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15화

15화 : 마음의 확인

by 이원호

15화 : 마음의 확인






몇 주간 조용히 쉬면서 다리를 회복한 뒤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긴 꿈 이후로 마비는 거짓말처럼 금세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그 열쇠였던 것만 같았다. 오래도록 걷지 못해 온 몸이 하얗게 탈색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금세 예전의 감각들이 되돌아왔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난 사람은 형동이었다. 형동이는 신촌대로에서 나를 보자마자 어깨에 주먹을 날리며 욕을 했다. 그렇게 정신병자처럼 사라지는 놈이 어디에 있냐고, 걱정하다가 뒈질 뻔했다고 욕을 하는 그 모습에서 세상 속의 내 자리를 느낄 수 있었다. 거친 모습을 가장한 그 마음은 아프면서도 참 따스하고 고마웠다.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리 착각을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 자리가 작게나마 소중하게 머무르고 있었다. 짐짓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자 형동이는 나 같은 놈은 맞아도 싸다며 한 대를 기어코 더 때렸다. 그 먹먹한 아픔조차도 생의 감각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연대 앞의 횡단보도는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건너면 첫사랑에 성공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24시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아이도 나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다가왔다. 나는 어쩌면 그럴 거라고 항상 생각해왔기에, 그 순간의 운명에게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러자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던 발걸음으로 선연이는 한 발자국 다가와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나도 선연이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를 흘깃 훔쳐보며 분주히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형동이도 뒤를 보더니 흠칫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짧은 순간이 흐르는 사이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선연이는 포옹을 풀고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언제 돌아왔어?”

“며칠 안 됐어. 잘 지냈어?”

“그럼. 보고 싶었어. 편지 보냈는데 받았어?”

“아니 못 받았어.”

나는 문득 그 편지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저 멀리 금문교에서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선연이는 조별과제 팀원들과 발표 준비를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고 그랬다. 조만간 보자며 손을 흔드는 선연이의 손목에는 익숙한 모양의 나무팔찌가 매달려있었다. 그 모습은 하나의 약속 같은 것이라 그것이 지켜진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 행복해할 수 있었다.

선연이에게 작별인사를 말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가자 형동이가 매우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길 한복판에서 뭐 하는 거야 이 정신병자야.”

“그냥. 반가워서.”

“쟤 그때 걔 아냐? 일일호프?”

“맞아. 기억하네?”

“대단하다 너도 참. 여전해.”

“그렇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는 법이지.”

씨익 웃는 내게 형동이는 매우 어이없는 것을 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너 잘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닭갈비는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기름기가 자글자글 올라오는 철판 위를 보고 있다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서 말했다.

“고백할까?”

형동이는 양배추를 집어먹으려다가 말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쳐다봤다.

“고백한다고?”

“고민 중. 왜? 안 어울려?”

“아니. 아직도 안 했다니 병신 같아서.”


그 말에 문득 기억나는 것이 있어서 헤드윅 뮤지컬 티켓 사건을 들려주었다. 형동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백하지 마.”

“왜?”

“그딴 머저리 같은 계획 비슷한 걸로 고백하면 보나 마나 또 차일 테니까. 그럼 너는 또 징징 짜면서 부산까지 걸어가겠지. 이번엔 하반신 마비가 아니라 가다가 죽을게 분명해. 그게 아니더라도 새벽 6시에 네놈 집 대문을 두드리는 짓을 또 해야 할 테고 말이야. 귀찮다. 고백하지 마.”

묘하게도 다 맞는 말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은정이가 졸업식 날 준 우유갑 편지가 떠올랐다.

“은정이는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일단 덮치라고 그랬었는데.”

“은정이가?”

“응. 졸업식 날 그랬어.”

형동이는 껄껄 웃으면 어디 한번 할 테면 해보라고 그랬다. 그런 게 가능하기는 할까 상상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상상조차도 잘 되지는 않았다. 형동이는 그런 방법은 아마 은정이만 가능할 것이라고 그랬다. 나도 그 사실에 동의했다.

“근데 성적인 충동 없이 좋아하는 게 가능하기는 해?”

“아마도.”

“잘 상상이 안 가는데. 플라토닉 러브 같은 건가.”

“아니. 그거랑은 좀 달라.”

“뭐가 다른데?”

“글쎄.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 그런 게 싫은 것도 아니고. 근데 왠지 없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은 거. 세상엔 더 중요한 게 많으니까?”

형동이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멍청이에 찐따에 고자일지도 몰라. 잘 고민해봐.”

이번에는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차례였다.








집에 오는 길에 내내 고백을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상담의 선생님께서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그러셨다. 잃을까 봐 두려워말고 거절당할까 봐 미리 아파하지 않으며 솔직한 마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거절당하든 수락당하든 관계의 그다음 관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마음을 털어놓고 세상으로 내려놓아야 하늘도 별도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었다.


나는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절당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그런 고백을 말이다.

한참 동안 적당한 장소를 찾아 헤매던 나는 동네에서 시인의 언덕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밤이 되면 서울 시내의 야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이었다.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사람도 없어서 조용히 고즈넉한 곳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보다가 그 장소로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언덕이라면 고백과는 상관없이 그냥 와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왠지 선연이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묘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내게 남은 마지막 불안의 조각이자 어린 감정의 파편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 언덕에서 노랫말 같은 묘한 외로움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 불안을 그러모아 선연이에게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보았다. 답장은 오질 않았다. 큰 상관은 없었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예감과 그래도 괜찮다는 평온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답장과 상관없이 기타를 메고 길을 나섰다. 별빛 찬연한 언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 아래선 온 도시가 밤을 향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위에선 아름다운 밤하늘이 별빛으로 찬연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빛들은 언덕의 소나무 사이에 얽혀 들어 마음을 쓰다듬는 훈풍이 되었다. 바람이 외로운 소나무의 허리를 힘껏 감아올리면 소나무는 솔잎향 가득한 탄성을 토해냈다. 그 모습에 나도 아득한 행복을 느끼고 말았다. 고백하기 좋은 곳이었고 좋은 밤이었다.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시인의 언덕에서 가장 아름다운 위치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시석이 박혀 있었다. 그 비석은 이곳이 시인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주된 이유였다. 별빛을 머금은 바위 위에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부드러운 필체로 적혀있었다. 그 바위에 기대어 기타를 잡았다. 칠 줄 아는 노래는 몇 곡 없었지만 그중 한 곡은 지금 상황에 꽤나 잘 어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이 순간을 참 오래도록 준비했었다. 조용한 가운데 시 같은 노랫말이 적막을 채웠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아직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서로를 꿈꾸고 그리며 바랬던 곳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하는 소중한 내 친구여

때론 다투기로 많이 했지
서로 알 수 없는 오해의 조각들로
하지만 멋쩍은 미소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


내가 항상 여기 서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 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은정이는 내게 그랬었다. 고백하지 말라고, 잘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뮤지컬 티켓 때의 일만 보아도 이미 예측 가능한 결말이라고, 조금이라도 이성으로서 호감이 있었다면 같이 가자는 메시지를 눈치챘을 게 분명하다고 은정이는 말했다. 은정이는 내가 받을 상처를 미리 걱정해주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고백한다고 한들 우리가 친구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한 번 타오를 불꽃같은 관계가 되기에 내 감정은 너무 깊었고 우리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우리는 여러모로 연인이 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한국을 떠난 현진이도, 나를 누구보다 잘 알던 은정이도, 이상하게 예리한 형동이도 그 사실을 알고 경고를 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조금 다르게 믿고 싶었다. 나는 선연이를 잃지 않을 나를 믿었다. 그건 내가 고백하려는 감정과는 관계없는 큰 신뢰였다. 세상이 변하고 내가 변한대도 고이 간직될 마음을 믿었기에 나는 마음을 건네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선 지금 사랑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만 했다.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해온 이 설렘이 뭉툭해지며 빛을 잃기 전에 건네주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상처와 아픔을 넘어서며 사랑할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설렘을 꺼내어 들었다. 소중하기에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곁에 있고 싶기에 곁에 머무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불꽃같은 노래가 밤을 밝히며 언덕 위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나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나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그댈 위해 노래하고 싶어

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나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이런 나의 마음을
이런 나의 마음을


바람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왔다. 나는 그 바람의 결을 따라 마음을 가다듬었다. 닿을 수 있을까. 닿을 수 있을까. 마음이 담길까. 나는 마음을 그러모아 물어보았다.

- 곁에 있고 싶어. 안 될까.

선연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장했다.

-미안.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안타까움이 머뭇거리며 한마디를 더 적어 넣으려고 했지만 후회가 그 손짓을 머금었다. 더 이상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마음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곳에 앉아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달빛은 처연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나 슬프긴 해도 미소는 미소였다. 그리고 그렇게 웃을 수 있기에 조금 만족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닿지 않았기에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슬프기는 했지만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부딪히며 고백했기에 사랑할 수 있었다.

짝사랑은 그곳에서 멎었다. 언제까지고 선연이를 기다리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 순간부터는 나를 깎아내는 기다림이 아니었다. 다만 언제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만들어둔 채로 언제고 소중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런 기다림이었다. 그것은 시간에 몸을 맡긴 흐름이자 뿌리처럼 세상에 얽히는 자라남이었고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마음이기도 했다. 비로소, 사랑할 수 있었다. 내 곁에 없을 선연이의 모습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모습도 그제야 다 더없이 사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했고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

드높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 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조각들은 내게서 흘러나와 시석에 부딪히며 영롱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밤 속으로 비산 했다. 검은 씨앗 같은 그 조각들을 풀뿌리와 바위 틈새로 사라져 버려서 찾으려고 한들 영영 찾을 수 없었다.



1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