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9일
오늘 하루를 떠올리면, 날씨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변덕스럽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아침은 조용하고 다정하게 시작되었다. 잘 잤냐고 묻고, 날씨를 이야기하고, 오늘은 택시로 출근하라고 권했다. 누나의 짧은 “응응”이 이상하리만치 다정하게 들려서, 나는 조금 더 힘을 냈다. 데려다주고 싶다고 말했을 땐, 누나는 “괜찮아”라고 대답했지만, 그 짧은 말속에서도 나름의 거리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어쩌면 그게 애정이라는 걸 오래 유지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점심시간 즈음, 나는 자꾸만 누나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뭘 먹었는지, 누구랑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이상하게 궁금했다. 누나의 오늘에 내가 조금이라도 스며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꾸 묻다 보면 귀찮은 사람이 되는 걸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갔다. 짧은 대답, 단절된 말, 밀려나듯 웃어넘기는 반응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보낸 것이었으니까.
오후가 깊어질수록 감정은 어딘가 쓸쓸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건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먼저 보여주고, 누군가에게는 사정사정해야 겨우 들을 수 있는 정보. 나는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누나는 “당사자가 다르면 느끼는 게 다르다”라고 했고, 그 말은 정답이었다. 나만이 혼자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경계 바깥에 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섭섭하다는 말을 꺼내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다정한 사람에게 일수록 더 그렇다. 그 사람의 마음에 무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정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된다. 기대는 실망을 품고 있고, 실망은 결국 입꼬리를 내리게 만든다. 나는 누나가 좋아서 한참을 동생의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었지만, 문득문득 그 자리가 너무도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투명한 유리잔처럼 말이다. 비어 있는지, 차 있는지, 흔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저녁이 되자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정인지 묻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너무 많은 걸 물어본다”라고 했고, 나는 그 말 앞에서 입을 닫았다. ‘관심’이 ‘간섭’으로 오해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들여다본 대화창을 닫고,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무엇을 잘못한 걸까 곱씹으며, 그러나 무엇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감정은 늘 그렇다. 선명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다.
밤이 되자 누나는 배달의민족 선물을 보냈다. 나도 웃으며 히히거렸고, 사진을 보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런데 그게 좋았다. 어떤 감정은 말로 풀 수 없을 때, 가벼운 행동 하나가 대신해주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누나가 좋고, 그 감정은 정수리 냄새처럼 가까우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누나는 그걸 “더럽다”라고 웃었지만, 나에겐 그만큼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누구를 향한 마음이 머리 위에 머물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가, 곧 접었다.
오늘은 그냥 그런 하루였다. 감정이 흐르다가 막히고, 다시 흐르기를 반복한 날. 누나는 내게 친절했고, 냉정했고, 무심했고,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줄곧 누나를 생각했다. 질문하고, 기다리고, 서운해하고, 웃었다. 그것들을 합쳐놓으면 아마도 ‘좋아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지금의 일상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오늘을 쓴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였지만, 나만은 오래 기억할 하루. 누나와 주고받은 그 모든 말들을, 말끝에 묻어난 공기까지도. 그냥 그런 마음으로. 조용히,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