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잘하는 남자친구
내 남자친구 견우군(출장이 잦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데서 친구가 붙여준 별명)은 자신만의 특이한 의례가 있다.
물건을 버리거나, 중고로 내놓을 때, 물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밥솥을 떠나보내며 '그동안 고마웠어, 밥솥아.'하고 애잔하게 말하는 것이다.
견우군은 이 절차를 꼭 빼먹어서는 안 된다며, 내가 물건을 버린다고 하면, 헐레벌떡 나와서 '고마웠어'하고 인사한다.
이런 물건에 대한 애정 어린 태도 때문인지, 잘 쓰지도 않는 물건도 버린다고 하면 '음...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쓸 일이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곤 했다.
그래도 이 것을 잘 안 쓰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한참을 고민하다 결심한 듯, '그래. 보내주자! 잘 못써줘서 미안해... 그래도 덕분에 이거랑 저거랑 잘할 수 있었어.'하고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물건에 인사를 전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심지어는 요리에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잘 만들어둔 카레가 이틀째 상온에 방치되어 상하게 되자, 너무나 슬퍼하며 '앞으로는 음식을 버리지 않게 고민을 해보자.' 하며 몇 시간을 반성하는 것이었다.
참 정 많고 귀여워 보이는 습관이지만,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정든 물건이라도 버릴 때 미련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새로 사면 되는 이 좋은 세상에서, 왜 저렇게 물건에 집착하고 미안해할까' 생각했다. 안 먹는 음식, 상한 음식은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3년이 넘도록 이 견우군을 지켜보니, 그의 태도는 참으로 본받을만한 것이었다. 그의 태도는 '미련'이나 '집착'이 아니라 '감사'에 포인트가 있었다.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잘 쓰고, 떠나보낼 때에도 그동안의 고마움을 꼭 표현하고, 새로 들어오는 것들은 또 반갑게 맞이하는 태도. 견우군은 '감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감사'는 인생에 큰 에너지를 주고, 더 많은 감사할 일들을 불러온다고들 한다.
나도 자기 계발서의 지침에 따라 매일아침 감사일기를 쓰고 있지만, 삶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잘 품고 사는 감사 전문가는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뭘 엄청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가 아니라, 그저 삶의 면면에 감사한 것들을 느낄 줄 아는 태도를 가진 견우군. 그래서일지 조급하고 불만 많고 불안한 나와 비교되는 평온함을 가진 견우군. 참 배울 점이 많은 남자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