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 02. 09)
유튜브를 보다 흥미로운 댓글을 발견했다.
저도 우울증 약을 먹는데요. 약을 먹어보니 진짜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분으로 살았나. 평생 살면서 이런 무드였던 적이 없어요. 아마 약을 먹지 않았다면 진짜 정상이 뭔지 몰랐을 테고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태로 계속 살면 정말 언젠가는 나를 계속 지탱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게 지금 내 상황을 한순간에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그간 내가 망쳐온 것들이 많으니까요. 다만 약은 내 삶을 망치는 것을 덜하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내 상황이 좀 덜 힘들어지더라고요.
나는 기본 기질이 우울함이다.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모두 프라임 세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내 경우는 이게 우울 세포이다. 아, 하나가 아니라 우울 세포와 불안 세포가 합쳐져 있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 이 감정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IMF로 힘들 때여서 국가적 차원으로 모두가 우울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새 환경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친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 전학을 와서 만난 중학교 친구들은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안쪽에서 단단히 걸어 잠긴 문 때문에 주위의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가라앉기만 했다. 그래서 가만히 웅크린 채로 누군가 그 문을 열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우울감은 외로움에서 비롯한 것이고, 내 타고난 성격 자체가 인간관계에 몹시 서툴다는 걸 20대 중반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된 건 바로 S를 만나고부터였다. S는 첫 회사의 동료였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인식조차도 없어서 일에만 몰두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주위에 풍기는 우울한 기운은 노력해서 숨겨지는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멀쩡한데 하루 이틀 겪어보면 같이 있기 불편한 인간. 나는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그 불편함은 모든 종류의 대화, 침묵, 행동 같은 것에서 기인했다. 어느 날엔가 옆자리의 대리님이 나를 보고 '구출이 필요하다'라고 농담조로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S가 '저라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걸 들었다. 그 말에 마음이 휘청였다. 네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농담이라면 너무 심한 농담일 것이었다. 진심인지도 모를 그 말에 괜히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 담아두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 동안 S는 정말로 말 그대로 나를 구했다.
S는 나와 동갑이었고, 동성이었고, 같은 직급이었다. 시덥지 않은 S의 말이 너무 재미있었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점차 오가는 농담이 늘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옆에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만 이해하는 것으로 킬킬거리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굳게 닫힌 문 사이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왔다. 함께 한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관계가 되었는데 이건 이론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말 멋지고 근사한 경험이었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면이 많아서 종종 우리는 같은 행성 출신이 아닐까 하는 진지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회사 동료였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을 함께 있었다. 야근을 할 때는 12시간을 넘게 온종일 붙어있었다. 그렇게 함께 있어도 퇴근하는 길이 너무도 아쉬웠다. 바쁜 일정으로 일은 고되었지만 눈이 부시도록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그녀와 점심 후 산책을 하고 있는데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무언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체기가 내려가듯, 그렇게 나의 우울이 씻겨 내려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적당한 바람의 오후 세네시 경, 삼선 슬리퍼를 신고 걷다가 문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게 '정상'의 상태라는 것을. 행복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맺어온 많은 관계들이 유리창 너머로 손짓 발짓을 해가며 간신히 서로의 기본적인 욕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S와는 내 마음과 하는 것 같은 대화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깊은 구덩이의 출구 싸인이 저 멀리 보였다. 그래, 탈출구가 있긴 있었구나. S는 그녀의 말대로 나의 구원자였다.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느낀 후 오랜 기간 앓아 온 우울이 점차 나아졌다. 그리고 거의 나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노력하지 않으면 흐려지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 정도는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모두가 나만큼 힘든 것 같아 보였고 또 나만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 와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기본 프라임 세포가 즐거움/행복함/유쾌함인 사람들이 많다. 문화적 요인이 큰 것인지 브라질,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구김살이 없고 대부분 표정이 밝다. 별로 재밌지 않은 농담에도 잘 웃고, 아침에 만나면 활기차다. 기본적인 기질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여있는 곳은 온도가 주위보다 조금 더 높다. 그런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나의 우울은 어떤 면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뿐 뿌리까지 도려나가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감정이 '정상'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까? 평소에도 종종 이렇게 혼자 질문을 해보곤 했다. 외면하고 싶어 대충 저 뒤편 구석에 던져놓은 질문들이 하나, 둘, 다시 떠오른다. 그러다 오늘 저 댓글을 보니 정신과에서 처방받는 약물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감정들처럼 약을 먹지 않으면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할 그런 보통의 감정이 있는 걸까. '정상'을 경험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너무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