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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덕질

2025년 1월 18일

by 양동생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구름이 유난히 두꺼웠다. 겨울의 태양은 너무 이른 시각에 기울어, 오후 네 시만 넘어도 하늘은 흐릿하게 물이 들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미술관으로 향했다. 니콜라스 파티의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이걸 놓치면 한동안 후회할지도 몰라.’ 우리는 그렇게 위안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전시는 시작된 듯했다. 파티의 작품들은 보라색과 분홍색, 연둣빛과 주홍빛으로 이루어진 묘한 풍경을 선보였다. 그의 색은 절대적인 빛도, 자연의 채도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본 듯하면서도 결코 본 적 없는, 꿈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색감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고, 사물들은 어떤 영원성을 품고 있었다. 붉은 사과와 짙푸른 석고 두상,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얼굴과 단순화된 나무. 고전적인 듯 보이지만 명백히 낯선 이미지들이었다.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일종의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선명하지만, 동시에 인공적인 기운이 감돈다. 그는 고전 회화의 구성과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인 색채와 질감으로 변형한다. 그의 인물들은 표정이 없고, 정물들은 마치 존재 자체가 연출된 듯하다. 그림 속에서는 서사보다 형식이 우선된다.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역할을 맡고 움직이듯, 그의 그림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전시장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덕질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특정한 대상에 매혹되는 걸까. 그림을 덕질할 수도 있고, 작가를 덕질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감정을 사는 걸까, 아니면 취향을 구축하는 걸까. 덕질이란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 일종의 관계를 맺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스 파티의 색감은 내 안의 어떤 기억을 건드렸다. 어린 시절 크레파스를 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순간, 문득 창문 너머로 스며들던 석양빛, 어머니가 들려주던 낡은 동화책 속 삽화. 어떤 이미지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으면서도 어쩐지 내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을 둘러보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의 작품을 좋아할 때, 그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곧,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어떤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투영하는 것일 테니까. 니콜라스 파티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특유의 부드러움과 낯섦 사이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나오자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전시장을 나오며 나는 마지막으로 작품들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기억 속에서 이 색들은 조금씩 바래고, 흐려지고, 다른 색과 섞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감각은 남아 있을 것이다. 붉고 푸르고 노란 것들이 겹쳐지던 순간, 색이 하나의 언어가 되는 느낌. 언젠가 나는 다시 이 감각을 좇아 또 다른 그림을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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