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1일
요즘 나는 ‘세심함’이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고 있다. 말끝에 머뭇거림이 남고, 눈빛에 조용한 떨림이 비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혼자 다짐하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바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애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나와 나는 원래 3월 28일에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전, 나는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찾아올 또 다른 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라는, 너무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이유로 그날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서로의 시간을 미루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누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4월 4일은 어때?”
누나는 말했다.
“왜 두 날 모두 너랑 약속이 잡혀 있는 거지?.”
그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 누나의 그 말은 마치, 언제든 네가 오겠다면 내가 그날을 비워둘게 하는 뜻처럼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믿는다는 건, 내가 가진 가장 부드러운 방식의 용기니까.
며칠 전 우리는 통화를 하다가 ‘우리 회사에서 누나 누나를 좋아하냐 마냐’ 하는 얘기를 잠깐 나눴다. 나는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어쩌면 내가 누굴 바라보는 눈을 들킨 것 같은 일이니까. 나는 누나가 그 말을 기억했는지, 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누나는 복잡한 사람이 아니다. 말보다 눈빛으로, 계획보다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세심함이라는 단어에 다시 마음을 얹는다. 세심하다는 건 상대의 감정을 앞서 가늠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마음 놓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조용히 정돈해 두는 일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니까 혹시 우리가 함께 걷게 된다면, 그날은 꽃이 피는 날이면 좋겠다. 괜히 예쁘고, 괜히 웃음이 나고, 괜히 누나가 좋아질 것 같은 그런 하루. 내가 누나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날.
그게,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세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