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즐거움
(작성일: 2021. 9. 19)
올해 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각 잡고 하는 운동은 못하더라도 가볍게 달려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COVID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추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뛰고 들어오면 침체된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매일 30분 정도의 산책을 하던 나였기에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출발을 하고 100m 정도 달렸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져서 찬 공기에 목이 찢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2년 전쯤 헬스장을 다닐 땐 러닝머신에서 30분 정도는 걷고 뛰기는 했었는데 그 사이 몸 상태가 이렇게 안 좋아졌다니. 매일 습관처럼 하던 산책과 스트레칭을 너무 믿고 있었던 것일까. 다리를 옮기려 드는 걸음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몸무게가 딱히 더 는 것도 아닌데 발이 땅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중력이 더 강해진 것은 아닐 테고.
그 후 Rathmines Canal의 이 쪽 다리 끝에서 저 쪽 다리 끝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겨울이고 해서 한 번 달리려고 마음 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이틀정도는 일 끝나고 시간을 내어 달렸다. 그래도 진도가 잘 늘지 않았다. 30초 정도를 뛰면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서 걷고 뛰고를 반복해야 했다. 뛰고 나면 기분은 좋았지만 뛰는 것 자체가 즐겁진 않았다. 달리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달리는 것보다는 걷기를 택하는 편이 쉬웠다.
그러다 한 두 달 전쯤 나이키 러닝 클럽을 처음 실행해 보았다. 애플워치 나이키 버전을 구매한 게 1년 반도 전인데 산책 기록 외에는 운동 기능을 전혀 쓰진 않고 있었다. 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에 Guided Run이란 게 있어서 무심코 선택을 했는데 그 처음 사용한 경험이 너무 좋았다. 비록 녹음된 것이긴 해도 코치 Bennett이 해주는 가이드는 다음번에도 또 달리고 싶게 해 주었다. 재미가 붙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려보자고 마음을 먹고 핸드폰 스트랩과 운동복도 추가로 구매했다. 일주일에 3일 이상 달리자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 목표가 버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한 번 습관 드니 달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더블린의 Rathmines지역은 주변에 공원도 많고 일반 도보도 달리는 데 문제가 없어서 그게 참 좋다. 운동복을 입고 나이키 러닝 클럽 앱을 실행하고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달릴 수 있기에 시작하는 데 큰 부담도 없다. 나이키런 앱에서 내 실력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무리 짧은 시간을 선택해도 출발하면 출발했다고 칭찬해 주고 완주를 하면 완주를 한 대로 용기를 주니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꾸준히 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올 초 실력이 잘 늘지 않았던 때와는 대조적으로 2주 정도 꾸준히 달리고 나니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졌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이 달리거나 같은 거리를 더 짧은 시간에 달리거나 해서 코스를 조금씩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실력이 확 늘었다는 걸 느낀 날이 있었다. 앱으로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해 가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10분 정도 남았던 시간이 5분 정도로 갑자기 줄어든 것을 보았다. 이 번 버스를 놓친다면 3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할 테고 약속시간에는 당연히 늦게 될 것이었다.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5분, 300초. 집에서 정거장까지 걷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지만 달린다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5분을 내리 달릴 자신이 없어서 일단 버스를 놓칠 것을 전제로 전력 질주보다는 평소에 뛰던 것처럼 easy running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달리다가 숨이 차서 멈췄어야 할 거리를 달렸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그전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멈췄을 때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결국 제시간에 도착해서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달리는 거리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달리기를 마치고도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남아서 올해 초 목표로 잡았던 Canal로 향했다. 그런 다음 호흡을 고르고 이 쪽 편 다리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남는 시간에 조금 더 달리려고 했던 거라 쉬엄쉬엄 달리려고 했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적도 몇 번 있었지만 힘에 부쳐서라기 보단 일정 거리를 달리다가 멈추는 습관 때문이었다. 도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결국 반대편 다리까지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목표점에 도달했을 때는 오히려 더 달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Canal 산책을 할 때면 나를 지나쳐가며 결국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참 신기해 보였는데 이제는 나도 그 들 중 하나가 되었다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편도가 아니라 왕복 달리기다.
달리는 즐거움을 배우고 나서 깨달은 것은 하루의 완결성이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걷기도 좋은 운동이긴 하지만 그게 나에게 도전이 되거나 노력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한계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리고 그 한계를 점차 높여가는 것. 다리가 풀릴 정도로 달린 후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조금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체력이 좋아지는 만큼 정신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다. 내년 이맘때쯤엔 Canal을 왕복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