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지 못한 하루의 끝에

2025년 5월 26일

by 양동생

도움이 되고 싶었다. 누나의 하루에, 무거운 짐 하나쯤은 덜어주고 싶었다. 매니저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나섰을 땐, 그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연료가 바닥난 차처럼, 나는 중간에 멈췄고, 중요한 코스를 하나 놓쳤으며, 내 손끝은 자꾸만 삐걱거렸다. 빠듯한 일정 속에 동선을 맞추지 못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 잊었다. 어쩌면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고, 그 감정이 조용히 가슴을 눌렀다.


연료가 바닥났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떨어졌다. 게이지는 이미 붉은 선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나는 그제야 속도를 늦췄다. 차창 밖으로는 빠르게 스쳐가는 차들, 그리고 누나가 기다리는 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계산이 잘못된 걸까. 주유소를 찾기 위해 돌았고, 늦게나마 기름을 채웠고, 다시 길에 올랐다. 뚜껑을 닫는 손끝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무언가를 너무 늦게 알아챘을 때 드는 서글픔은 보통 그렇게 몸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상하게 연료 게이지가 내 감정 같았다.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밀고 나가는 태도, 나중에야 그 허기를 인식하는 방식. 어쩌면 나는 언제나 마음속 어딘가가 비어 있었고, 그걸 채우기보다 견디는 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예상보다 일찍 한계에 도달하면,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놓치게 된다. 누군가의 기대, 누군가의 흐름, 누군가의 약속.


뒤늦게 따라붙은 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내가 한 행동은 실수였지만, 그 실수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았다. 누나가 기다렸고, 나는 거기 없었다. 도착하긴 했지만 이미 정해진 시간은 어긋났고, 나는 그것을 만회할 수 없었다. 도움이 되기보단 방해가 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하루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하는 장소에서도, 커피를 건네던 손끝에도, 나는 끝내 스스로를 ‘덜 채워진 사람’처럼 느꼈다.


누나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진 않았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고, 누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 괜찮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표면 위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말이 그녀에게서 나올 때, 그 말 너머에 있는 생각들까지 상상하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그건 내 몫이 아니지만, 나는 자꾸만 그 너머를 보려 한다.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은 속으로 서운함을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 그것은 어떤 관계든, 나를 늘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고, 기름이 채워진 차를 몰고 누나의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까지. 그 하루가 나에겐 조용한 복기였다. ‘이 관계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디까지 의지가 되고, 어디부터는 짐이 되는가’. 그런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피곤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의 가장 명확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는 혼자 남겨진 차 안에서 다시 연료 게이지를 봤다. 이제는 충분히 채워져 있었지만, 마음속 어떤 탱크는 여전히 조금 덜 채워진 채였다. 그건 아마, 내가 끝내 묻지 못한 말들과 전해지지 않은 마음의 여백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연료처럼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상태이고, 어디부터가 위험한 수준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알았다. 스스로를 과신할수록, 관계의 어긋남은 빨라진다는 걸. 그리고 그 어긋남은, 꼭 멀어짐의 시작은 아니라는 것도.


그냥,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득 채우지 못했을 땐, 적어도 빨리 달리지만은 말자고. 오늘의 나는, 너무 오래 텅 빈 탱크를 끌고 달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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