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편소설집 열한 번째 이야기 : 가을별고기
열한 번째 이야기 : 가을별고기
우리 부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낡은 전설이 존재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군번 때부터 전해오는 이 오래된 전설은 때로는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오고 때로는 암호 같은 낙서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때로는 상상도 못 한 초소 벽 귀퉁이에 새겨져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곧 전역하는 말년 병장들은 새로 들어온 신병들을 침대 머리맡에 앉혀두고 이 전설을 이야기해주었고, 또 그 신병들은 병장이 되어 다음 신병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 그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우리 부대를 스쳐 지나간 모든 병사들의 닳고 닳은 염원과 희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전설은 가을별고기에 대한 것이었다. 가을별고기가 우는 날, 모든 병사들의 고민과 괴로움이 풀리고, 사랑해온 모든 것에 닿으며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전설이기는 하지만, 그 희망을 마음에 품는 것은 우리 부대의 전통과도 같은 일이었다. 누구나 가을별고기 전설을 희망 삼아 아득한 군생활의 등대를 지폈다. 그것은 우리네 마음속의 섬이었다. 오갈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 닿을 수 있는 것만 같은 섬.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믿게 해주는 그런 마음의 안식처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 부대를 절벽 부대라고 불렸다. '어디 가세요?' '아, 저기 절벽 부대 너머 야트막한 평지에 쑥을 좀 캐러 갑니다.'와 같은 종류 대화는 인근 마을 주민들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부대 내 유일한 운전병이던 동규는 항상 그 이름을 들으며 못내 투덜거리곤 했다.
‘절벽 꼭대기의 부대라서 절벽 부대라니, 정말 유치한 작명 센스지 않습니까?’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그보단 많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야트막한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우리 부대는 1년 내내 휴가가 하나도 없는 몇 안 되는 부대 중 하나였다. 해안가 경비를 서는 독립 중대의 특성상 병사들이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렇게 쭉 지내다 보니 어느새 휴가가 없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1년 9개월의 시간 동안 집에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군생활을 견디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보상차원에서 다른 부대의 병사들보다는 1달 일찍 전역시켜주기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1년 9개월이 견디기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곳이 인간관계의 절벽이기에 절벽 부대인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연락도 없는 아들들을, 친구였던 이를, 사랑하는 사람을 1년 9개월이나 무작정 기다려줄 만한 사람들은 없었다. 서서히 잊혀 가고,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이곳에서 우리는 삶의 절벽을 관계의 절벽을 맞닥트리는 것이다. 관계가 짙은 해무처럼 흐느적대다가,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아주 막막한 군생활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그래서 가을별고기의 전설을 그토록 곱씹었는지도 모른다. 가을별고기의 전설은 직업군인인 부사관들이나 장교들에게는 절대로 알려줄 수 없는 병사들만의 비밀이었다. 부사관들이나 장교들은 그래도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집에도 다녀오고 시내에 물건도 사러 나가고 그랬다. 가끔씩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바깥공기도 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가을별고기의 이야기 같은 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달랐다. 병사들은 언제고 가을별고기가 울기만 하면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잠시나마 휴가를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 희망마저 없었다면 그 누구도 그 긴 세월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그림자뿐이라 수십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할아버지들에 할아버지들의 무덤에 백골이 쌓이고 잡초가 터럭이 될 때 동안 그 누구도 가을별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소리로 우는지 듣지 못했다. 적어도 그해 가을이 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 해는 아주 이상한 해였다. 1월의 첫 째 날부터 취사병이던 주호는 내려온 공문을 들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이것 보셨습니까? 올해부턴 취사 재료 중에 돈까스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렇네. 그런데 왜 이렇게 신났어. 돈까스가 뭐 별거냐.’
‘아유, 제가 튀기면 다릅니다. 딴 건 몰라도 튀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지 말입니다. 그리고 튀김 하면 돈까스지 않습니까? 그거 제 전문입니다.’
사회에 있을 때 르 꼬르동 블루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요리학교에 다녔다고 자랑하던 순박한 주호는 그 날 하루 종일 달맞이꽃처럼 환히 웃었었다. 재료가 오면 그냥 돈까스가 아니고, 아주 완벽하게 달덩이 같은 돈까스를 튀겨내겠다면서 말이다.
주호가 정말로 돈까스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배웠다는 사실은 곧 분명해졌다, 1월 중순이 되어서 취사 재료가 도착했을 때, 주호는 그야말로 엄청난 돈까스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주호가 튀겨낸 돈까스는 손가락으로 찔러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담백했고, 튀김옷은 시월의 건초보다도 바삭바삭했다. 또 육질은 어찌나 쫄깃한지 7성 호텔의 스테이크를 씹는 것만 같았고, 감칠맛 나는 소스는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국자로 퍼먹어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별 것 아닌 재료로 이런 걸 만들 수 있었는지 모두가 경탄을 마지않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요리였다.
평소에 남을 별로 칭찬하는 일이 없던 깐깐한 지휘관마저도 주호가 튀긴 돈까스를 한 입 먹어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밖에서 먹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군.’
그 뒤로 돈까스가 나오는 날은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일대 행사가 되고 말았다. 사회로 나간다고 해도 이보다 더 맛있는 걸 먹어볼 일은 없을 거라고 주호를 치켜세우면서 말이다. 실제로 사회에 나간다면야 훨씬 맛있는 음식들이 지천으로 널려있기야 했겠지만 그즈음되어서 사회는 닿을 수 없는 이데아 같은 것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어차피 전역할 때 까지는 닿을 수 없는 곳이라면 차라리 지금 이렇게 돈까스 정도를 먹으며 위안을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돈까스를 먹는 그 순간만큼은 다들 한 마음이 되어 여유를 만끽했다. 군대 속의 단편일률적 의미 속에서도 조금만 노력하면,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이렇게 멋진 세상의 의미를 맛볼 수 있다고 위안하며 말이다.
하지만 돈까스가 나오는 날은 곧 의미가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다.
돈까스의 맛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돈까스는 똑같이 바삭바삭했고, 육질은 부드러웠다. 그 날 아침이면 부대 전체에 주호가 연주해 낸 향긋한 튀김 냄새가 감돌았고, 모두가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돈까스가 나오는 날에는 부대에 횡재가 생기기 시작하고 말았다.
첫 희생자는 부대를 방황하며 자라던 고양이 ‘짬이’였다.
짬이는 갈 곳 없는 길짐승이기는 해도 입맛만큼은 사람 못지않은 녀석이었다. 주호에게는 먹을 것이 남으면 언제나 근처를 방황하는 짐승들을 위해 조금 덜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직업군인인 취사담당관이야 짐승도 꼬이고 벌레도 꼬인다며 질색을 했지만, 주호은 음식을 하는 건 짐승들과도 나누고, 풀하고도 나누고, 세상하고 소통하면서 만드는 일이라면서 안 그러면 천벌 받는다고 능청스레 음식을 동식물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날도 짬이는 호젓하게 그곳에서 남는 돈까스 튀김가루라도 주워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짬이는 부대 주변 동물들 사이에서는 가히 산중지왕 같은 짐승이었는지라 녀석이 취사장 근처를 알짱거릴 때는 그 어떤 동물도 그 주변을 얼쩡거리질 못했다. 까불까불한 까치 녀석들은 몇 번 부리를 들이밀다가 짬이의 날카로운 이빨에 호되게 당했고, 통통하게 살찐 쥐새끼들은 건물 밑에 숨어서 벌벌 떨기 바빴다. 이번 봄 들어 잡아먹힌 비둘기가 몇 마리인지는 뒷산에서 짬이 이빨 자국이 박혀 있는 뼛토막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고, 덕분에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비둘기들마저도 짬이 눈치만큼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짬이는 느긋하게 제 집 안방 마냥 갸르릉 대며 취사장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다가올 재앙을 조금도 눈치조차 못 챈 채 말이다.
따뜻한 날이었고, 대기 중에 만연한 튀김 향기는 꾸벅꾸벅 나른한 기운을 수놓았다. 덕분에 천근만근한 눈꺼풀을 만끽하던 짬이는 취사지원관이 격분했을 때 제 때 도망치지 못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던 취사지원관은, 자기 앞마당 같은 취사장에서 부모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안방마냥 졸고 있는 꼴을 그냥 두고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취사지원관은 짬이를 걷어차야만 했고, 깜짝 놀란 짬이는 음식물 쓰러기를 가져가려고 오고 있던 트럭 바퀴 사이로 도망치고 말았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돌아가는 바퀴 사이로 숨어드는 검은 그림자가 되어서 말이다. 짓이겨지는 비명이 우리가 담은 짬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따라 돈까스가 영 불편하기만 했던 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호는 그 뒤로 그 날의 충격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요리를 했다. 나날이 맛있는 음식이 나왔고, 그 누구도 요리의 맛을 가지고 주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1달 뒤, 4월의 돈까스가 나오던 날에도 터지고 말았다. 봄이 완연한 점심때 있었던 일이었다.
그 날은 모두가 함께 돈까스를 먹은 뒤 나른한 햇살 아래서 토끼풀을 뽑고 있었다. 어느덧 날씨가 따뜻해져 있었고, 잔디밭에서 이 질긴 생초(生草)와 사투를 벌인지도 여러 날이 지났었다. 하지만 토끼풀의 그 초록빛 웃음이 왠지 밉지만은 않은 터라 나른한 봄의 햇살 아래서 다들 함께 노닥거리는 꼴이 되었을 뿐이다. 나도 쉬이 잘려나가지 않지만, 너도 참 질기구나. 꽃 한 송이, 게 뭐라고 그렇게 온 봄을 살라가며 티워 내는 거니. 나도 너처럼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온 뒤엔 항상 무덤에서 발딱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 열렬한 생의 모습에 마음이 괜히 흐뭇해지고 만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질긴 것이야말로 토끼풀 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힘 조금만 주어도 툭 뜯어져 나오는 토끼풀이지만 이상하게도 느낌으로는 세상 어떤 닻줄이나 철사보다도 질기게만 했다. 토끼풀의 뿌리는 혈관처럼 구불구불 흐른다. 조금 깊게 파고들어 세상의 양분을 야금야금 먹기도 하고, 지표면을 강물처럼 굽이굽이 흐르며 새 잎을 틔우기도 한다. 그 뿌리를 다 잡아 뜯지 않으면, 그 짙은 녹빛의 혈관을 흔적도 없이 잘라내지 않으면 토끼풀은 계속 자라는 것이다. 삶 역시 그렇게 이어지듯이 말이다. 아무리 뜯어내고 소리를 지르고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비가 왔다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토끼풀은 새초롬히 고개를 들곤 했다. 그렇게 잘라도 잘라도 끝이 없기에, 토끼풀은 질기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돈까스를 잔뜩 먹고 배가 뽈똑해진 나온 동규는 배를 두드리며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김정환 상병님, 배가 뒤집혔던데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배가 뒤집혀.’
‘요 앞바다에서 뭐 통통배 하나가 뒤집혔답니다. 뭐, 다 구출되었다고 하는 걸 보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보아하니 절벽 연안으로 들어오다가 암초에 작은 낚싯배 하나가 좌초된 것 같았다. 절벽 앞바다는 들쭉날쭉한 돌 들이 제멋대로 자라서 영 위험한 바다기는 했지만, 또 그만큼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위태로운 곳일수록 매력적인 것은 참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덕분에 1년에도 한 두 차례는 그 근처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히거나 부서지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별일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찾아들었다. 암초에 부딪힌 배들은 선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는 했어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채 가라앉지도 않았다면 다들 잘 뛰어내려서 탈출했겠지 싶다. 그저 이번 달에도 돈까스가 나오는 날에는 또 이상한 사건이 터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동규는 무덤덤한 호미질로 땅을 두드리며 말했다.
‘배까지 침몰하다니, 요샌 참 굵직굵직한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쟁 같은 큰일이나 터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야, 신경 쓰지 마. 생명이 박동하는 봄이야. 우리가 싸워야 할 전장은 이 녹빛의 전쟁터라고. 어느 풀을 살려야 할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건 나라가 결정하게 두고, 우리는 풀과 싸우자.’
동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맛있는 고기 먹고 풀과 소득 없이 싸우고 계신 겁니까. 아무리 봐도 싸움보다는 애정표현에 가까우신 것 같습니다. 점심 드신 지 한 참 지났는데 고작 몇 뿌리가 뭡니까.’
‘원래 싸우다 보면 정들고 그러는 거지 뭐. 너도 곧 그럴걸. 햇빛도 좋고 배도 부르니 기분도 행복하잖아.’
우리의 의미 없는 호미질에 잠시 고개를 숙인 토끼풀들은 잠시 킥킥대고 웃는 것도 같았다. 아무리 세상이 호미질을 해대고 곡괭이질을 해 댄대도 수십 년이 지나고, 수천 년이 지난대도 저들은 꽃 틔우고 조곤조곤 노래하며 살 걸 아는 거겠지. 인간이 다 의미 없이 바스러진 뒤에도, 풀들은 그렇게 노래하며 피어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도 질기게 살아야 할 텐데, 이 모진 생활 잘 견뎌야 할 텐데, 하면서 호미질을 거듭한다. 우리가 견뎌내리라 희망하면서 말이다.
동규는 그랬다. 저번 달에는 짬이가 사고를 당하더니, 이번 달에는 돈까스 나오는 날에 배가 뒤집힌다고, 참 이상하다고 말이다. 우연이라는 것은 동규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조금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입안이 텁텁해오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던 돈까스의 짙은 기름기가 입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새초롬한 토끼풀의 푸른 피로 물든 두 손 끝과, 입안의 기름기가 문득 조금 불편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전조라도 되는 듯이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침몰한 배에 채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구조될 줄 알았건만, 배는 생각보다 심하게 암초에 들이박은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구조팀이 들어가기에도 영 위험한 지역에 난파되어 있었다. 그 인근은 보이지 않는 물밑 조류가 심해서 자칫 잘못하다간 베테랑 다이버들마저도 실종되기 쉬운 지역이었다.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침몰하는 뱃속에 갇혀 행방불명된 상태였는데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동규도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다 구조된 것 같았는데, 분명 다 탈출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할 것만 같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작 몇 시간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버린 걸까. 배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 중에는 여름방학을 맞아 바다낚시를 간 고등학생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아직 채 꽃 틔우지 못한 어린 청춘들이었다. 파릇파릇하게 세상의 호미질을 견뎌내며 웃던 토끼풀 같던 아이들. 고등학생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게도 그 시기는 시련이었고 고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뒤에 다가올 순간들에 무엇을 바랐는지 역시 잘 알고 있다. 마침내 찬연해질 순간을, 마침내 하늘을 향해 오색 찬연한 꽃잎을 자랑할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 어제 같다. 아직 영글지 못한 뿌리를 세상에 박아 내리고, 우박 같은 고통과 폭풍 같은 외로움을 견디며 자라났었고, 나만의 티움을 기다렸었다. 아마, 그 아이들의 학창 시절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었겠지 싶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그다음’은 없었다.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도, 폭풍의 끝도 없었다. 여리게 흔들리기만 하던 마음, 조금 깊게 뿌리내릴 기회 없이, 그들은 천 길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 깊은 곳으로, 그들이 피우고 싶었던 꽃의 색채,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월이 흘러도 꽃은 피고, 바람은 계속 분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사람은 쉬이 사라진다. 영롱해지지 못하고, 찬연해지지 못한 채, 때로는 피어나지 못한 채, 어느덧 사라진다.
동규는 다음 날 아침 해안가 구조작업에 파견을 갔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돌아오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지만,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군인이지만, 그것은 전문적인 직업은 아니다. 원해서 2년 동안 복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짧은 시간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완벽한 전문가도 못될 터였다. 배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속에 잠수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안 정찰 부대라고 해도 바닷속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조하고 배를 꺼내오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기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그 현장에 가는 동규를 말없이 응원해주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동규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출발했고 말이다. 잔디밭에는 뜯기다 만 토끼풀 뿌리와 동규가 두고 간 호미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남겨진 나는 마음을 다잡고 호미를 움켜쥐어야만 했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부둥켜안지만 슬픔이 쉼 없이 흐른다. 세상은 영원히 지속되는데, 오늘 해가 지면 내일 해가 뜨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하룻밤 새에 가라앉은 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상실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10 명도 넘게 물속으로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라, 문득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포가 마음에 깃든다. 아직 채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을 움켜쥐어 영혼이 온통 움츠러드는 것만 같다. 하루살이 같은 삶, 그저 다음 달의 돈까스 먹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삶의 의미가 온통 뒤엉키고 있었다.
동규는 저녁때가 되어서 전화를 했다.
‘김정환 상병님.’
‘어, 동규야. 잘 도착했니. 거기 상황은 좀 어때.’
‘여긴,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직접 와서 보시지 않으면 모르실 겁니다.’
‘그 정도야? 난 솔직히 그런 현장 감당할 자신 없는데.’
‘김정환 상병님-’
‘응.’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셨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왠지 막막하기만 했다. 고작 25년여의 인생, 나는 사랑하며 살았을까.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았을까. 몇 번은 있었던 것도 같았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과 편지에 써보았던 기억이 있다. 사랑한다고, 감사드린다고, 꼬질꼬질한 펜글씨로 꾹꾹 눌러 적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사랑을 우스꽝스럽게 전했었다. 몇 번인가,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마저도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잘 말하지 못했다. 소금으로 이루어진 사막을 씹는 기분이 든다. 제대로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별로 안 했던 것 같아. 왜?’
‘그럼, 지금부터라도 하시면서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안 하시면 후회하실 테니까 말입니다. 지금 제 눈엔 사람들의 그 후회가 보입니다. 사랑한다고 한 번이라도 더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의 후회가 보입니다. 다른 게 슬픈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했는데,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그게 가장 큰 후회인가 봅니다.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걸 이젠 전할 수가 없다는 슬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새벽녘의 혜성 같은 것. 그 꼬리 끝자락을 좇으며 꿈만을 꾼다. 사라지기에 찬란한 별인데도, 사람들은 헌사를 바치길 주저한다. 사랑하기에, 사랑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인데. 입술을 꾹 깨물며 전화를 끊는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렵다고 우리는 말하지 못한 채 사는 걸까. 속상함이 해무처럼 밀려든다.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멍하게 만드는 수화기 뚜뚜 거리는 소리 너머로 침묵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잠은 찾아오질 않았다.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며 오고 가는 생각을 붙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마저도 꿈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잠조차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전화번호 누르려고 한들 손끝은 멈칫거린다. 왜 이리도 어설픈 걸까. 마음 하나 제대로 건넬 줄 몰라서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걸까. 대답은 없다. 나는 전화번호를 결국 누르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멈칫거리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어느새 두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볼 수 없는데 그리워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저 절벽 끝에서 나를 내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희망,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은 마음에 담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게 4월도 흘렀다.
5월이 되어선 돈가스가 조금 일찍 나왔다. 돈가스가 나오는 날마다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징크스를 깨고 싶어서 주호가 조금 조급해졌는지도 모른다. 돈가스는 평소보다도 크게, 한 사람당 두 개 씩이나 나왔고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회에서는 돈가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멋진 요리였고, 병사들은 모두 군침을 흘렸다. 그건 내놓으라 하는 수제 돈가스보다도 환상적인 요리이었다. 각 돈가스의 크기가 달랐고, 두께가 달랐고, 어디에서 고소한 지방질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고, 이보다 더 완벽한 돈가스라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돈가스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날도 묘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 날 아침에 취사장에는 세령이가 나와 있었다. 몇몇 병사들이 멀리서 담배 피우는 척하면서 세령이의 고운 자태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부터 훤히 보였다. 세령이는 동네 소작농 아저씨의 딸이었는데, 아저씨께서 음식물 쓰레기를 비료로 가져다 쓰러 오실 때마다 따라오는 아이였다. 다소곳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모습이 예뻐서 부대 내 많은 병사들이 남몰래 마음을 품고 있는 소녀이기도 했다. 누가 ‘세령이 예쁘지 않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누구라도 ‘응. 그렇게 고운 웃음을 짓는 소녀가 예쁘지 않을 리 없지.’ 하고 대답할 법한 그런 소녀, 여자라곤 반경 수 km 안에서 볼 일이 없는 부대 내의 유일한 소녀. 그런 세령이가 부대 내에서 인기가 없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일 터였다. 세령이를 보고 있으면 여름녘 장마 속에서도 피어나는 달맞이꽃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소녀는 지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언제라도 싱그러이 웃음 지어줄 것 같은 그런 생(生)의 감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세령이는 이상해 보였다. 사실 근 2주 만에 세령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1주일에 한두 번씩은 아버지를 따라 취사장에 비료를 가지러 왔었는데 말이다. 긴 시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세령이의 모습은 이상하게 무척 수척해 보이고 창백해 보였다. 달빛을 받은 비석처럼, 곧 바스러질 것만 같이 위태해 보였다. 평소라면 그래도 시린 미소라도 지으며 살갑게 인사해 주었을 아이가 창백한 밀꽃 마냥 파르스름하게 자리에 앉아만 있는 모습은 모두에게 아주 이상한 기분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어느덧 1년도 넘게 본 사이라 괜찮으냐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했지만, 아무리 넉살 좋은 병사라도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싸늘한 표정이 세령이의 얼굴엔 머물러 있었다.
세령이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시체 같다는 생각은 그날 나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과 시체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아주 중요한 가치 하나가 툭하고 떨어져 나오면 사람은 시체 같아 보인다. 단지 눈코입 다 달려있고 팔다리가 움직인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마치 태엽이 덜 감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람이 불지 않는 해변처럼, 세령이의 표정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생의 감각이 말이다.
그날 저녁에 해안가 침몰 사고 현장에서 돌아온 동규는 세령이에 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파견 현장에서 세령이를 봤다는 동규의 말에 모든 병사들의 관심이 동규에게로 집중되었다. 핼쑥해진 얼굴로 돌아온 동규는 물을 천천히 들이키며 말했다.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같이 파견 나오신 최원사 님도 이건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동규는 배에는 세령이의 오빠가 타고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살 터울의 누구보다 믿을 수 있던 친오빠였다. 그 파도치는 바다에서 세령이는 평생 낼 것 같지 않은 비명으로 오빠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하룻밤만 자고 돌아온다고 해놓고, 왜 돌아오지 않는 거냐고. 어디로 갔냐고. 시집갈 때까지 돌봐주겠다더니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눈물 섞인 비명을 지르며 말이다. 그 비명은 바람결을 타고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양날까뀌처럼 마음을 할퀴는 태풍보다도 더 마음을 저며 오는 비명이었다.
아직, 누구를 잃어볼 나이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에도, 가족을 잃어보기에도 우리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잃어보았다. 이 적막한 해안가 절벽에서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1년 9개월 동안 못 보며 우리는 이미 많은 상실을 겪어야만 했다. 함께 웃으며 지내면서도,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가장 큰 불안은 그것이다. 다들 나를 잊었으면 어떡하지. 내가 없는 세상이 너무나도 평온하면 어떡하지. 내가 없어서, 더 좋은 세상이고, 내가 없어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진 것이면 어떡하지. 우리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 우리는 평생을 마음에 품어온 가치들을 상실해야만 했다. 보고 싶어도 마음에서 지우고, 안고 싶어도 눈물로 흘려보내야 했다. 그저 달 올려다보며, 그들이 나를 잊지 않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다 상실을 알기엔 너무 어렸지만, 또 모두가 세령이의 상실을 영혼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야간 초소 근무가 잡혀 있었다. 달빛 일렁이는 바다가 다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초소에서의 근무였다. 함께 초소 근무를 서게 된 연홍이는 이번 달에 일병이 된 20살의 어린 친구였다. 여리여리하고 수줍음이 많던 연홍이는 총끝에 반사되는 희끄무레한 달빛을 가만히 보다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내어놓고 말았다.
‘김정환 상병님.’
‘응. 왜.’
‘가을별고기의 이야기, 믿으십니까?’
‘응.’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응. 우리 다, 살면서 언젠가는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이렇게 아프기만 하지는 않겠지.’
연홍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렇게 행복해질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환 상병님은 나이가 좀 있으시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말야.’
‘아파하는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 말에 잠시 멈칫거렸다. 연홍이가 세령이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연홍이가 품은 마음은 다른 병사들이 품은 마음과는 조금 다른, 좀 더 애틋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령이 위로해주려고?’
‘그러고 싶긴 한데,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감도 안 옵니다. 말도 안 나오고, 마음만 먹먹해져 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위로 못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군가를 잃어서 마음이 아픈 건 뭘 어떻게 해서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냐. 너도 외로워서 아픈 주제에 남을 어떻게 위로해. 그냥 지켜봐 주는 게 나아. 시간이, 세상이 알아서 위로할 거야.’
연홍이는 침묵을 지켰다. 멀리서 일렁거리는 파도소리가 그날 밤 따라 더 아프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난감해하며 머뭇거리다가 몇 마디를 더 꺼내놓고 말았다.
‘그리고, 너 세령이 좋아하잖아.’
‘그렇습니다.’
‘슬프지만, 그래서 더 위로 못해. 좋아해서 곁에 있어주고 싶은 거니까. 좋아해서 세상을 다 가져다주고 싶은 거니까. 그렇게 다가서 봐야 그냥 서로 마음만 데일 뿐이야. 정말로 진심이라면, 다 끝난 다음에 해. 너의 아픔이 끝나고 세령이의 아픔도 끝난 뒤에도 위로해주고 싶으면, 군대 끝난 뒤에도 그 마음 그대로면, 그때 뭘 하려고 해 봐. 지금은 아니야.’
바다에 반사되어 나오는 시퍼런 달빛이 연홍이의 얼굴을 귀기 가득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푸른빛 안에는 막막한 슬픔과 외로움이 담겨 나온다. 우리가 견뎌야 하는 시간은 왜 이런 것일까. 가을별고기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 질 수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가을별고기의 울음소리는, 그 비명은 이 외로움의 비명과는 다른 것일까.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정녕 다 괜찮아질까. 그렇게라도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렇게 세령이를 위로하고, 아파하는 스무 살의 연홍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봐도, 아주 멀리서 절벽에 바스러지는 파도소리만 애처롭게 들려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렇게 얘기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홍이는 결국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긴, 20살의 불길 같은 마음이 그렇게 말 몇 마디에 쉬이 가라앉을 리 없다. 들려올지 안 올지 모르는 가을별고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에 기대어가기엔 연홍이의 마음은 너무 애처롭도록 깊었던 것인가 보다. 쌍날끌닻처럼 마음을 다 헤집어 놓을 그 짝사랑을 연홍이는 토해놓지 않고선 배길 수가 없었나 보다.
연홍이는 어느 날 아침, 창백하게 질린 세령이를 소나무 숲으로 불러내어 마음을 얘기하고 말았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진심이 와 닿는 것은 아니다. 때론 사람의 마음은 현실을 감당하는 데만 해도 모든 힘을 다 기울여야만 한다. 다른 사람의 진심이건 흑심이건, 신경 쓸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세령이는 겁에 질려 도망쳤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실은 누가 곁에 있어준다고 해서 나아지는 종류의 일은 아니다.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한 명이 들어오면 나아지는 더하기 빼기 같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연홍이가 곁에 있어주려고 했기에 세령이의 상실은 더 짙어졌을지도 모른다. 때론, 누가 곁에 있어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니까 말이다.
세령이는 다시는 부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갔다. 지휘관은 성이 난 채로 모든 병사와 직업군인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세령이네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고, 병사들 간수 제대로 안 하냐고 화를 냈다고 말이다. 대민피해니, 군인정신 부족이니 하는 매서운 말들이 오고 갔다. 연홍이는 서글픈 표정으로 담담히 항변했다. 단지, 위로해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까요. 지휘관은 더욱 노발대발하고 말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지휘관은 얼굴이 벌게져 가며 소리쳤다. 사람은 사람이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이다. 하느님이 데려가신 건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건데 그걸 가지고 아파하는 세령이도 이상하지만, 거기서 주제도 모르고 위로하려고 날뛰는 연홍이는 더 우매한 놈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미력한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한지 니 꼴을 한 번보라고 말이다. 지휘관은 한 번도 상실해보지도 상실되어보지도 못한 자의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하긴, 매주 주말이면 집에 가는 지휘관이 이 상실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잊히고, 집에 전화 한 통 거는 것 마저 겁이 나는 이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야 하고, 자신을 잊은 관계들을 꿈꾸게 되는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하는 모든 것이 닿는 곳에 있기에, 한 번도 포기하지도 잃어보지도 않았기에, 지휘관에겐 위로도 상실도 다 그저 신이 건네는 선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달랐다.
병사들은 연홍이의 심정을 이해했다. 멀리서 볼 수밖에는 없었어도, 세령이는 이상하리만큼 소중한 아이였다. 때로는 연홍이처럼 짝사랑하면서 말도 못 건 아이들도 있었고, 그냥 가족처럼 흐뭇하게 그 예쁜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던 병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감정이든, 같은 세계에 놓여 있었기에 세령이의 아픔은 병사들에게는 함께 울리고 함께 공감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잊어야만 한다는 것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내려놓고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병사들은 너무 잘 알았으니까 말이다.
지휘관은 결국 연홍이를 관심병사로 낙인찍고 다른 부대로 보내버리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항변한다고 해서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항변하는 사람이 뺨이라도 맞을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에서 병사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침묵으로 눈을 내리까는 것뿐이었다. 연홍이는 반항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은 채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도살 직전의 사슴마냥, 그 순한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침묵을 지키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 세상인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비로소 모든 것은 떠나가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그 순간 맺어지기에, 그 뒤로 모든 꽃봉오리는 흩날리며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럴 바예야 말하지 못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꿈지럭거리며, 울리지 않는 수화기 너머에 숨어있는 편이 나았을 텐데. 더 이상 곁에 머무르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만 버렸다.
연홍이가 떠나던 날, 주호는 아침부터 분주히 돈까스를 만들었다. 돈까스가 나오는 날에 슬픔이 가득한 걸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주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여느 때보다도 꽉 찬 돈까스를 열심히 빚고 있었다. 이미 슬픔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연홍이가 떠나야 하니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프고 또 아파야 할 연홍이가 곁을 떠나니까 말이다. 이미 알고 있는 비극이 다가오기에, 그날만큼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돈까스를 먹을 수 있었다.
연홍이는 돈까스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진부한 광경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슬픔이 세월을 이길 힘을 주었던 것인지, 담담히 웃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연홍이의 모습은 꽤나 어른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눈물보다도 더 슬퍼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연홍이에게 말했다. 아주 멀리 있어도, 가을별고기가 울면 들릴 거라고,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행복해질 순간이 있으니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이다. 연홍이는 겨울 샛별 같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연홍이가 떠났다. 높다란 절벽 사이에선 작별인사마저도 그리 멀리 전해지지는 않았다.
연홍이의 소식이 다시 전해져 온 것은 2개월 뒤, 여름이 마지막 기세를 부리고 있을 때였다. 고맙게도 같이 지낸 사람들을 잊지는 않았는지 연홍이는 병사들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동규는 토끼풀을 닮은 초록색 편지봉투를 받으며 남자 따위에게 뭔 편지냐고 인상을 썼고, 주호는 돈까스가 그려져 있는 갈색 편지봉투를 받고 희희낙락했다. 군대 와서 처음 편지를 받아보니 내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돈까스를 튀겨내야겠다고 말하는 주호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실소할 수 있었다.
내게는 네모난 별이 그려져 있는 새하얀 편지봉투가 왔다. 안에 무언가 들어있는지 딸깍딸깍거리고 있는 봉투였다. 읽어볼까 하다가 고이 주머니에 넣었다. 무언지는 몰라도 조금 천천히 확인해보는 것이 왠지 더 기쁠 것 같았다. 조금 힘든 순간들에 기쁜 소식은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편지를 읽게 된 것은 그날 밤에 있던 절벽 초소 근무 때였다. 여린 별빛 아래에서 총을 들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연홍이와 얘기하던 그날 밤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그때 조금 더 강경하게 말렸더라면 아직도 같이 근무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 흐트러트리고 멀리 보내라고, 다 희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어야 우리는 제대로 외로울 수 있었던 걸까. 조금 미안한 마음에, 아쉬운 마음에 낮에 읽지 못한 편지를 꺼내어 들었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편지는 아주 짧았다.
-김정환 상병님, 정말 세상 어디서나 가을별고기의 소리가 들리는 겁니까? 제가 있는 곳 까지는 이제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많이 두렵습니다.
함께 동봉되어있는 것은 호루라기를 닮은 이상한 돌조각 두 개였다. 손안에 넣고 자그락거리는 아귀를 맞추어 입김을 불어넣자, 날카롭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거라도 밤새 불고 가을별고기라고 우길까. 그럼 연홍이가 조금 행복해질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 분명한데도, 듣지 못할까 봐 두렵다니, 그 문구가 자꾸 심장을 찌른다.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해안 절벽가 끝에 연홍이가 서있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자꾸만 찾아오고 있었다. 돌쩌귀 사이로 새어 나오는 구슬픈 소리가, 그런 두려움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으로 절벽을 훑던 순간, 그 끝자락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별빛밖에 보이지 않는 밤, 무언가 희게 그 자리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희끄무레한 형체였지만 그것이 사람이라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주변의 들풀도, 소나무도, 굳게 자라는 바위도, 그런 식으로 나풀거리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같이 초소 근무인 주제에 신명 나게 졸고 있는 동규를 툭툭 발로 차서 깨우고 말았다.
‘동규야. 야, 일어나 봐. 저거 사람이냐? 나 무서워.’
동규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 예, 사람입니다. 무섭게 오밤중에 왜 저러고 있담. 전 요새 가끔 쟤가 무서워서 잠도 안 옵니다.’
동규는 밤눈이 좋은 건지 그곳에 앉아있는 인영이 누구인지 보이는 모양이었다.
‘뭐야, 저거 누군지 보여? 누군데? 귀신 아니지?’
‘세령입니다. 뭐, 요새 표정이 귀신같아서 실제 귀신이랑 잘 구분이 안 가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죽으려고 작정이라도 했나 저 가시나가.’
‘안 말려도 될까? 위험해 보이는데.’
‘지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뭐 뛰어내릴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닙니다. 냅두십쇼. 괜히 가서 건드렸다가 무슨 경을 칠지 모르지 말입니다. 김정환 상병님도 전출 가시면 어떡합니까.’
동규의 말에는 묘한 일리가 있어서 나는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세령이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일렁이는 그 그림자 같은 모습에는 짙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세상으로도, 별빛으로도 달랠 수 없는 파도치는 슬픔이 그 작은 모습 안에 다 깃들어 고여 있었다.
슬픔은 무엇으로 달래야 할까. 우리에겐 정말로 모든 슬픔이 멎는 순간이 있는 걸까. 나 스스로 가을별고기를 믿는다고 말해놓고도, 이제는 머무른 슬픔이 세월처럼 굳어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세령이도 그렇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하는 걸까. 나는 연홍이가 보내준 작은 돌조각을 꺼내어 그 귀퉁이를 맞추었다. 세령이가 가을별고기의 전설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묘한 소리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착각해주기를, 상실의 고통을 잊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연홍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며 바랐던 일인 걸지도 모른다.
굳어진 돌 사이로 실낱같은 휘파람 소리가 새어 나온다. 해풍 같기도 하고 바닷새 울음소리 같기도 한 그것은 이 세상 어느 소리와도 다른 이상한 소리였다. 음악도 아니고 소음도 아닌 것이, 그저 그렇게 다만 소리로 밤바다 위를 머물렀다. 조금이라도 위로, 닿기를 바라며, 그렇게 밤새 연주 아닌 연주를 거듭했다. 그 날 선 슬픔의 절벽 끝에서 세령이가 조심조심, 다시 언덕 너머로 내려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주호는 돈까스를 튀겼다. 이제는 행복한 일만 일어날 것이라면서 기쁜 표정으로 돈까스를 튀기는 한결같은 주호의 모습에는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줄 것 같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날도 돈까스는 맛이 있었다. 이제는 어김없이 진미를 선사하는 주호야 말로 가을별고기보다 더한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비보는 날아들었다. 연홍이는 결국 자살기도를 했다. 화장실 칸에 구두끈을 묶고, 가느다란 자신의 목을 매었다. 숨이 대번에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가을별고기가 울어도 들리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는 연홍이의 말은, 아마도 이것을 의미했던 것인가 보다.
병사들 중에는 연홍이가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더불어, 그 할머니께서 5월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마저도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그래서 연홍이는 세령이의 상실을 더 마음 깊은 곳에 품어야만 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분명 그랬을 것이다. 마음이 여려서 말도 못 하면서도 연홍이는 아마 세령이가 얼마나 아파했을지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병사들은 몰랐지만 지휘관은 연홍이가 그런 일들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병대에서 들이닥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그토록 힘들었을 아이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은 거냐고, 적반하장으로 다른 부대로 쫓아내버렸어야 하는 거냐고 조사하기 위해서 헌병대는 무서운 기세로 부대에 들이닥쳤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청원휴가 한 번 나가지 못한 것이 말이 되냐고 헌병조사관이 물었을 때, 지휘관은 다만 관례였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지휘관조차도 연홍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전출을 보내야 했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덕분에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휴가도 나가지 못하고, 유일한 가족이 죽어도 부대 안에서 눈물만 흘려야 하는 우리들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래서야 여럿 자살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마저도 생길 정도였다. 부대는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는 그저 얘기할 용기가 없었던 것 인가 보다.
헌병조사관은 즉각 병사들이 정상적으로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길게는 1년이 넘게 가족들을 한 번도 못 본 아이들마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 취한 조치였다. 휴가를 나간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병사들은 그날 저녁 전화기 앞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와중에 나는 홀로 나와 일렁이는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양이 애달프도록 시리게 지고 있었다. 세월의 햇살이 딸깍이듯 바다 건너로 사라져 간다.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았지만, 또 그렇게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 세령이는 여전히 미어지듯 아플 테고, 연홍이는 언제까지 의식불명 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가족에게 전화 한 통 걸기가 두려웠다.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 있어서 어쩌면 날 다 잊은 건 아닐까 두렵기만 했다. 아니, 어쩌면 잊은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 같은 건 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잠시 행복할 수야 있겠지만,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저, 바다 위로 지는 무정한 햇살처럼, 다 흘러갈 뿐이겠지, 하는 서글픈 생각이 하루의 마지막 햇살처럼, 여름의 마지막 온기처럼 내게 깃들어 갔다.
그때, 동규가 쏜살 같이 튀어나와 나를 불렀다.
‘김정환 상병님, 지금 저거 들리십니까?’
‘아니? 뭐가 들린다는 거야.’
‘이리 와보십쇼. 지금 다들 난리 났습니다.’
동규를 따라 절벽 위의 초소를 향하자 어느새 모였는지 초소에 모여서 바닷가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구슬프면서도 따스한,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해풍이 나무 사이를 스치는 것 같은 소리, 바다 새가 새끼를 먹이는 울음소리 같은 소리, 돌쩌귀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 것 같은, 그런 소리. 나는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러면서도 왠지 알 것 같은 그 소리를 나는 이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동규는 내게 말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소리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저것이,’
동규는 잠시 뜸을 들였다.
‘가을별고기가 우는 소리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제,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설은 정말 사실이었나 봅니다. 사랑했던 모든 것과 만나고, 모든 행복과 마주하게 되려나 봅니다.’
주머니 속에선 연홍이가 보내온 돌조각들이 자그락거리고 있었다. 나로선 가을별고기가 우는 소리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병사들은 한 마음으로 모여서 그 초소에서 바다의 울음소리 같은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그 해 가을, 마침내 울어대는 가을별고기의 노래를 작은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어디에선가는 연홍이도 세령이도 그 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서, 조금은 행복해진 둘의 이야기가 울음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가을별고기가 언제 울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50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다가도 지금 이 순간에 울 듯, 또 다음번에는 언제 울지 모른다.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다음 주가 될 수도 있으며, 또 어쩌면 평생 다시는 울지 않아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언제 상실이 다가올지 모르는 만큼, 언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적이 다가올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만 용기 내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어느 망망대해로 이끌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리워하며 용기 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제사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동안 한 번도 누르지 못한 그리운 전화번호를 누르러 갈 용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