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호 Nov 17. 2019

그들만의 작은 천국 5화

가을 단편소설집 다섯 번째 이야기 : 무엇을 먹고살아야 지치지 않을까


가을 단편소설집 다섯 번째 이야기 : 무엇을 먹고살아야 지치지 않을까.







K의 이야기는 끝난 것 같았고, 나는 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용이는 그 편의점에서 만난 여성분이랑 결혼하는 거야? 남자 친구 있으시다며?"

"아 그건 용이가 그때 하도 또라이 같이 굴어서 쫓아내려고 한 말씀이셨대. 그 뒤로 얼마 안 되어서 사귀기 시작하신 것 같던걸? 두 사람은 한 2년 교제했대. 너도 결혼식에 와주면 좋겠다던데."

"웃기네. 청첩장이나 주고 말하라 그래."
"때 되면 다 온다야. 걱정하지 말아. 저기 우리가 주문한 연포탕도 오네."


서빙을 하시는 분께서는 거대한 카트를 낑낑거리고 끌고 오셔서 우리 앞에 낙지와 바지락과 버섯과 새우와 온갖 종류의 야채가 한가득 들어간 연포탕 한 대접을 놓아주셨다. 주문한 지 50분이나 지나서 나온 이 집의 특식 요리였다. 아이들은 한껏 군침을 삼키며 장대한 해산물의 향연을 각자의 그릇으로 퍼갔다. 그릇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담고 싶은 마음이야 같은 것이었다.






달큰한 향기를 풍기는 연포탕을 한 입 떠먹어보니 알싸하고 짭짜름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혀가 뒤집어지고 눈이 돌아갈 것 같은 맛이라 나는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이거 진짜 맛있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비웠다.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질문을 던진 것은 어느덧 요리가 거의 비워지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얘들아. 근데 요새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지 않니."

"아니. 사는 건 힘든데 먹는 건 안 힘들던데. 매일 먹을 수 있어."

"아냐. 난 먹는 것도 힘들어. 고르는 것도 힘들고 먹다 보면 지치기도 해. 이 음식은 이래서 먹으면 안 되고, 저 음식은 저래서 안되고, 먹다 보면 살도 찌고, 안 먹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맞아. 먹는 게 쉽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아. 먹는 건 사는 것만큼 힘들어. 어쩌면 먹는 게 사는 거고 사는 게 먹는 건지도 모르지."


아이들은 연포탕 다음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하며 갑론을박을 해댔고, 그러면서 토의는 더욱 깊어졌다.


"그럼 무얼 먹으면서 살아야 지치지 않을까? 너희는 뭘 먹을 때 제일 행복해?"

"난 치킨! 아니면 떡볶이! 아니면 순댓국! 아니 소갈비! 아 너무 좋아!"

"야 너 다이어트 중이라서 지금 약간 흥분한 것 같은데 좀 진정해. 약간 마약 한 사람 같어."

"너희가 일주일 동안 바나나만 먹어봐 어떻게 되나."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게 원푸드 다이어트랬어. 너는 왜케 아직도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냐. 어쨌든 넌 음식 하나만 먹을 수 있으면 바나나를 고르면 되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바나나 존맛탱."


아이들은 다시 대화의 주제를 발전시켜 평생 동안 단 한 종류의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 고심하기 시작했다. K는 말했다.


"나는 평생 한 종류의 음식만 먹을 수 있으면 닭을 고를 것 같아. 튀겨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고아 먹고, 운동할 때는 가슴만 먹고, 파티할 때는 날개만 먹고, 욕심쟁이일 때는 다리만 먹고!"

"아 음식 종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식재료를 고르는 거였어?"

"한 '요리'만 먹으면 무얼 먹던 물리고 지칠걸. 아무리 맛있는 거라고 해도 감옥에서 이십 년 동안 그것만 먹어야 하면 미쳐버리는 거랑 똑같이 말야."

"맞아. 미국에선 옛날에 바닷가재가 먹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노동자에게만 줬는데, 어느 날 노동자들이 더 이상 바닷가재는 먹기 싫다고 폭동까지 났었대.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데 말야. 랍스터 존맛탱!"

"저놈의 존맛탱이란 말은 무슨 귀신처럼 입에 들러붙었나. 계속 쓰네."

"유행어 모르냐 유행어."

"나는 랍스터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버터에 찍어먹고 버섯이랑 구워 먹고 파스타에 넣어먹고 찜기에 쪄먹고."

"아냐. 내가 랍스터 뷔페를 가봐서 아는데 되게 금방 물리더라고. 비싸서 조금밖에 못 먹으니까 되게 맛있어 보이지만 실제론 연어회보다도 물려."

"연어도 괜찮은 후보인 것 같은데!"

"연어 무한리필 안 가봤어? 가서 두 접시 먹으면 더 먹기 힘들어지던데? 나도 연어 진짜 좋아하는데 많이는 못 먹겠더라고. 이틀 연속 먹으면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괜찮은 후보인 것 같다고. 우리 연어회 시키자. 여기 연어회 양 많아 보여."


아이들은 결국 연포탕의 다음 메뉴로 연어회를 선택했고,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살면서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과일 종류가 좋지 않을까. 바나나는 일단 제외하고. 좀 더 영양소 있는 과일로?"

"난 안돼. 과일 알레르기가 있거든."

"진짜? 모든 종류의 과일에?"

"응. 과즙이 많을수록 심해."

"먹으면 기도가 부어서 숨을 잘 못 쉬어."

"넌 정말 이상한 아이구나."

"여태까지 몰랐던 것처럼 말하지 마."

"그럼 먹을 수 있는 과일은 뭐가 있어?"

"음... 바나나도 1개쯤은 먹을 수 있고, "

"역시 바나나! 갓 과일!"

"넌 좀 조용히 해 바나나 귀신같은 놈아."

"딸기나 포도도 조금은 먹을 수 있어. 수박이나 복숭아처럼 과즙 많은 건 안되고. 망고나 멜론도 되게 심하더라."

"불쌍해... 그럼 넌 과일 못 먹으니까 평생 하나만 먹으면 뭘 먹을 거야?"

"아마 소고기? 소고기라면 평생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탕 끓여먹고 스테이크 해 먹고 갈비찜 해 먹고 육회 먹고 구워 먹고 데쳐먹고 돌려먹고..."

"배고픈 건 알겠는데 나열법 제발 그만 사용해.. 그리고 누가 소고기를 데쳐먹어.."

"나라면 먹을 수 있어."

"차라리 초콜릿 케이크를 매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것도 매일 먹으면 지칠걸. 너무 자극적이잖아. 자고로 매일 함께 하는 건 편안하고 단조로워야 할 것 같아. 사람도 그렇고 취미도 그렇잖아."
"자극적이지 않고 몸에도 좋은 아보카도는 어때. 맛도 있잖아."

"아보카도는 환경을 파괴해서 안돼."

"환경을 파괴한다고?"

"응. 아보카도는  물을 엄청나게 많이 필요로 하거든. 아보카도 농장을 했던 곳에선 다른 아무것도 키울 수가 없을 정도야. 매년 수천 헥타르의 숲이 아보카도 농지로 쓰이기 위해서 불태워지고, 불모지로 변하지."

"그래? 난 소고기만 그런 줄 알았는데. 소고기보다 환경오염이 심한 거야?"

"그건 아닐걸. 동물이랑 식물을 비교하긴 어렵지. 열대우림이 불타는 건 아보카도 때문이기보다는 소고기 때문이니까."

"너희 아보카도가 '고환'이라는 뜻인 거 알았니?"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으니까 조용히 해."

"평생 먹어야 할 음식으로 우랑은 어때?"

"우랑이 뭔데?"

"그건 소의 고환이야."

"넌 제발 입 좀 닫아줄래."

"아보카도는 먹는데 소의 그건 못 먹어?"

"프랑스에는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오르톨랑이라는 게 있대. 먹으면 신이 노하는 음식이라는데."

"너희의 맥락 없는 아무말 대잔치에 내가 먼저 노할 것 같아."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 것은 아이들이 슬슬 음식 얘기를 하는 것에 질려할 때 즈음이었다.


"그럼, 평생 먹어야 할 것으로 글은 어떨까?"

"글이라고? 글을 어떻게 먹어?"

"읽으면 머릿속에서 느껴지지 않아? 때론 오싹하게 구워 먹고, 가끔은 차분하게 끓여먹고. 잔잔하면서도 확실하게 배와 영혼을 모두 채워주는 마음의 음식이지."

"그건 계속 먹다 보면 안 지쳐?"

"너는 글 읽다 보면 지치디?"

"응. 요샌 조금 긴 공지사항만 봐도 숨이 턱 막혀. 지칠 뿐만 아니라 미칠 것 같던데."

"맞아. 가끔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아. 하지만 글을 먹으면 생각을 해야 하잖아. 안 그러면 배설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너는 꼭 배설을 해야만 하니?"

"그건 살아있는 생명체로써의 자격요건 같은 거 아니야?"

"얘들아 우리 밥상에선 그런 얘기 하지 말자. 너흰 정말 변한 게 없구나."

"음.. 글은 음식으로 좋기는 한데, 평생 그것만 먹어야 한다고 하면 조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물론 잔잔한 맛도 있고 자극적인 맛도 있고 여러모로 물고 뜯고 씹을 거리가 많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나를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읽어서 먹는다면 그렇겠지. 그런데 씹어서, 아니 써서 먹으면 어때?"

"평생 글을 쓴다고?"

"응. 아침에 일어나서 2시간, 저녁에 잠들기 전에 2시간씩 쓰는 거야. 밥 먹는데도 그 정도는 사용하니까. 하루에 먹기 위해서 고민하고 음식점을 찾으러 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그 정도는 될걸."

"그건 듣기만 해도 지치는 일 같은데... 평생 먹어도 지치지 않는 거랑은 거리가 있지 않을까?"

"사유는 마음을 충족시키고 마음이 충족되면 몸도 충족되니까. 다른 무엇보다 허기를 채워주지 않을까."

"정반대일걸. 몸이 충족되어야 마음이 충족되지."

"마음이 먼저야."

"몸이 먼저라고."

"얘들아 어디 불교 우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주제로 싸우지 말고. 너흰 몸도 마음도 하나란다? 그런 의미에서 요가를 해보는 건 어때?"

"평생 먹을거리로 요가를 선택하는 거야?"

"그렇지. 그럼 몸도 마음도 다 건강해지잖아."

"너 요가하면 얼마나 배고파지는지 모르는구나. 아침에 수영하고 나온 것만큼 배고파져."

"하지만 마음은 살찌겠지?"

"아니야 넌 마음에 살찌우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크고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이 변태! 또라이! 치한!"

"아니 내가 뭐랬는데?"


아이들은 각자 지치지 않고 살기 위해선 취미를 갖고, 취미를 먹어야 하네 마네, 운동을 먹어야 하네, 아니네 물을 마셔야 하네, 아니 눈치 없이 왜 또 마시는 종류로 넘어가네, 위스키를 마시는 취미를 가지면 그게 최고이네, 위스키의 섬으로 돌아가서 피트 향 가득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고 싶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느 술자리가 그렇듯 두서없고 맥락 없는 대화들로 가득한 그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낸 것은 말없이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그였다.


"내가 보기엔 너희는 그렇게 지쳐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조용해져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늘 말이 없던 사람이 말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신비하고도 기이한 현상 중 하나였다. 모여든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딱 한 문장을 더 말했다.


"다들 무엇을 먹으면서 살든 지금처럼만 살면 좋겠다!"

아이들은 숙연해졌고, 나는 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어서 부드러운 미소를 띨 수 있었다. 무엇을 먹어야 지치지 않을지 고민한다는 것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는 것.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은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채우고 비우며 자라고 사라지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놓여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든 눈으로 들어가는 것이든 그 구분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귀로 들어가는 것들은 감정을 살찌우고, 눈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마음을 채우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몸을 배불린다. 손으로 매만져 온기를 전하는 것과 코로 들어가 기억을 만드는 것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말했고, 그는 바라는 바를 말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크게 다른 일은 아니었다. 먹고 싶다고 말하기에 사랑하고 싶을 수 있었고, 먹을 수 있기에 사랑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와 모두의 따뜻한 소망은 우리가 늘 바라왔던 애정과 우정처럼 마음 한편을 채우며 배부르게 만들어주었다.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이전 06화 그들만의 작은 천국 4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