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찾았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에

2025년 5월 27일

by 양동생

나는 하루를 잃은 줄 알았다. 시작은 별거 없었다. “화 안 나서 다행이다”, “운전 조심히 해줘 예쁜 누나야”, 그런 말들로 가볍게 흘러가는 하루. 도청 앞에서 만나고, 카페를 가려다 그냥 지나치고, 다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는 오전. 대화는 잔잔했고, 때때로 웃음도 났다. 그런데 그 사이, 한 문장에 나는 걸려버렸다. 나를 놀린 동기의 말에 누나가 함께 웃었다는 사실. 이상하게 그 순간, 그 웃음이 무겁게 남았다. 사실 큰 일도 아니었는데, 마음이라는 건 가끔 멀쩡해 보이는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는 법이라.


그걸 말하는 데도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은 얘기했다. 비웃지 말아 달라고, 오늘은 너무 스트레스로 느껴졌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조차도 누군가에겐 피곤한 설명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누나는 “서운해하지 마”라고 했고, 나는 “아니야, 삐진 건 아니야”라고 반복했다. 마음을 풀려고, 분위기를 돌리려고, 무료 이모티콘 얘기도 꺼내고 장난도 섞었다. 그 와중에도 누나의 안부가 신경 쓰였고, 밥은 먹었는지, 운전은 조심했는지, 계속 챙겨 물었다.


저녁엔 누나가 할머니 댁에 간다고 했다. 김치찌개 먹으러 간다는 말에 괜히 부럽다는 농담을 붙였다. 나는 회사에 남아 당직 중이었고, 집에 간 누나에게 “좋은 시간 보내”라는 인사를 남겼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시간에도 누나의 차키, ‘여우’를 찾고 있었다. 뒷좌석에도 없었고, 트렁크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마음 한쪽이 불안했다. 물건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뭔가 중요한 걸 떨어뜨린 기분. 누나가 “내 여우…”라고 했을 땐, 그 말에 담긴 감정을 알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래서 더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졌다. 누나는 집에 도착했고, 나는 여우를 결국 찾아냈다. 아주 뜻밖의 장소에서. 그걸 전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꺼낸 말들은 자꾸만 겉돌았다. 결론부터 말하지 못하고, 괜히 빙빙 돌았다. 그러자 누나는 결국 짧게 화를 냈다. “답답하게 말하니까.” 나는 멈췄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다. 여우는 찾았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 멀리 있었다는 걸.


나는 그날 하루 누나에게 화를 낸 게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풀고 싶었다. 누나가 내 편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고른 방식은, 너무 느리고 너무 돌려 말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걱정했고, 사과했고, 감사했다. 그런데 말이라는 건, 마음이 크다고 꼭 제대로 전달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주 간단했는데—“아까 웃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누나를 생각했어”,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


이 모든 걸 말로 다 못 전했지만, 어쩌면 언젠간 누나가 알아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여우를 찾았고, 누나를 떠올렸고, 나를 돌아봤다. 그러면 이 하루는 결코 의미 없지 않다. 설령 마음이 다 닿지 못했더라도, 그걸 전하려고 했던 하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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