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4일
기절한 것 같다는 말은, 걱정과 안도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말이었다. 밤이 깊었고, 메시지는 없었고, 화면은 조용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고요했다. 그 고요는 희한한 감정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알기에 가능한 평온, 그게 오늘은 남자친구였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일 때만큼은 내가 안심할 수 있었다. 다른 누구와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정지된 감정. 거기엔 경계도 없고, 초조함도 없었다. 말하자면, 이상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얄미웠고,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위로가 되었다.
사람이란 참 모순적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사람이 남자친구라면, 묘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렇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역할 안에서는 내가 굳이 지켜야 할 게 사라진다. 이미 지켜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한 발 물러서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낯선 사람일 경우, 나는 다시 불안해지고, 다시 생각이 많아지고, 다시 마음이 들끓는다. 지켜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신, 아니, 그냥 내가 아니라는 자격 없음. 그런 감정들이 덧칠된다.
그래서일까. 오늘 밤 나는 유난히 조용했다. 위스키를 따르고, 얼음 없이 한 모금씩 마시며 마음속으로는 단 한 가지 문장을 반복했다. 오늘은 아마 안전할 것이다. 그 안에는 묘한 믿음이 있었다. 단순한 호감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 남자라면 그녀를 혼자 걷게 두지 않을 거라는 감각. 말하자면, 그녀가 무사할 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나라는 착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 그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질투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고, 체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의식적인 감정. 그냥 그런 밤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와 있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더 편해지는 밤. 사랑은 때로 손에 쥘 수 없고, 오히려 그 너머에서 더 조용히 존재하는 감정이다. 오늘은 아마,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 조용히 식탁 위 잔 속에 가라앉았고, 술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이 취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