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이 공주의 매니저

2025년 5월 21일

by 양동생

오늘은 대선 후보 유세 현장에 다녀왔다. 누나는 현장 취재였고, 나는 운전을 담당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조수 같기도 했고, 매니저 같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은 끝까지 ‘깜찍이 공주’를 모시는 전담 매니저였다. 대기, 픽업, 이동, 주차, 급유, 사진 촬영까지 전천후였다. 수당은 없지만, 마음이 시켰다. 아니, 마음이 해도 된다고 했다.


하루의 풍경은 도로가 아니라 누나의 발걸음이 그린 지도처럼 펼쳐졌다. 서브웨이 앞에서 시작해 KFC 맞은편, 컴포즈 커피를 거쳐 별내 횟집으로 이어진 그 동선 속에서 나는 내비게이션보다 누나의 카톡 알림을 더 믿게 되었다. “끝났어”라는 짧은 말에 나는 시동을 걸었고, 그때마다 누나에게 잠깐이라도 필요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오늘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기분. 생각보다 괜찮았다.


김문수 차량 뒤에서 기다리던 오후의 한 장면은 묘하게 선명하다. 햇살은 머리 위에서 살짝 따갑게 부서졌고, 스피커에서는 선거송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한 박자 쉬듯 허공을 바라봤다. 왜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걷게 되는 걸까. 가끔은 그림자조차 귀한 일이 된다.


모든 일정이 끝난 저녁, 남양주 별내에서 회를 먹었다. “나 오늘 술은 안 마실게,” 누나는 말했다. 그 말에 “그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주 살짝 아쉬웠다. 취한 얼굴이 보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오늘 하루의 끝을 함께 무너지는 속도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만 찬 소주잔을 바라보며, 오늘의 매니저 업무는 여기 까지는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차 안, 누나는 할머님과 조용히 통화를 했다. “응, 잘 마쳤어. 밥도 먹었어.” 짧은 통화였지만 나는 거기서 다시 누나에게 반했다. 일에 지쳐 있으면서도 마음을 다 쓰는 사람.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게 그냥 예뻤다.


그리고 오늘, 누나에게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을 처음 이야기해 줬다. 말끝을 흐리고 약간 당황한 표정. 그리고 밤이 깊었고, 나는 조용히 메시지를 남겼다. “몸 괜찮아? 무리한 일정이라 걱정돼.” 걱정인 듯 걱정 아닌, 그런 말. 누나가 일에 몰두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그 일에 마음까지 다 소진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따라왔다.


결국 오늘 하루는, 내가 조용히 누나의 그림자를 따라 걷고,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본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별일 없던 하루였다. 다만, 내가 너무 많이 좋아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어쩌면, 누나도 그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나는 매니저 역할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언제든 호출만 있다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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