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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Apr 13. 2023

공포에서 희망으로


지난 여름 휴가 때의 일이다.

한산도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에서 친구와 튜브를 타고 신나게 놀고 있었더랬다.

해수욕장엔 우리 말고도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가족모임처럼 보이는 다른 피서객들도 몇몇 있었다.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땐 물이 참 맑고 시원해서, '아! 이것이 태평양의 맑음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놀았을 때 즈음, 저 먼바다에서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 조각들이 둥둥 떠내려오는 것이었다. 과자봉지, 생수병, 신발, 몇몇 가지 쓰레기와 함께였다.

그 조각들이 수를 채우고 점점 바다를 메우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마침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흐엉~ 엄마~! 더러워!"


부모들이 바다로 들어와 그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지만,  사람 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 또한 다리에 자꾸 묻어나는 스티로폼에 찝찝함이 생겨, 친구와 이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자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바다 앞 캠핑텐트였다.

텐트 속에서 의자를 펴고 풍경을 바라보자니, 파란 바다의 수평선이 정말 예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찜찜해지는 것이었다.


마음껏 즐기던 해수욕장에 스티로폼 조각들이 가득 메우기까지 고작 몇 분.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파란 바다도 순식간에 쓰레기로 메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를 치고, 일회용품을 잘 써서 깨끗하고 편한 휴가를 보내는 일에 죄책감,

내가 누리는 이 편리와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문득문득 들었다.




삶에서 눈으로 마주하는 재앙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소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늘어난다.

하지만 그런 공포와 함께 희망도 꼭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나는 2007년, 태안 앞바다에 쏟아진 1만 킬로미터의 석유를 자원봉사자들이 지워낸 일을 떠올린다.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손을 보탰고, 복구까지 2-3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불구, 마침내 2017년에는 생태계가 원상복구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태면 결국 좋아지기 마련 아닌가. 그런 희망으로 조금씩 조금씩 행동해 보는 것이다.


작년엔 옷을 샀어도, 올해는 옷을 사지 말아 보자고,

오늘은 일회용 컵을 썼더라도, 내일은 텀블러를 쓰자고, 

어제는 배달음식 먹었지만, 오늘은 식당에 가서 먹자고,


그렇게 나 하나 조금 보태보자고 결심해 보는 것이다.


KBS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 이번 봄은 따로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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