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나무 아래에서 스러지는 것들
날씨가 더워지자 공부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고, 느긋하기만 했던 내 마음에도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 된 뮤지컬 티켓 사건 이후로 내 한계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 해가 벌써 중간을 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에 그랬던 것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대학생이고 그 사이에서 어울릴 수 있다고 해서 나까지 대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성숙해지고 좀 더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입시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물론 매일 마음속에선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자라났다. 그래서 매일 더 초조히 스스로를 쪼아대며 공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가면 오래된 도서관이 있었다. 예전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문 고등학교의 터였고 그 이전에는 궁궐의 일부였던 그 장소에는 고풍스러운 시간의 향취가 묻어 나왔다. 건물은 새것이었지만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수백 년도 더 된 것들이 많았다. 특히 도서관 동쪽에서 자라는 거대한 은행나무는 오래된 동네를 굽어보며 400년의 세월 동안 장엄하게 자라 있었다. 뿌리는 너무 굵게 얽히며 자라서 의자가 되었고, 잎사귀 사이에서는 노을과 별빛이 열리며 반짝거렸다. 마음을 지키는 그 오래된 나무는 오래된 우리 동네의 수많은 전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던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선 별빛과 하늘이 눈부시게 빛났고, 그 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앉혀 놓고 고백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던 기묘하게 굽어진 뿌리 위에선 온 동네가 다 내려다보였다. 공부하다가 지칠 때면 나는 그곳에서 한참이고 앉아서 세상을 굽어보았고, 그럴 때면 내게도 400년의 세월과 지혜가 깃드는 것만 같았다. 그 기분이 행복해서라도 자주 도서관을 찾아서 공부하곤 했다.
성희는 그런 나를 자주 찾아왔다. 공부하기 위해서 도서관을 찾아오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 무렵의 성희는 이상하리만큼 초조하고 힘겨워보였다.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어느 정도의 쾌활함을 잃지 않았던 이 소녀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지켜봐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졸업식 이후 잠시 연락이 끊긴 사이에 성희는 많이도 수척해지고 많이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가끔씩 날이 선 말들을 던지기도 했고, 무언가 사람 너머의 구원을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성희를 참 아끼고 좋아했지만 가끔씩 성희가 기대 오는 느낌이 버거워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직 나 자신도 제대로 지탱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받아 마시며 함께 자랄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이미 뮤지컬 티켓 사건 때 절실하게 느꼈었다. 나는 아직 유치하게 어렸고, 사랑할 줄 몰랐고,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참 많이 아파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여유가 되지 않았다.
많이 불안하고 아플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아직 채 청소년을 벗어나지도 어른이 되지도 못했던 그 틈새의 시기는 모든 사람에게 숨 막히는 고통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채 녹여내고 소화하지 못한 채 우리는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찔러대고 있었다.
성희는 나만큼이나 도서관의 은행나무를 자주 찾았다. 내가 그 그늘에서 동네를 멀리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면, 성희는 드높은 나무 그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시간이 얽혀서 자란 가지들의 틈새에서 성희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린 내 눈으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가지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만이 한가득 담겼다.
우리는 가끔 그 은행나무의 뿌리들 사이에 앉아서 말없는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기도 했고,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으며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성희는 의자처럼 자란 나무 둥치에 걸터앉아 은행나무의 줄기에 기대었고, 나는 뿌리 사이에 편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성희는 그렇게 앉아서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슬픈 멜로디로 무더위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힘들다 말하는 그 순간, 모두 떠나버리죠. 타인의 짐까지 짊어지기엔 이 세상은 너무 벅찬걸. No I'm not alright at all,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부서지겠지만, 지금이 아닌 어딘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사랑할. 누군가 있을까. Beauty Queen of only Eighteen she, had a problem with herself, She will be loved, She will be loved. No I'm not alright at all,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무슨 노래인지 물어보아도 성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때때로 자신의 비명이 되어주었던 노래라는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애잔한 노랫말만이 나뭇잎 사이에서 흔적 없이 부서져가고 바람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성희는 내게 답가를 요청했지만 부를 노래가 없었다. 성희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한 곡을 더 불렀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이렇게 울다 잠이 든다.”
그 멜로디가 아파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광야에 해가 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지 않는 갈대밭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 외로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마음을 부둥켜안았다. 나무 아래에는, 그 외로운 벌판에는 우리들 밖에는 없었다. 성희는 한참을 석양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어른이 되려면 천 번은 이렇게 아파야겠지.”
나는 가만히 안타까운 대답을 남겼다. 평생의 상처가 될 슬픈 대답이었다.
“응. 누구나 그렇게 아파. 삶은 어차피 그런 거겠지.”
성희는 가만히 슬프게 웃었다.
“그래. 그런 거겠지.”
성희의 뒷말이 왔다가, 사라져 갔다. 나를 향해 내민 그 손을 나는 잡아주지 못했다. 차마 잡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손 조차도 잡을 줄을 몰랐다.
성희는 그날 밤 사라졌다. 한강 위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노래를 부르던 소녀를 본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삼킨 강물만이 바다로 속절없이 흘렀다. 그 안에 너무 많은 눈물이 녹아있기에 바다는 그토록 짠 것일지도 모른다.
성희의 시신은 1주일 뒤 인천 하구에서 인양되었다.
까무러칠 것 같은 그 소식에 눈앞이 새하얗게 뒤집혔다. 눈물은 나지도 않았다. 눈물보다는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영혼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온몸의 물기가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서 눈물은 나지를 않았다.
성희는 언젠가 내게 물었었다. 자신이 죽으면 서글플 것 같냐고 말이다. 이제야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아니, 서글프지 않아. 하루에 몇 번씩 너의 생각에 눈이 뒤집힌 채 혼절할 뿐이지. 서글플 것 같냐고? 그런 질문이 어딨어. 죽을 것 같은데. 목구멍 안쪽의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 전시해놓은 것만 같은데. 내장과 심장이 부스러져 토해지는 것만 같은데. 다시 한번만 그 질문을 물어봐주면 안 될까. 잠시만 그때로 되돌아가 대답할 수 있도록. 네 시신이 물속에서 건져지지 않은 그 날 그때로.
장례식에는 가지 못했다.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함께 알았던 아이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앉은 모습을 볼 수도 없었고, 미안하다고, 내가 너의 사형선고였노라고 사과할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 질문은 밧줄이 되어 내 목을 휘감고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죄책감에, 차마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친구가 떠나갔다.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아픔을 봐주지 못해서,
그렇게, 친구가 멀리 떠나갔다.
1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