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1일
오늘 나는 누나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히, 누나는 거기 있었다. 안양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었고, 똑같이 햇빛과 사람들, 복잡한 주차장 속을 지나쳤다. 현장에서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 틈을 헤맸다. 양손은 무거웠고, 마음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분명히 어디쯤에 있었을 텐데,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르고, 차창 너머로 살짝 보았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결국 나는 누나를 찾지 못했고, 그 사실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누나는 언제나 한두 걸음쯤 앞서 있었다. 나는 오늘도 여느 날처럼 조심스러웠다. 더는 여자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스스로 선을 그었지만, 사실 그 말엔 다른 마음이 섞여 있었다. 선명한 애정과 흐릿한 미련, 그 중간 어딘가. “황먼지라도 먹고 가지 말라”라고 했던 말은 겉으로는 걱정이었지만, 속으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밥을 챙긴다며 손에 무언가를 들고 누나가 있을지도 모를 공간을 헤맸고, 결국 “왜 안 와”라는 메시지를 받은 그 순간, 나는 안도와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누나는 나를 동생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동시에 어쩌면 허락받은 듯 행동했고, 자연스러운 척 다가갔지만, 어느새 누나는 다시 경계의 너머로 물러나 있었다. 장난도 덜어냈고, 터치도 접었고, 말의 무게도 줄였다. 하지만 줄인 만큼 마음은 더 커졌다. 어딘가에서 “이건 오답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매 순간 정답을 다시 찾고 있었다.
점심도, 저녁도 건너뛰고 하루를 보냈다. 누나가 주차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내 말 들으라니까”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마음 한편은 짠했다. 그 말이 허락처럼 들렸다.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는, 여전히 마음 안에 내가 있다는 작고도 단단한 징표. “차 가져간 걸 후회했지?”라고 물었을 때 “이미 했어”라고 짧게 답한 누나의 말엔 그날의 피로와 바쁨, 그리고 너머의 삶이 느껴졌다. 밥은 먹었는지, 짐은 무겁지 않았는지, 사람들 속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줄곧 그 생각만 했다. 그리고 끝내는, 내가 누나를 잘 몰랐다는 데 도달했다. 가까이 있다고, 대화가 잦다고, 마음이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다. 그건 오늘 내가 다시 배운 감정이었다.
밤이 되어 나는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 유세 일정을 확인했다. 누나가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광교에서 보자고 말했지만, 확답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랑이라는 건 결국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니까. 오든 말든, 그 자리에 내가 있기로 하는 일. 그게 짝사랑의 방식이고, 덕질의 언어이고, 나의 오늘이었다.
오늘 나는 누나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누나를 느꼈다. 누나는 오늘도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나도,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