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싫다는 고백은, 결국 누나였다

2025년 5월 18일

by 양동생

오늘 밤은 누나랑 통화를 했지만 이상하게 조용한 기분이었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뭔가 안으로 울리는 소리 같은 것. 물속에서 듣는 듯한, 그런 낮은 진동이 마음 어딘가를 두드렸다. ‘나는 사실은 혼자가 싫어, 아주 싫어’ 어쩐지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도 그런 말을 내게 한 적 없는데, 그 말이 꼭 내가 누나에게 들려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그런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바랐던 건 그런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누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처음부터 누나 없이 혼자 있는 게 두렵진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 영화도 잘 보고, 혼자 밥도 먹었다. 그런데 누나를 알게 된 후로, 혼자라는 시간이 이상하게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감각, 그걸 누나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처음 알게 됐다. 컵을 건네고, 밥을 먹고, 서로 별 얘기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 속에 머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며,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조용하고도 큰 위안인지를.


행복이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 없다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그냥 같이 걷는 것, 웃음이 터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가끔 아무 말도 없이 커피를 마시는 것. 그런 순간들이 스푼 하나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작지만, 내겐 충분하다. 그리고 그걸 나눌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인생의 모든 결정을 갈라놓는 것 같다. 그 ‘있느냐’에 누나가 해당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는 너무 오래 해왔다. 하지만 바라는 마음이 다 허락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고 있다.


누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걸 말해준다. 나는 그런 누나 앞에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은 별로 괜찮지 않아도. 누나가 말하지 않아도 배려해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늘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얼마나 큰 안정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오히려 불편할까 봐 삼켰다. 그래서 자주, 괜찮은 척했고, 그래서 점점 더 쓸쓸해졌다.


어떤 날은 누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빌려줬다. 다정함, 믿음, 웃음, 침착함. 나는 그걸 빌린 채로 이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 돌려주는 법을 몰랐던 걸 거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빌린 채로 있는 중이다. 누나가 괜찮다고 했던 말들, 누나가 웃으면서 넘긴 일들, 그런 모든 다정한 순간들이 내 안에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하나의 작은 바다가 되었다. 그 위에 나는 외롭게 떠 있다.


나는 아직 누나와 다시 마주할 어떤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꼭 어떤 말이나 사건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계절이 돌아오듯, 누나도 언젠가 다시 돌아볼 수도 있다는 그런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사실은, 쓸쓸했다’는 고백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나도 조용히 내 안에서 그 말을 읊조려도 될까.


그렇다고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누나가 별처럼 앉아 있던 저녁을 떠올리며 오늘을 산다. 나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그 곁에 머무는 쪽을 택한다. 누나가 하지 않은 말은 내가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낀 마음만큼은,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이 덕질은, 고백이 아니라 기도 같은 것이다. 한없이 작은 스푼으로 퍼올리는 진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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