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시험 1일차
모의고사 1일차 후기는 생략한다.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하려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공부를 한 거 같다는 생각.
주말이면 하루나 반나절은 푹 쉬고 그랬어야 했는데.
안 되는 공부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유튜브 보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브런치에 쓰면서도(그렇게라도 써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공부를 하다가 유튜브 보고 다시 공부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다가 유튜브 또 보고의 무한 반복. 그리고 여름에 브런치에 글을 많이 썼다. 썼다기보다 써댔다(갈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내가 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던 거 같다.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이다.
그렇게 지독하게 더웠던, 끔찍하게 몸이 안 좋았던 여름이 지나갔다.
처음부터 힘 빼고 그냥 했어야 했는데.
(어차피 그냥 해도 졸라 빡세…)
힘 빼고라 함은 ‘나 합격 안 하면 죽어.’ ‘무조건 합격해야 돼.’ ‘이번이 마지막이야.’ ‘학원 시험 무조건 상위 30% 안에 들기’ 등의 생각 안 하기.
이런 생각들을 힘줘서 하다 보면 정말이지 뇌의 일부분이 파괴되는 느낌이 든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부터 몸에 힘 빼고 그냥 한다. 그래야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거 같다. 너무 힘이 들어간 채로 달리다 보면 언젠가 쓰러질 날이 올 거 같다.
오래 산건 아니지만 공부도 인생도 너무 아득바득 살면 언젠가 탈이 나는 거 같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5월부터 지금까지 24시간 이를 악물고 살았다.
시험 직전에 쓰러지면 지난날들이 너무 허망해지니까
이제부터 시험 때까지 그냥 하다가 시험 날에 다 쏟아부어야지.
여름보다 겨울에 더 몸 상태가 좋으니까 할 수 있어.
겨울에 신으려고 새로운 어그도 장만했으니까!
합격한 사람들과 나의 차이가 도대체 뭔지 깊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 불안, 우울, 저질 체력, (인정하기 싫지만) 유리멘털이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럴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불행해지므로 그냥 받아들이고 살고 있지만 너무 힘들 땐 불쑥 나에 대한 자책감이 올라온다.
그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로스쿨에 들어가서 이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로스쿨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불안에 떠는 삶을 더 이상은 살고 싶지 않다.
불안에 짓눌려서 내 세포 몇 개는 이미 죽어버린 거 같다. 그 세포들에게 미안하다.
어디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 같은 ‘변호사 오뚝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고 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무수한 ‘지금’을 고통으로 보냈다.
먹고사니즘만 해결된다면야.
좋은 인생, 나쁜 인생은 없어(남한테 피해 안주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산다면…).
좋은 직업, 나쁜 직업도 없고.
내가 뭘 하면서 살든 그 안에서 나만 행복하면 돼.
해탈…….
(이러다 수녀가 되든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 것 같다. 수녀원, 절 왈: 누가 받아준데? 나: 죄송함다…)
내가 흡사 지옥 속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는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부님께 메세지가 왔다.
그래, 나는 이미 나 자체로 귀해.
(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정말 반짝반짝 빛났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 와중에 지금은 감독이 된 김연경 선수가 팀 선수들에게 하는 말을 보게 되었다.
정점을 찍어본 사람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구나.
나 같은 평범한 닝겐 하고는 많이 다르구나.
시험 한 두 번 쳐본 거 아니고, 이런 불안과 긴장감 한 두 번 느껴본 거 아닌데 자꾸만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진다.
그냥 마음을 최대한 내려놓고 하자.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지만…
이게 된다면 나는 법정스님의 후계자…
요즘 매일 하루에 오천 보는 걸으려고 한다.
오천보를 걸으려면 점심 먹고 이십 분, 저녁 먹고 이십 분 정도 걸으면 된다. 오천보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어서 네이버한테 물어보니 나름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최소 권장 신체 활동량’
좋았어.
시험 때까지 매일 오천보씩 걸어야지.
정말 살려고 걷는다.
그래도 이십 분 빠른 걸음으로 걷고 나면 땀이 난다.
운동이 되고는 있는 거 같다.
팔을 휘적이며 걸으면서 악귀(불안, 긴장, 두려움 삼총사)를 최대한 털어내려 한다.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게 다 귀찮아지고 그냥 누워있고만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것은 바로 ‘사진’
시험이 끝나면 사진을 배우고 싶다.
예쁘고,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보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을 찍고 싶다.
사실 정말 많이 힘들지만
이제는 기도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