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꿈 안에서 나의 직업은 매일 집 앞 강가의 흙을 퍼다 파는 일이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흙에 돈이 될 만한 성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안정적이었다. 야근도 없었다. 흙을 사는 편에서도 공정하게 값을 쳐주었다. 육체적 노동이었지만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아서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경쟁자도 없었고 직업이 사라질 위기도 없었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면 타당한 보수가 주어지는 일. 스트레스가 없는 단순하고도 가벼운 육체노동. 그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꿈에서 깨고 나서 한참을 아쉬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두 번째 직장을 구하기 전, 컴퓨터 코딩 외에는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타가 오자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를 느꼈다. 처음으로 느껴본 생이 주는 거대한 공포였다. 벼랑 끝에 서서 뛰어내리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공포. 이때의 나는 매일 주기도문을 몇 번씩 외우고 엄마의 불경 CD도 챙겨 들었다. CD속 음성은 자꾸만 뭔가를 놓으라고 하는데 그때의 나는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상관없으니 붙잡고 있을게 필요했다. 마음이 너무 멀리 떠내려 가지 않도록.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문장 그대로 다가오던 20대 중반이었다.
30대로 접어들며 내가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내성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삶은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10년 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당장 1년 후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유례없는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내 의도와 상관없이 회사 사정이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 때문에 언제든 해고를 당해도 대비할 수 있도록 늘 마음의 준비를 해둔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선택지는 되려 줄어간다.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면 물류센터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곳. 그게 아니라면 배달부가 되고 싶다. 야근을 절대 하지 않을 정도의 물건만 떼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곳저곳으로 배달할 것이다. 여성 전용 대리운전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면 월세 50만 원 정도의 원룸에서 단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피하고 싶다. 중국발 미세먼지 걱정 없는 공기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면 좋겠다. 만약 아일랜드 시민 비자를 얻게 된다면 개발자 커리어를 계속 이어 갈 의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여기서는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다. 자동차 라이선스를 따고 근교에 작은 집을 구할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와 매일 산책도 할 것이다. 가까운 유럽 국가로 여행도 자주 갈 수 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하면 좋겠다. 개발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청소부가 될 수도 있고 자전거로 하는 배달 일도 재밌어 보였다. 뭐가 됐든 한국보다야 훨씬 나을 것이다. 비둘기조차 한국 비둘기보다 아일랜드 비둘기가 더 행복해 보이는 건 단지 내 기분 탓만은 아닐 것 같다. 높은 주거 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아일랜드는 자연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왜 사는지도 모를 인생 평생 이렇게 불안에 휩쓸릴 바에야 그냥 죽으면 편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건 부모의 죽음 전에 자살을 하지 않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 모두 개근을 했다. 퍽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결코 학교 생활이 좋아서가 아니라 결석하면 출석부에 그어지는 빨간 짝대기가 보기 싫어서였다. 출석부를 무결하게 만들고 싶었다. 부모의 죽음 전에 자살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그들의 슬픔을 걱정해서라기보단,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출석부를 무결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과 비슷한 이유가 크다. 그리고 왠지 부모의 죽음 전에 자살을 하면 다시 나로 태어나 지금보다 더 큰 페널티를 가지고 우울한 생을 또 살아내야만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지금의 나는 전생에도 나였고, 부모가 죽기 전에 자살을 한 죄로 다시 나로 끊임없이 태어나는 벌을 받는 중이라는 근본 없는 가설을 믿고 있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그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말이다.
스스로 건사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렇게 생을 버텨낼 것이다. 여가시간엔 피아노를 치고 책도 읽고 자주 여행도 다닐 것이다. 친구든 애인이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은 없다. 혼자인 게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건 혼자보다 더 외롭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다가 큰돈이 필요한 병에라도 걸리면 너무 아프지 않도록만 치료를 하며 자살을 준비할 것이다. 언젠가 자살이 합법적인 것이 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쓸만한 장기들을 기증할 것이고 비로소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게 될 것이며 후련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통 없는 죽음이 가능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임의의 사고로 인한 즉사도 고통의 시간이 짧을수록 나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내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그간 남겨둔 사진과 글들과 모든 계정을 삭제하고 저금해 둔 돈은 동생에게 줄 것 같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짐들은 버리거나 기증을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식물인간이 되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해 원치 않은 생명을 지속하게 되는 것인데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를 잘 아는 이가 치료를 중단해 주면 좋겠다. 그게 안된다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죽지 못함을 괴로워하며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얼마 전 읽은 [Educated-타라 웨스트오버]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큰 화상을 입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마취제 마저 거부한 이유가 고통마저 신이 자신에게 준 것이니 기꺼이 감내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좋은 부모는 아니었을지언정 보통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화상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라고 하던데 그걸 오로지 신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낸 그를 생각하면 상상해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다.
남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되도록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내 손으로 내 생을 마감하는 것. 이게 바로 나의 꿈이다. 남들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없이 그저 생을 버텨내는 게 고작인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워서 익명으로 올릴까, 소설의 주인공이 화자인 척해볼까 했지만 당당하지 못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삶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이에게는 어엿한 인생 목표인 것이다.
(작성일: 2020. 08.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