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유와 욕망 마지막화

봄 단편소설집 마지막 이야기 : 시간을 세공하는 사람들

by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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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 시간을 세공하는 사람들






번화한 서울 종로 한복판에는 과거에서 툭 떨어진 것만 같은 옛 시장이 있다. 그곳은 보따리장수와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 헌 옷가게들과 생선찌개를 만드는 구수한 식당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릿한 그리움의 장소이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만 같은 향기가 머무는 그곳을 사람들은 중앙시장이라고 불렀다.



까치는 중앙시장 위를 날았다. 중앙시장 뒤편에서 자라난 오래된 건물들의 미로들이 까치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두 번 날갯짓으로 까치는 골목길 틈새로 북서풍처럼 비행했다. 까치의 갑작스런 강하에 놀란 도둑고양이들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적막한 골목을 긁었다.

까치는 그 뒷골목들 사이에서 오래된 시계 상가를 발견했다. 그곳은 세상의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신기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째깍째깍 걷는 것에 지친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그곳에 머물러 잠시 쉬어가고 있었다. 그 골목길엔 낯익은 편안함이 머물렀다. 한낮에도 햇빛 몇 줄기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을 느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 사이를 날던 까치의 눈에 골목 끝자락에 걸려있는 오래된 간판이 잠시 걸려 멈추었다.

‘우리 맞춤 시계 - 원하시는 시계를 만들어 드립니다.’


한 때는 순백색이었을 자그마한 간판은 페인트가 일어나며 고목의 나뭇결로 변해있었고 오래전에 붉은색으로 정갈히 쓰였을 글씨는 세월에 비틀려 삐뚤빼뚤한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간판 밑 부분의 작은 검은 글씨는 때를 너무 타서 시계를 만들어준다는 것인지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인지조차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까치는 그 낡은 간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시계를 찰 손목은 없었지만 시간을 느낄 작은 날개는 있었다. 까치는 작은 날개를 활기차게 움직여 처마에 걸터앉았다.

시계방 안에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겹겹으로 된 안경을 끼고 작은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계의 내부에서는 세상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작은 톱니바퀴와, 그 톱니바퀴에 맞물린 더 작은 톱니바퀴. 그리고 그 톱니바퀴를 돌리는 조금 날카로운 톱니바퀴, 그리고 그 톱니바퀴와 연결된 조금 둥그스름한 톱니바퀴. 남자는 작은 핀센과 정교한 손짓으로 가장 세밀한 톱니바퀴 하나를 꺼냈다. 그의 손짓이 경건하여 까치는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톱니바퀴가 조심스레 시계 바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자 시간도 멈추었다. 오려던 비가 잠시 멈칫거렸다. 까치는 그 모습이 경이로워 당분간 이 곳에서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하루는 하루 종일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남자는 시계를 고친 뒤 백열등에 달궈진 이마의 땀을 닦았다. 비가 오려면 시원하게 오지 왜 이렇게 멈칫거린담. 벌써 늦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남자가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었다. 남자는 군대에 있을 때 처음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군 생활 내내 그의 손목에 머물러있던 우습지도 않은 싸구려 시계 때문에 말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그가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에 장난감 같은 손목시계를 채워 줬었다. 채 1달도 안되어 비 오는 날의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멈추어 버릴 싸구려 시계를 말이다. 유치한 시계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남자는 꽤 많은 애착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시계가 멈추어 버렸을 때 세상이 멈춘 듯 덜컥 겁을 집어먹었고 말았다. 멈춰진 시계는 그의 귓가에 군대에만 오면 시간도 삶도 멈추어 버릴 거라던 친구들의 말을 속삭이는 듯했다. 그 말은 두려움이 되어 남자의 목구멍을 움켜쥐곤 했었다.

하지만 시계가 멈추어도 시간은 흘렀다. 고된 훈련 뒤에 잠시 쉬며 잠시만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간절히 바랄 때도, 새벽 4시에 초병근무를 서며 빨리 다시 따뜻하게 잠들 순간만을 바랄 때도 시간은 그저 꾸준히 흐르기만 했다. 시간은 언제나 무정한 발걸음이었다. 시간은 멈추어 기다려 주지도, 먼저 떠나버리지도 않은 채 물끄러미 남자를 쳐다보며 흘렀다. 그 끊임없는 흐름에 남자는 몸을 맡겼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것은 사회에서나 군대에서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삶이 힘든 것은 비단 군대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자의 일생은 그 자체로도 가장 힘든 훈련이자 전쟁이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하셨던 아버지. 바느질 공장에 다니시며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나가시던 어머니와 누이. 남자의 어머니는 폐에 섬유 부스러기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남자가 하루에 지쳐 등을 돌린 채로 잠을 청할 때면 건넛방의 어머니께서 뱉어내시는 마른기침 소리가 잠을 쫓아내었다. 누이도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남자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응어리가 생겼다. 그 응어리는 삶에 혹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픔은 어디에나 있었다. 남자는 그래서 군대에서 겪는 아픔도 웃으며 흘려보내리라 생각하며 망가진 시계를 웃음 속에 톡톡 두드렸다. 그는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들마저도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건은 그가 입대한 지 1여 년 만에 터졌다. 평온하려던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의 누이가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자가 기억하는 누이는 언제나 처연한 표정이었다. 첫 휴가를 나온 자신에게 잘 지내주어서 고맙다고,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던 누이의 표정을 남자는 잊을 수가 없었다. 왜 시집을 안 가느냐는 남자의 닦달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이제는 사랑하는 방법도 까먹었다고 대답하던 누이의 슬픈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누이의 사형선고는 늙어 부스러질 것 같은 작은 병원의 의사가 내렸다. 의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폐병이라고,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남자는 늙은 의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의사는 무정한 눈길로 책상 위에 놓인 누이의 폐 사진을 보여주었다. 공장에서의 쉼 없는 작업들은 누이의 폐를 소금사막처럼 쩍쩍 갈라놓았었다. 남자는 미치광이 같은 울음을 터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누이는 병원 침상에서 말라죽었다. 새하얗게 굳어진 그녀의 마지막 처연한 웃음은 남자의 눈꺼풀 뒤에 새겨져 눈을 감을 때마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누이를 그토록 깊게 사랑한 것을 누이가 떠나간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자는 마치 삶의 반쪽을 잃은 것만 같은 격통을 느꼈다.

누이가 죽고 난 뒤 남자의 삶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고통으로 휘어졌다. 잠 못 드는 밤들과 마음속에 칼날이 박힌 것만 같은 아픔이 반복되었다. 그 아픔은 그의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저미고 산산조각 내어 놓았다. 이상하게도 몸의 고통은 버틸 만했다. 선임 병사가 그를 때려서 어금니가 부러졌을 때에도, 식당에서 누군가가 실수로 뜨거운 국을 엎어서 다리에 3도 화상을 입었을 때에도 남자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절망의 크기가 너무나 컸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음이 온통 부서진 남자는 외면의 고통을 쉽사리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의 절망 속에 갇혀가고 있었고 그 절망 속에는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내색조차 제대로 못하며, 제대로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한 채로 남자는 마음속의 괴물에 점점 잡아먹혀 갔다.

사람들은 자꾸만 빨리 잊으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는 마냥 다가와서 삶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설교했다. 누구나 아프다고, 원래 누구나 사랑하는 이를 잃으며 사는 거라고. 어차피 살다 보면 다 죽는다고 온 세상이 그에게 자꾸만 속삭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살아온 삶도, 그의 누이가 겪었던 처절한 아픔도 ‘다 그렇게 살다가 간다.’는 한 마디로 요약되어 버리는 것만 같아서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쭙잖은 위로들은 남자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찔러댔다. 다들 원래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그 괴로운 말에 그는 심장이 너덜너덜 해져서 반박할 힘조차 없었다.

남자는 자살마저도 생각했었다. 누이의 기억을 안주삼아 오지게 마신 술을 받아먹고 괴물이 기승을 부리던 밤이었다. 남자는 절벽 끝에 서서 처음으로 삶을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 끝에는 넘실대는 달빛이 걸려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남자는 ‘저 하늘 너머에는 나와 누이가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무렵의 절망은 찌르는 것만 같은 선명한 감각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심장이 무거운 박동으로 그를 때려 한 걸음 더 차가운 절벽 끝을 향해 밀어 넣었다. 죽은 누이의 슬픈 미소가 자꾸만 그를 불러대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달 속에 누운 창백한 누이의 볼을 쓰다듬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끝을 향해 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절망이 무언가에 놀라서 멈칫거렸다. 그의 손목에는 여전히 장난감 같은 아버지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시계는 여전히 멈춘 그대로였다. 고장 난 지도 2년이 넘었건만 그 시계는 한결같이 죽은 채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갑자기 뛰어내려서 고통을 끝내는 것보다도 손목에서 죽어버린 시계가 더 신경이 쓰였다. 억울함과 슬픔, 그리움이 온통 뒤섞인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존재를 온통 뒤흔드는 1초가 째깍하고 그의 손목에서 흘렀다. 멈춰있던 시간과 풍경이 빙그르 어지럽게 돌았다. 남자는 멈춰있던 고통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갑자기 흐르는 시간이 너무 어지러워 토악질을 하기는 했지만 그에겐 다시 시간이 주어졌었다. 조금 더 돌아보고,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그는 지금 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벽을 내려왔다.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괴로운 시간들은 어떻게든 버텨낸 뒤에는 그저 순간이 되어 흘러갔다. 시간은 언제나 공평했다. 모두와 똑같게 흐르지는 않았지만 공평하게 흘렀다. 하루가 지나면 한 주가 지났고, 한 주가 지난 뒤엔 한 달이 지났다. 남자는 자신같이 큰 괴로움을 떠안고 있는 사람에게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그렇게 공평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여정들이 출발하는 순간 끝맺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오래도록 고장 나있던 손목시계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시계를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남자는 사실 새로운 세상을 마주칠 것을 기대했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조차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작은 톱니바퀴들과 큰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있었을 뿐이다. 서로에게 오밀조밀 맞물려 기대 있는 톱니바퀴들이 남자를 바라보며 시간을 빚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한 시계의 속살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는 드라이버를 들었다. 그는 시계를 고치며 자신의 시간을 고쳐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세공하는 나날들이 시작되었었다.






까치는 졸다가 깨어났다. 머리 위를 빗방울이 때리고 지나갔다. 까치는 뻐근한 작은 목을 돌려 책상 위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간 손님들은 거의 오지 않았었다. 가끔 가다가 말동무가 필요한 노인들이 들려서 자신들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기는 했지만, 유령과 같은 망자(忘者의) 발걸음이었다. 한 번은 비싼 양복을 입은 사장님이 비서를 데리고 오기는 했었다. 시계방의 남자는 며칠 뒤 아름답게 만들어진 큼지막한 시계를 완성시켜 웃으며 건네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까치는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아무도 없을 때에는 시간을 세공했다. 남자의 정교한 손짓은 시간의 흐름을 맺고 끊으며 별빛처럼 반짝이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작 드물게 손님들이 찾아오면 남자는 늙수그레한 미소로 겉모습만 화려한 시계들을 건네어주곤 했다. 까치는 남자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사냥을 하던 까치의 눈가에 골목길로 들어서는 한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단정히 접은 우산을 손에 들고 헤매고 있었다. 어두운 건물 그림자에 소년의 가녀린 모습이 가려졌다가 드러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계방 한 구석에서 움직이는 할아버지 시계의 낡은 추 같아서 까치는 나지막이 소리를 내었다. 까치는 소년이 왠지 그 남자의 시계방으로 향할 것만 같았다. 까치가 날개를 접고 시계방 처마 끝에 앉자 이 가게 저 가게 앞에서 고개를 기웃기웃거리던 소년이 시계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낡은 문에 매달린 오래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아저씨 맞춤 시계는 얼마나 하나요?”

남자는 고치고 있던 시계에서 고개를 들어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야 어떤 시계를 만들기를 원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특별히 원하는 시계가 있니?”

소년은 약간 고민을 하다가 손을 꼬옥 움켜쥐며 말했다.

“네. 시간을 담담히 흐르게 해주는 시계를 맞추고 싶어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주섬주섬 꺼내서 김이 서린 안경을 닦았다. 이런 주문은 참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담담히 흐르는 시계라. 말이 어렵구나. 그 시계는 네가 쓰려고?”

“아뇨. 누나에게 선물하려고요. 누나가 아프거든요. 만들 수 있으세요?”

“글쎄다. 약간 어려울 것 같기는 하구나. 그런 시계는 본인이 직접 와야 하는 것뿐 만이 아니라 아주 비싼 편이거든.”

소년의 얼굴에는 낙담한 빛이 돌았다.

“아……. 그렇군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안녕히 계세요.”


문을 화들짝 열고 나오는 소년에게 놀라 까치는 까악 거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은은하던 종소리의 여운이 시끄러운 딸랑거림으로 바뀌어 그림자처럼 소년을 쫓았다. 어두운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소년의 얼굴에 슬픈 빛이 어렸다. 그때, 소년의 등 뒤에서 시계방 문이 다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렸다.

“얘야. 잠시 멈추어 보려무나.”


소년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빛이 새 나오는 시계방 문틈 사이에 남자가 서있었다. 백열등 조명은 남자를 이마부터 비추어 코끝 아래를 그림자로 가렸다. 그 모습이 사뭇 엄숙해 보여 소년은 잠시 머뭇거렸다. 남자는 수염에 맺힌 전등 빛을 털어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이리 와보겠니. 우산을 놓고 갔더구나.”





하늘을 한 바퀴 돌고 온 까치가 다시 처마 끝에 앉았을 때에 소년과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외눈 안경을 끼고 자질구레한 시계의 부품들을 들여다보며 소년에게 물어보았다.

“왜 누나를 위한 시계를 만들고 싶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누나가 많이 아프거든요. 시계가 있으면 조금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누나가 어디가 아프기에 시계가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거니?”

“엄마 말로는 특별한 병 이름은 없대요. 근데 누나는 가끔씩 너무 무서워져요. 하루 종일 가위나 칼만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우산도 없이 비 오는 날에 정처 없이 밖을 헤매고 다니기도 해요. 옥상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보고 심장이 철렁했던 적도 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겠구나. 그런데 왜 시계가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니?”

“누나는 작가예요. 책을 쓰는 사람이죠. 근데 글이 잘 안되나 봐요. 누나 말로는 우울해야지 글이 잘 써진대요. 그런데 지금은 우울한데도 글이 멈추어버렸대요. 제가 보기에 누나는 초조함에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누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초조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에게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로운 시간이요. 그래서 시계를 주고 싶었어요. 볼 때마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시계를요.”

남자는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떠났던 그의 누이를 떠올렸다. 그가 겪은 아픔은 아마 소년과도, 소년의 누나와도 조금은 닿아있을 것이다. 그는 소년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이 그의 누나의 아픔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을지, 그녀의 시간을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고요한 시계방 사이로 째깍거리는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무뚝뚝하게 소년에게 말했다.

“너의 누나는 참 별일 아닌 일로 아파하는 것 같구나.”

“네? 뭐라고요?”

“세상을 살다 보면 참 많은 종류의 아픔이 있단다. 극복하고자 해도 극복을 할 수 없는 아픔도 있고, 떨쳐낼 수 없을 만큼 큰 슬픔도 있지. 너희 누나의 아픔은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닌 것 같구나. 너를 보아하니 너희 누나도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나이 그때에는 원래 그 정도로 다들 힘든 거란다. 하지만 어릴 때에 힘들던 많은 일들도 어른이 되면 다 별일 아니게 될 테다. 다 지나갈 게다. 시간은 어차피 흐르니까 말이다.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일 게다.”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저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뭐가 아닌 것 같니?”

“어릴 때에 아프다고 해서 그건 별일 아니라는 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삶의 무게는 어리다고 해서 더 가볍지는 않은 거잖아요. 시간이 어깨 위에 더께처럼 쌓여 삶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릴 때는 어리니까 아픈 것들이 있는 거 에요. 그걸 받아줄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없다면 그 사람은 부서질 수밖에 없어요. 커서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죠.”

소년의 대답에 안경 뒤에 감추어져 있던 남자의 눈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는 소년의 대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남자는 눈을 떠 소년을 바라보았다.


“고맙구나.”

“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단다. 서로의 아픔을 비교하고 재기 바쁘지. 서로가 가진 시간을 재고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란다.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어 주어서 고맙다.


소년은 가만히 눈을 깜빡거렸다. 전등 불빛을 받아 시간처럼 황금색으로 빛나는 남자의 눈동자가 소년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누나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니?”

“그건 잘 모르겠어요. 조금 넉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한 번 같이 만들어보도록 하자꾸나. 하지만 나 혼자서는 안 될 게다. 네 누나에 대해서 네가 많이 알려줘야 한단다.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려는 건 시계가 아니라 네 누나를 위한 시간일 테니까 말이다.”

소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까치는 매일 오후 소년이 학교가 끝나고 찾아올 무렵이 되면 까마득히 가파른 중앙시장 성당 첨탑 위에 앉아서 소년을 기다렸다. 소년의 발걸음은 매일 조금씩 가벼워져 갔고, 까치도 덩달아 더 활발하게 날갯짓하며 날았다.

시계방의 남자도 바빠졌다. 까치는 매일 남자가 어디론가 갈 때마다 몰래 하늘 높은 곳에서 그를 쫓았다.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곳들을 자주 갔다. 자전거를 타고 유명한 예술가들의 거리 앞에 가서 그곳에서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을 만나기도 했고, 그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자그마한 목걸이나 펜 같은 것을 사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 개울가에 있는 조약돌을 한 참이고 들여다보는가 하면, 철물점에 들어가서 알아듣기 힘든 이런저런 주문을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자동차를 타고 저 멀리 동해 바다까지 가버리는 바람에 까치는 날다가 지쳐 남자의 머리 위에 배변활동을 하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기도 했다.

남자는 그렇게 멀리 떠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주머니에 빛나는 것들을 한가득 담아오곤 했다. 그것은 세상의 아지랑이이자 보이지 않는 별빛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찬란함은 아니었지만, 영혼을 밝히는 소소한 영롱함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소년은 매일 오후에 시계방에 들려 자신과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에게 들려주었다. 소년과 그의 누나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녀의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불행하면 불행한대로 마음의 아픔은 늘 존재했다. 상처라는 건 줄자를 대고 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 키 재듯 비교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간이 있었고, 삶의 무게에 억눌려 허우적대는 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삶이 찬연할수록 그 삶을 채우기 위해선 더 화려한 색채가 필요했고, 삶이 넓을수록 그 삶을 채우기 위해선 더 큰 자존감이 필요했다. 사람은 세상에 딱 맞는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삶의 자물쇠에 자신이라는 열쇠를 맞추어나가는 그 작업들은 언제나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누구라도 삶을 추스르는 여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는 소년과 함께 그런 추스름의 시간을 빚고 있었다.

남자는 소년에게서 누나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고등학교 때의 좌절과 아픔에 대해서 들었다. 부모님이 거는 무거운 기대와, 그에 부응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을 엿보았다. 세상은 거대했고 20살 남짓의 젊음으로 다 담기에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누구나 그만큼은 힘들겠지만, 누구도 그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작가라는 직업은 자기 자신을 조각내어 세상을 표현하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조각내어 세상을 담아내기에 그녀는 아직 너무 여렸다. 남자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소년으로부터 전해 들으며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그녀의 몸보다도 큰, 세상만큼이나 거대한 구멍을 느꼈다. 그녀는 삶에 부딪혀 부서져가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마음속 구멍을 메워주고 삶의 부딪힘을 부드럽게 바꾸어줄 시간을 천천히 빚어내었다. 그녀가 세상을 두드리다 깨어져버리지 않도록 잠시 쉬며 달궈진 삶을 식힐 수 있는 시간을 두드려 세공해주었다.






깊은 밤, 까치는 깃털이 별빛을 두드리는 것 같은 부드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날갯짓 한 번으로 골목길 바닥에 내려서자 시계방 안을 쪼르르 줄지어 바라보던 생쥐들이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간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밤이었다. 달빛을 받으며 까치는 책상 위에 앉은 남자를 지켜보았다.

남자는 시계를 만들고 있었다. 가장 큰 깃털보다도 작은 자그마한 시계였지만 안에 들어가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넓은 책상 위에 한가득 빛나는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수북이 모여 있었다. 남자는 모노클로 조각들을 하나하나 세심이 들여다보며 시계 안에 담았다. 창가에 놓인 낡은 라디오에서는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와 시간과 시간 사이의 마디를 기우는 실밥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이야기가 되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 시계는 만들어져 갔다.

남자가 시계에 자그마한 부품을 넣고 손톱만한 작은 망치로 때리면 그 사이에선 불꽃같은 섬광과 맑은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영혼을 울리는 소리이기에 까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비석에 낡은 정을 박아 넣어 인생을 새기는 소리. 오래된 백지위에 따뜻한 웃음을 그려 넣는 소리. 망가진 시간을 잠시 쉬어가게 하는 소리. 부서진 영혼을 이어 붙이는 소리.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새벽녘이 부서져도 들려오는 시간의 발걸음 소리. 밤새도록 들려오는 그 맑은 소리에 까치는 수줍게 날을 밝히는 개밥바라기별이 얼굴을 비출 때까지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





아침햇살이 부리를 두드리는 느낌에 까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시계방 안에서 남자는 곤히 잠들어있었다. 시계는 완성되어 책상 끝에 놓여있었다. 참으로 볼품없는 작은 시계였다. 남자가 여태까지 완성한 다른 수많은 장엄한 시계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시계였다. 까치는 소년이 오면 참 많은 실망을 하겠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향해 날았다.

소년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까치는 미리 실망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해주고 싶어서 소년을 보며 까악 까악 소리를 질러대었지만, 소년은 기쁜 소식을 들은 사람마냥 까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 뿐이었다. 소년은 사뿐한 발걸음으로 시계방으로 날듯이 걸어갔다.

남자는 책상에서 시계를 들어 소년에게 건넸다. 소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가....... 원래 이런 건가요?”

“그렇단다. 뭔가 문제라도 있니?”

“굉장히 특별한 시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평범해 보여서요. 그리고 초침이 움직이지도 않는걸요.”

“아직 마지막 부분이 완성되지 않아서 그렇단다.”

남자는 시계방 구석에서 오래된 상자를 하나 꺼냈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먼지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빛바랜 사진들과 꾸깃꾸깃한 편지가 나왔고, 이름 모를 말라비틀어진 꽃송이와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도 나왔다. 상자의 밑바닥에서 남자가 조심스레 꺼낸 것은 오래되어 부서져 가는 장난감 같은 손목시계였다. 그 손목시계를 열고 남자는 가장 작은 태엽 하나를 꺼냈다. 부서져가는 시계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그 태엽만큼은 마치 그날 새벽의 샛별처럼 빛났다. 남자는 소년의 손에 있는 시계를 열고 태엽을 끼워 넣었다. 별빛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시계 속의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하는 작으면서도 투명한 소리와 함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년은 넋을 놓고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았다. 시계의 뒤편에는 깃털처럼 부드러운 글씨로 글귀가 적혀 있었다.

‘누구와도 다른 당신만의 아픔의 시간을,
삶이라는 모루에서 두드려 별을 자아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


소년은 말없이 고개 숙여 남자에게 인사했다. 그 인사에는 깊은 고마움이 깃들어 있었다. 남자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소년은 시계를 더없이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모습으로 시계방을 떠나갔다. 그 뒷모습에는 가을의 마지막 햇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까치는 소년을 따라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곧 겨울이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선 쓸 만한 먹잇감들이 많은 둥지를 다시 찾아야 했다. 까치는 창공을 향해 힘껏 날갯짓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뒤돌아보며 그는 왠지 소년의 품에 담겨있는 시계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심스럽게 세공된 마음이 그 안에 담겨있었다.




다음 해 봄에 까치가 돌아왔을 때, 시계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까치는 익숙한 날갯짓으로 가볍게 처마 끝에 날아들었다. 어두운 골목길은 여전히 조용했고 지친 시간들이 말없이 머무르다가 흘러갔다. 까치는 시계방 책상 위에 무언가 놓여 있기에 의아해하며 창문 앞으로 날아들었다. 온풍기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그것은 작은 소설집이었다. 까치는 그 소설이 왠지 소년의 누나의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는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까치는 사진 속에서 소년과 소년의 누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짓고 있는 미소가 아침햇살보다도 더 아름다워서 까치는 한참을 세상을 향해 까악 까악 기쁨의 소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