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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Dec 22. 2023

새벽 출근을 하다

아일랜드에서의 일상

헬스장에 등록하고 난 후 처음으로 출근 전에 운동을 해볼까 해서 일찍 일어났다. 드웨인 존슨이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한다는 동영상을 보고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포부도 당당히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침대에서 기어 나온 것은 30분이나 뭉그적 대고 나서였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해 뜨는 시간도 늦어졌기에 아직 사위가 흑막을 친 듯 깜깜했다. 헬스장이 문 여는 시간은 오전 7시이기 때문에 우선은 평소에 하던 대로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꿀 한 스푼을 넣어 마시고, 토마토 한 개와 샐러드 풀에 참기름을 넣고, 비스꼬이또(브라질 쿠키)를 에어프라이기에 넣어 만들고 준비된 아침을 먹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어쩐지 어제저녁부터 인터넷이 불안정하더라니. 오늘 새벽에는 불안정하나마 떠듬떠듬 연결되던 그 인터넷이 기어코 아주 끊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인터넷, 너어는…

내가 사는 건물은 어째선지 인터넷이 항상 말썽이었다. 이사를 온 초창기 두세 달은 핸드폰이 터지지도 않았다. 인터넷만 문제라면 수상하게 생각했을 텐데 핸드폰 시그널도 잡히지 않아 원래 그런 줄 알고 어찌저찌 맞춰 살았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했다. 참고 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방을 구하려고 할 때쯤 집을 관리하는 매니저에게서 메일이 왔다. 불안정한 인터넷에 관해서는 몇 통의 메일을 받아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신속히 처리를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불편을 주어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고쳐달라고 메일을 보내면 되었을 것을 그것도 모르고 이사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거주지에 대한 불안한 마음에 시야도 좁아졌던 것이다. 그제야 나도 그간 내가 겪었던 인터넷 문제와 핸드폰조차 터지지 않는 환경에 대한 메일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개선되는 데에만도 한 달이 넘게 걸렸지만 이 전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이 되었다. 드디어 나도 내 방에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인터넷 문제는 여전했다. 잘 되는 것 같다가도 한 두 달 간격으로 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쁜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매니저에게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불편을 줘서 미안하고 당신의 인내에 매우 감사하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렇듯 인터넷은 항상 말썽이어서 오늘 새벽에 인터넷이 아주 끊어졌을 때는 또 문제가 터졌구나 하는 짜증보다 얄궂은 운명에 배신감이 컸다. 왜 꼭 항상 마음을 먹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일이 터지는 것일까. 오늘은 특별히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 일과를 끝낸 후 한 시간 반 정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상쾌한 마음이 되어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운동을 하면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실험을 해보려던 참이었는데. 침대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터넷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언제 올지도 모를 이메일 답장을 기다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보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편이 정신건강상 훨씬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나는 아쉽지만 헬스장에 가려는 마음을 접고 출근준비를 시작했다. 새벽 여섯 시였다.


조금 이른 출근을 해볼까…

일곱 시가 다 되도록 아직 밖은 깜깜했지만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는 처음이지만 사실 여서일 곱시는 새벽이라 부르기엔 조금 부끄러운 시간이긴 하다. 출근하기에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었으므로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버스를 타는 것은 이미 익숙했지만 오늘은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같은 버스를 타고 한 방향으로 실려가는 사람들. 하지만 하나둘씩 저마다의 목적지에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릴 것이다. 한 순간이나마 한 버스에 모였던 사람들은 어디로 출근해서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각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생각하니 새삼 두근거리기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일곱 시 다. 정시 출근이 9시니 두 시간이나 일찍 온 것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아무도 없는 아침 사무실이 서늘할 것 같았는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훈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전날 저녁부터 창문을 닫아두어 환기가 되지 않아 그런 탓이겠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단 안도했다. 몸이 따뜻해지자 인터넷 문제로 뾰족해진 기분도 한껏 누그러들었다. 따뜻한 사무실에 마음이 풀린 나는 사무실 커피를 홀짝이며 개인적인 일부터 시작했다. 창밖은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라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지만, 곧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같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이 날 비록 아침 운동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했던 새벽 출근의 좋은 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인터넷은 다시 돌아왔지만, 연결상태는 여전히 불안해서 수시로 끊어지기 일쑤였다. 매니저는 일주일 후인 다음 주에야 인터넷 수리사가 와서 문제점을 고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결국 그 주는 매일 사무실 출근을 해야 했다. 이 편이 정신건강상 훨씬 이로울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처음으로 이른 출근에 좋은 인상을 받은 나는 매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출근했다. 첫날처럼 새벽 네시에 일어나지는 못했어도 정시 출근보다 한 시간쯤 일찍 출근해서 일과를 시작하면 하루가 훨씬 산뜻했다. 유연한 근무시간 덕에 한 시간 일찍 퇴근해서 헬스장에 가면 교통이 심하게 막히지도 않아서 그 점도 좋았다.


판데믹이 시작된 후 재택근무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경험이 좋은 환기가 되었다. 심적으로 멀어져 있던 공간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인터넷이 끊어지지 않아도 종종 출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누릴 수 있는 아침의 여유를 즐겨야겠다.



(작성일: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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