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원숭이의 손> 서평
얼마나 설레는 말일까?
어느 날 갑자기, 램프의 요정 지니가 등장해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단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난 어떤 소원을 빌어야할까?
한 사나이는 이런 소원을 빌었다.
"200만 파운드만 주세요!" 라고 말이다.
원숭이의 손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소설로, 무려 공포 장르로 분류된다.
단편이지만, 짧고 임팩트 있는 내용을 보여준다.
공포소설이지만, 교훈을 주기도 하는 '원숭이의 손'이 월간 내로라의 첫 번째 도서로 나왔다.
오늘은 이 책을 소개해 보고자한다.
감각적인 표지 이미지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인상깊다.
이 짧은 단편이 주는 메시지는 표지만큼 인상깊다.
이야기는 화이트씨가 아들과 체스를 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일상이다.
체스를 두 다 패배해서 화를 내기고 하고, 사는 집이 맘에 들지 않아 분노를 터트리기도 한다.
이런 일상이 불행해 보일지라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이들을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하루의 모습일 뿐이다. 방문객이 찾아오자 화이트씨는 이 방문객에게 애도를 표한다.
이 방문객은 화이트의 부대 선임부사관 모리스 상사다.
이때, '원숭이의 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도의 어느 사원의 늙은 수도승을 이야기하며 말이다.
늙은 수도사의 주술에 걸린 원숭이의 손은 세 사람이 각자 세개의 소원을 빌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인생이란 운명이 이끄는 것이고, 거역하려하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 주술을 만들었다고 덧 붙였다.
모리스 상사는 이 원숭이의 손을 태워버리고자 했지만,
화이트씨는 이를 만류하고 자신이 이 손을 갖고자 한다.
모리스는 계속 만류했지만, 화이트씨가 여전히 원하자, 한 마디 더 덧 붙이고 건네준다.
그 답은 이 글의 서두로 돌아간다.
200만 파운드를 달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 살고 있는(불만은 갖고 있는) 이 집의 대출금을 갚기 위한 금액이었다.
처음엔,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 지 고민했으나, 당장 눈 앞에 있는 대출금부터 해결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당장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나간다.
기다리며, 화이트씨의 부인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럼, 그렇지' 혹은 실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이 일을 하던 중 기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갖고 말이다.
이쯤되면, 불현듯 독자도 어떤 일인지 예상할 수 있다
200만 달러는 아들의 사고 보상금으로 아내에게 돌아온다.
아들이 소원으로 인해 죽고야 말았는 데, 어떻게 제 정신일 수 있을까?
아직 두 번의 소원이 남았고,
이는 곧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증명되었으니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소원을 빌었고, 화이트씨는 이 소원의 결과가 무엇일지를 알고 있기에...
다시 아들을 죽음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소원을 빌며 책은 마무리된다.
3가지 소원이란 소재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통해 쉽게 들어오던 이야기이다.
물론, 램프의 요정 지니는 나름 규칙이 있었기에, 소원을 비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고, 소원을 세 번을 들어줘야만 자신이 족쇄에서 풀릴 수 있어 소원 이행을 간절히 바랬다. 물론, 누가 소원을 비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냇기도 했지만.
종종 나도 생각해본다.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건강? 재산? 부? 명예? 소원이라 함은 세 번이라는 한정된 기회,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보너스 같은 존재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물론, 허무맹랑하지만, 나는 행운을 위해 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행운이 항상 함께하는 인생을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당연히, 이건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하는 말이다.
원숭이의 손에 주술을 건 주술사는 인생이란 운명이 이끄는 것이고, 이를 거역하면 참담한 결과를 만든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운명에 대해 생각하면, 운명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떤 노력을 하던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할 사람은 성공하고, 안될 사람은 안된다는 그런 운명말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운명의 해석은 조금 달라야하지 않을까싶다.
무언가를 바란 다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 중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따뜻한 옷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이러한 욕망을 비판하겠는가.
원숭이의 손에서 말하고자 하는 운명이란, 욕망이 욕심으로 변할 때 욕심의 욕구 해석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낼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200만 달러를 갚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때 대부분의 상황은 욕구 해소를 위한 투자를 요구한다. 인류의 노동성, 시간, 돈 어떤 조건이든 합당한 투자가 있어야 욕구해소가 가능하다.
원숭이의 손은 아무런 투자없이 댓가를 바란 인간을 벌하는 도구인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다. 무상으로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고, 받기를 원하면 욕심쟁이일 뿐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도덕적으로 배워왔고, 이런 책을 읽으며 교훈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우리의 지금 사회에서 바라는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돈과 관련된 상황이 엮인다.
오래된 설문이긴 하지만, 청소년 대상으로 대신 감방에 다녀오면 몇 억을 준다고 하니, 절반가까이가 동의했다고 한다. 그 만큼, 돈은 지금의 사회를 살기엔 너무나 중요한 존재다.
돈이 필요하니, 노동이 있어야하는 건 당연히 배운 이야기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 주를 채우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노동의 대가만으로 과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물었을 때, 어느 누가 당연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찌보면, 그런 관점에서 운명은 정해져있을 지 모른다. 원숭이의 손이 무서운 존재인 것임을 알고 있지만, 어느 누가 쉽게 소원을 빌지 않고 태워버릴 수 있을까. 가장 무서운 점은 현실에는 원숭이의 손과 같은 존재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간 내로라는 오래된 짧은 고전을 월간 구독으로 전해준다고 한다. 한 쪽에 적힌 영어 원문도 메리트. 짧고 가볍게 그리고 심도 있게 읽기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한 책은 월간 내로라에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