에 왜 탔어.”


나도 가끔 그게 궁금하다고 시련이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세상은 너무 춥고 어지러웠을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걷기 시작하자 갈색 여인은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길을 잃지 말 것. 일행에서 이탈하지 말 것. 충분히 이해하기 쉬운 사항들이었다. 여인은 이제부터 조금 위험한 곳들을 지나갈지도 모르니 한눈팔지 말고 정신도 팔지 말라고 그랬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의 뒤를 쫓았다.

도시는 화려한 불빛에 휩싸인 채로 빛나고 있었다. 철로의 철조망을 넘자마자 수많은 불빛들이 우리를 반겼다. 좁고 검은 골목길을 통과하자 붉은 등이 가득한 기묘한 거리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눈이 풀린 짐승 같은 표정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갈색 여인은 코트를 열어 시련이를 감싸 안고 걸었다. 공터에서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토가같이 속이 거의 다 비칠 것만 같은 옷만을 입고 있는 무대 위의 여인은 춥지도 않은지 헐벗은 몸을 열정적으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몸매도 아름다웠고 얼굴도 표정도 예뻤지만 그 모습은 마치 통마루를 깎아서 치장해놓은 듯 생기가 없었다. 무대 위의 여인은 가슴을 반쯤 드러내어 놓은 채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 동작들을 거듭해서 반복했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 커졌다. 더 성행위에 가까운 동작을 취할수록 사람들의 환호성은 커지는 것 같았다. 갈색 여인은 시련이의 눈을 가렸고 그래 씨는 내게 넋을 놓지 말고 걸으라는 듯 툭툭 쳤다.


무대를 지나서 뒤로 돌아가니 무대 위의 여인과 똑같이 생긴 여러 명의 여성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여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는지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댔다. 그중 하나와 무심결에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상큼하게 예쁜 눈을 치켜뜨며 서슬 퍼런 욕설을 내뱉었다.

“뭘 봐 씨발새끼야! 눈깔을 뽑아버릴까 보다. 왜? 너도 한 번 대줄까 꼬마야? 좆같은 놈 같으니라고.”


곁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조야하게 웃었다. 그래 씨는 험상궂은 인상을 썼고 아가씨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기대어갔다. 곧 검은색 승합차가 와서 그녀들 앞에 섰다. 그녀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차에 탔다. 승합차는 밤 속으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갈색 여인은 흘끔 뒤돌아보며 말했다.

“계속 걷게. 멈추지 말고.”

골목들을 지나며 계속 걸었다. 빌라의 꼭대기 층에는 벌거벗은 채 피아노를 치는 남자의 상체가 보였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목소리로 벌거벗은 남자는 노래를 불렀다.

“용기를 내서 그녀를 죽였어- 절망의 머리채로 내 목을 칭칭 감은 그녀를. 그녀는 아마 행복해졌을 거야. 고양이가 그녀를 삼켰으니까.”

빌라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검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내 여동생 어떻게 했어 이 새끼야!”

벌거벗은 남자는 멍하니 풀린 눈으로 앵무새처럼 그 말을 따라 했다.

“어떻겠어 이 새끼야! 어떻겠어 이 새끼야!”


그것은 어쩌면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검은 남자들은 벌거숭이 남자의 머리를 붙잡고 피아노 건반에 내리쳤다. 밤이 부서지는 것 같은 음향과 피가 튀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갈색 여인은 시련이의 귀를 막았다.

“계속 걷게. 멈춰서는 안 되네.”

도시는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두건을 뒤집어쓴 여인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남들이 볼까 두려워하며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곧 멎었다. 그 침묵은 울음소리보다도 더 소름 끼쳤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돌아갈 때마다 그곳에 매달린 시체도 함께 돌았다. 이미 썩었는지 내장이 다리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래층에선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갈색 여인은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지만, 시련이는 힐끔 나를 돌아보곤 말했다.

“엄마 너무 심한 건 아니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갈색 여인은 덤덤히 대답했다.

“별 수 없어. 봐야 하고 겪어야 해. 어른이 되는 다른 길은 없어. 집에 갈 수 있으려면 계속 걸어야 해.”

그래 씨는 힘내라는 듯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얼굴을 올려다보자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그의 치아가 빛났다. 그는 말했다. “그래.” 우리는 계속 걸었다.

골목길에서 헐벗은 채로 도망쳐 나오던 소녀는 우악스러운 장한의 손길에 머리채를 붙잡혔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고 비는 소녀에게 장한은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이년아!’ 하고 주먹을 날렸다. 짙은 화장기 있는 소녀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누런 위액을 게워내는 그녀를 보며 내 속에서도 토악질이 올라왔다. 아까 먹은 정체불명의 음식은 얹힌 듯 소화되지 않았다. 자꾸만 어지러워서 쉬고만 싶었다. 갈색 여인은 엄하게 꾸짖었다. 계속 걸어. 다 왔어. 멈추면 안 돼.

밤하늘 아래서 거대한 은행나무가 빛나고 있었다. 드높은 가지들 사이에는 별빛이 열려있었고 세월의 힘줄 같은 굵은 둥치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도끼로도 베어 넘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련이는 나무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저기만 지나면 집이야! 힘내!”

나는 왠지 이곳에 와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셀 수 없이 여러 번 저 굵게 얽힌 뿌리 사이에 누군가와 기대어 함께 앉았던 것 같았다. 그곳에서 함께 노래하고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짙은 바람에 은행나무에 걸린 별빛이 흔들거렸다.

그녀는 과연 그곳에 있었다. 창백한 바람에 하늘거리는 오뚝한 코의 소녀가 은행나무와 별빛 사이에 있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힌 죄책감과 그리움이 봇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마비가 된 다리로 울먹임 속에서 그녀에게 다가서는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래 씨가 내 앞을 막았다. 그 모습은 불문 앞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위풍스러웠다. 그래 씨는 가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달픈 그리움과 미안함이 그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 씨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보내달라고 가만히 속삭였다.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시련이는 내 곁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안 돼 오빠. 산자는 죽은 자를 불러서는 안 돼. 아무리 그립더라도 말야.”

왜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가서야만 할 것 같이 그립고 아픈지라 처절한 아픔으로 그 질문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시련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대답했다.

“죽은 자도 산자를 부르지 않으니까.”

몸과 마음을 가득 메우는 슬픔이 울음소리가 되어서 터져 나왔다. 몸과 마음에 있는 것이 다 흘러나와 울음이 되었다. 시린 눈송이 같은 별빛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명멸하며 흐르고 있었다. 창백히 빛나는 성희의 곁에는 누군가가 서있었다. 키가 커 보이는 그 파르스름한 인영을 성희는 가만히 올려보다가 손을 잡아갔다. 그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뒤돌아보지도, 찰스- 하고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손잡은 그 모습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가자 오빠.”

시련이가 옷깃을 잡아끌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며 다시는 눈에 담지 못할 희미해지는 그 미소를 마음에 담아 놓았다. 마지막 작별인사가 어둠을 수놓았다.

“안녕 성희.

항상 고마워.

너도 너의 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라.”





갈색 여인은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었다.

“저 기차를 놓치면 당분간 집에는 못 간다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뛰었다. 속에서 무언가 출렁이며 뇌 속까지 어지럽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래 씨는 도약하여 먼저 기차에 올라탄 후 시련이를 가뿐히 끌어올려 주었다. 시련이는 소리 질렀다. “수호 오빠 뛰어요! 왜케 매가리가 없어!” 내 이름을 언제 제대로 가르쳐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혼란이 왔다. 뱃속과 머릿속에서 온통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고 있었다. 갈색 여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리를 모아 점프했다. 코트의 갈색 털이 바람에 흩날리며 여인은 기차에 가뿐하게 착지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아무리 달려보아도 기차에는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 씨는 손을 쭉 뻗었다. 마지막 구원일 그 손을 향해 있는 힘껏 도약해보았지만 택도 없는 거리였다. 손목에 있는 팔찌가 눈부시게 빛나며 철길을 우당탕탕 뒹굴었다. 멀리서 시련이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눈을 떠보니 달빛이 속눈썹을 간지럽혔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상을 둘러보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달맞이언덕의 절벽이었다. 비석에 기댄 채 깜빡 졸았던 것인가 의아해하며 손을 대보니 비석은 달빛 속에서 따뜻해져 있었다.

꿈의 장면 장면들이 영혼을 섬세하게 스쳐갔다. 시련이도 갈색 여인도 그래 씨도 여전히 그 숨결과 말투가 곁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깬 이젠 그들이 누군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꿈속에서 지켜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리워했다. 멀리서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광안대교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 어슴푸레한 희망의 모습을 보며 발걸음을 돌려 언덕을 내려갈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면담을 하며 처음으로 성희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선생님은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동안 닫혀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달빛 속에서 흐르는 기차처럼 가만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을 편지에서부터 자살까지, 길었던 죄책감과 부산으로의 여행들마저도. 모든 이야기가 조용히 철길을 달려 나와 달빛 속에 맺혀갔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 선생님은 그러셨다. 부산까지 걸은 그 여행은 죽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삶을 향한 발걸음이 분명하다고, 그 사이에는 사랑받고자 했으며 삶을 살고자 한 분명한 의미들이 녹아있다고 말이다. 죽고자 해서 죽는 이는 없다고, 다만 더 잘 살 수 없기에 죽음을 향할 뿐이라고 선생님은 그러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선생님께서는 가만히 덧붙이셨다. 성희는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다만 내가 아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사실을 이제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많이 아파하며 성희를 죄책감 속에 비끄러매어 두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꼬옥 붙들어 매었던 성희를 가만히 마음속에서 놓아주었다. 조용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의 결을 쓰다듬으며 선생님께 이제야 집에 갈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상담실을 나올 때 다리가 조금 꿈틀거렸다. 조만간,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을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무언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7개월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느꼈던 순간들이었다. 다시 돌아올 일은 없으리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들어서 햇살을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그렇게 청소년기의 한 장면이 끝이 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간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로운 감회가 들었다. 홀로 출발하는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 여행은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가방끈을 움켜쥐고 인파 사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 들르기 전에 먼저 정독도서관에 들렸다. 꿈속에선 할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전하지 못한 마지막 말을 전해야 했다. 은행나무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강대한 생의 의미로 자라나고 있었다. 햇살과 참새 떼가 은행나무의 높은 가지들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깊게 드리운 뿌리 사이에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기대어 앉자, 오래된 고목의 줄기 사이로 작은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얹은 채로 한참을 머무르다가 말했다.

“미안해.”

작은 바람결에 잎사귀들이 조곤조곤 흔들렸다.

“그리고……. 고마워.”

언제까지고 소중하다는 말도,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말도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성희는 틀림없이 그 말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떠나는 내 등 뒤로 봄 햇살이 가만히 웃어주는 것 같았다.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련이는 내게 이렇게 외쳐주려던 것 같았다. 남의 아픔까지 대신 아파줄 수는 없다고, 내 삶의 아픔만 감당하며 살아가라고 말이다.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시련이는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가 보다. 그 마음을 더듬었다. 그 사이엔 소중한 삶의 느낌이 담겨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수련이가 정신없이 달려와 안기며 얼굴을 할짝거렸다. 그 무한한 애정이 담긴 행동에 문득 마음이 뭉클해졌다. 수련이를 간지럽히며 말을 걸었다.

“요 녀석. 너 변장하고 내 꿈속에 나왔었지?”

수련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손에 가만히 들린 채로 헥헥거렸다.

“꿈속에서는 말 잘하더니! 대답해봐! 언넝!”

수련이는 멍! 하고 짖더니 몸을 비틀어 손을 빠져나갔다. 그 작은 모습이 도망친 곳은 꿈속에서처럼 가장 안전하고 따스한 다래의 품 속이었다. 수련이는 누워있는 다래의 발을 물고 잡아당겼다. 다래는 수련이를 귀찮아하며 으르렁 대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는 않았다. 나는 말없이 물끄러미, 투명한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봐주는 다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밝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는 꿈에서와 똑같이 세상을 담은 깊은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고마워.” 하고 말하자 다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1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