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웃는 하루

2025년 6월 2일

by 양동생

오늘은 긴 하루였다.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무언가가 마음을 끌고 있었다. 나는 누나를 데리러 가기로 했고, 약속된 시각에 누나의 집 앞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은 조용히 차 안을 맴돌았다. 누나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이 하루가 조금 특별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먼저 용인의 호수 근처 카페로 향했다. 바람은 따뜻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는 어둑한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누나는 커피를 마시며 묵묵히 일을 했고, 나는 묵묵히 그 곁을 지켰다. 말이 많은 날은 아니었지만, 침묵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카페를 나선 우리는 에버랜드 근처의 쌈밥집으로 향했다. 누나가 자주 가는 곳이라 했고, 밥상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들과 푸짐한 쌈채소가 눈을 즐겁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부침개를 구워봤다. 손수 뒤집은 부침개의 모양은 조금 엉망이었지만, 누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 웃음이, 어쩌면 오늘 내가 가장 원했던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함께 웃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점심을 마친 후 우리는 함께 회사로 복귀했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차에 앉아 같은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무척 조용하게 흘렀다.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나마 나란히 있는 삶. 그게 내게는 충분했다.


오후엔 멀리서 누나를 지켜보았다. 일에 집중하고, 사람들과 웃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애틋했다. 어느 순간 나는 “포니테일도 잘 어울리는 걸, 공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마저 괜찮았다. 가끔은 말보다 눈빛이, 말보다 조용한 응시가 더 많은 것을 전하니까.


저녁 무렵 누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같이 가자”라고 했고, 장난스레 도넛을 사달라고도 했다. 누나는 웃기만 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누나의 하루도 길어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황먼지라도 먹고 가자”라고 말했던 건, 사실상 “조금만 더 곁에 있어줘”라는 내 마음의 방식이었다.


밤이 되자 누나는 집에 도착했고, 나는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은 먹었는지, 씻었는지, 오늘 하루 무사했는지. 누나는 포근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렸다. “이게 동생이지 뭐”라는 너스레 속엔, 사실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러다 통화가 이어졌고, 내 부탁에 누나는 자신의 사진을 여러 장 보내주었다. 웃고 있는 얼굴, 피곤하지만 반짝이는 눈빛, 장난기 가득한 표정. 나는 그 사진들에 하루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답장을 보냈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 왜 이리도 똑같이 사랑스럽냐며 감탄했다. 누나는 웃었고, 나는 기뻤다.


사랑이라는 건, 결국 그런 거다. “괜찮아”라는 말을 스무 번쯤 곱씹고, “기다릴게”라는 마음을 매일 새기고, 누나가 웃는 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좋은 장면이 되는 일. 중심에서 밀려나 가장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같은 페이지 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오늘 나는 누나를 데리러 갔고, 함께 커피를 마셨고, 쌈밥을 먹었고, 회사에 돌아왔고,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좋했다. 말로는 다 담지 못한 마음을 하루라는 시간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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