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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Apr 11. 2023

내 몸에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


고작 서른한 살이지만, 인생에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간다.


당장 나의 밥벌이를 책임져야 한다.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언제까지고 백수일 수 없는 내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

또, 내가 벌려놓은 일들(이를테면, 공인중개사 공부, 소설모임 등)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건강, 말하자면 지금의 내 몸상태는 '나 죽겠다~ 나 좀 책임져라~'하며 아우성이다.

핸드폰 조금 보면 뻐근해져 오는 일자목,

초보자 요가자세에서 삐어버리는 허리근육,

장보기만 해도 아파오는 발바닥과 무릎...


그뿐인가, 위장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 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커피나 술, 짜고 매운 것을 먹었다간 밤새 복통을 일으키며 무력시위까지 벌인다.


고작 몇 년 전엔 똑같은 생활양식으로, 아니, 더 나태하고 피폐한 삶을 살았어도 멀쩡하던 몸이 어찌 이리 말을 안 듣고 파업이며 시위를 해대는고?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몸에 빚진 게 얼마인지를...

책상에 쭈그리고 공부만 하던 10대,

밤새워 허세 부리며 술 섞어 마시던 20대,

운동은 깔짝깔짝 해가면서도 치킨은 꼬박꼬박 찾던 20대...

지난 나의 삶을 이제 와서 이자쳐서 받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몸이 나 좋은 대로 살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급발진)

수험생활, 사회생활 하다 보면, 나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나 하고 싶은 것만 할 순 없지 않은가?


공부하고 일하다가 음식 해 먹을 수 없는 일이고,

바깥음식 먹고 회식도 곁들이다 보면, 건강보단 맛 좋은 음식 먹기 마련이고, 먹기 싫은 술도 마시기 마련이다.

부장님이 동태찌개 먹자는데, 샐러드 먹자고 어떻게 말한단 말이냐!


게다가 학생 땐 야자, 회사원 땐 야근까지 해가며 일에 치이다 보면, 걷고 스트레칭하는 생활양식 좋은 거 알아도 쭈그려 앉아 일해야만 하는 걸.

일하다 보면 허리에 안 좋은 물건도 들고 다니기 마련이고, 화장실도 못 가기 마련이다.

이 몸이 다 그 영광의 상처들이란 말이다. 흑흑흑...


하지만 아무리 변명해도 어쩔 수 없다. 몸은 '이유가 어쨌든 지난 과거를 책임져!!'라고 아우성이다.

얄짤없는 채권자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온 남자친구도 몸이 보낸 청구서(건강검진결과지)를 받았다. 빨리 빚을 탕감하지 않으면, 몸의 일부를 어떻게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소식이다.


그리하여 뜻이 맞아진 우리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기 시작하였으며,

오래 걷기와 등산을 시작하였다.

'소식(小食)'을 하며,

몸에 좋은 토마토, 양상추, 브로콜리를 찾아먹고,

아침식사는 샐러드로 대체하며,

외식은 샤부샤부, 비빔밥 정도로 절충했다.

술을 그리도 좋아하던 남자친구가 냉장고에 하나 남은 맥주를 몇 주 째 방치하고 있는 걸 보니, 그는 빚 탕감에 아주 진심인 것 같다.


지난날, 외면했던 내 몸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생활양식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건강해지는 몸을 느끼자니, 너무 늦지 않은 때 몸의 비명을 듣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다.


샐러드보다 치킨이 더 저렴하...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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