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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Apr 12. 2024

아일랜드에서 차 산 이야기 (3)

초보운전기

지난 글에서는 아일랜드에서 차를 사게 된 계기와 차를 사면서 얻은 팁을 공유했다.

아일랜드에서 차 산 이야기 (1) - 구매 결정을 하기까지

아일랜드에서 차 산 이야기 (2) - 구매과정과 팁

이번 글에서는 차 구매 후 약 두 달간 2000km를 주파하며 초보운전자로서 느낀 점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

내가 사는 곳은 Dublin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지역이다. 그래서 국도를 이용할 때가 많은데 아일랜드의 국도의 특징은 좁고 꼬불꼬불하다는 것이다. 운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트라우마가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이다. 꼬불꼬불한 길은 속도를 줄이면 어느 정도 안정감 있게 달릴 수 있다고 해도 워낙 길이 좁다 보니 운전하는 내내 초 집중을 해야 한다.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어서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나면 뒷목이 뻐근하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 보면 길이 하나뿐인 도로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마주 오는 차량과 부딪힐 수 있으므로 속도를 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태껏 보면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중 내 차가 가장 느렸다. 다들 목숨이 여러 개 이거나 자신의 차는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마냥 달리는데 이제 초보 티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들 달리는 걸 보면 아직도 신기하다. 차 한 대가 꽉 끼는 도로 위를 모터웨이(Motorway, 고속도로)마냥 80km-120km로 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앞 차가 조금 느리게 간다 싶으면 바짝 따라붙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추월하기 일쑤다.


붙지 마라고 좀

국도를 달리다 보면 드물지 않게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달리는 차량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몇몇의 몰상식한 운전자의 못난 습관으로 여겼는데 워낙에 많은 차들이 그러는 것을 보니 이건 그냥 이곳의 문화인가 싶다. 애석하게도 내가 한국에서의 운전경험이 없기 때문에 대조군이 없지만,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녔던 때를 떠올려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너무 위험하게 운전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차가 뒤에 따라붙으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렇게 앞 차 뒤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어 달리는 차량은 이곳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고인물이라는 뜻이므로 곧 추월 포인트를 찾아서 추월해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브레이크를 조금만 세게 밟아도 추돌 100%이기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후방 카메라를 달아두었다.


믿는 구석 하나쯤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다니면서도 블랙박스(영어로는 대시캠, Dash cam이라고 한다)를 단 차량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내가 어떤 차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나 일일이 살펴보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을 대충 훑어보면 블랙박스가 설치된 차들은 간간이 보일 뿐이다. 스크레치가 나거나 어딘가 들이박거나 들이박혀서 찌그러진 채로 달리는 차들도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뭐랄까,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한국사람들의 그것과는 몹시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게 블랙박스인데 뭘 믿고 블랙박스도 없이 쌩쌩 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아시는 분 있다면 알려주세요.)


좋은 듯 좋지 않은 좋은 운전 매너

주행 중에는 매너가 개판인 것 같다가도 실제로 운전자들과 마주하는 상황이 왔을 때는 모두가 성인군자다.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눈웃음 지으며 하이 하우알유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일단 건너편의 운전자가 보이는 상황에서는 차를 운전한다기보다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때문에 양보도 잘 받을 수 있고 해서 교차로를 건넌다거나 잠시 버벅거리거나 할 때 느끼는 부담이 훨씬 적다. 참. 수도인 더블린은 예외이다.


라운드어바웃 Roundabout

아일랜드는 신호가 있는 교차로보다는 라운드어바웃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형태의 교차로가 많다.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던 시스템이라서 이 부분이 가장 많이 걱정이 되었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두 시간 도로주행으로 마스터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뭔가 애매한 라운드어바웃을 만나면 무조건 서행하면서 깜빡이로 내가 진행하는 방향을 알려주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들 피해 간다. 라운드어바웃에서는 어쨌든 모두가 한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차량보다는 잘 안 보이는 자전거나 스쿠터를 조심해야 한다.


날고 싶은 꿈으로 가득한 모터웨이 Motorway

모터웨이는 쉽게 말해 고속도로다. 엔진사이즈가 1.2리터인 내 차는 고속 주행을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언제나 80km-120km로 주행을 하는데 신기한 것은 국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가장 느리다. 모터웨이에서조차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주행을 하거나 깜빡이도 넣지 않고 차선변경하고 추월하는 차가 많다. 아일랜드에서 안전 운전을 하면 왠지 할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하게 안전속도와 안전거리를 맞추며 주행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서 두 달간의 운전 경험은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좁은 도로에서 마주 오는 대빵 큰 트럭을 피하느라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고, 차선 변경을 했다가 갑자기 고속으로 따라붙은 차 때문에 식겁하기도 했다. 이 차도 내가 차선 변경하는 것을 잘 못 봤는지 빠르게 달리다가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했는데 백미러로 뒤 차의 내부가 훤히 보일 만큼 가까웠다. (이 때는 정말 위험했다. 이후로 2차선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달만에 2000km를 주파할 정도로 열심히 달린 것은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이다. 아직은 어디든 구글맵과 함께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잘못 든 길은 언제나 아름다워서 아일랜드임에도 마치 외국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차가 없었으면 절대로 가지 못했을 곳을 언제든 내가 원할 때 갈 수 있게 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부분이 바뀐 것을 느낀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면서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좋아지니 앞으로 더 아름다워질 자연을 볼 생각에 기대가 된다.

마무리는 언제나 안전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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