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후로, 좋은 책,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내심 위축된다.
이렇게 좋은 문장이 세상에 많은데, 나는 오늘도 지면낭비를 하는구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내가 봐도 만족스럽지 않은 내 글을 내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아쉽다. 그렇게 내 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들 때면, 더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진다.
웹소설 작가들 사이에선 이런 상태를 일컬어 '내글구려병'이라 칭하기도 한다. 내 글이 한참 부족해 보여서 글을 못쓰는 현상으로, 연재하던 글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글도 그렇지만, 많은 일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내OO구려병'을 앓게 하는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내 영어 구려병'이 아닐까.
나름대로 외국인에게 길 알려줄 정도의 영어실력은 갖추고 있음에도, 문법이 틀렸을까 봐 입도 못 떼는 상황. 어느 정도의 문장은 독해할 수 있음에도, 일단 영어가 나오면 '아이고 난독증이야!' 하며 파파고를 찾는 상황.
난 '내 영어 구려병'을 오래 앓았다.
실제로 대학교에서도 기초영어반일정도로 문법 수준이 낮아서, 내내 영어는 마음의 짐이었다.
졸업을 위해서는 토익 720점은 넘겨야 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토익학원의 600+반(600점을 넘기자는 목표의 수강반)을 다녔으나, 600점도 쉽게 넘지 못했다.
주변에선 '토익학원 왜 다녀? 너 수능영어 했으니까 그냥 치면 800은 나올걸?' 했으나,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더욱이 내 영어실력을 밝히기가 부끄러워져, 내 영어성적을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않았다.
때로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 갑자기 영단어로 드립을 칠 때면,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비웃고 놀릴까 알아듣는 척 웃기도 했다.ㅠㅠ
그러다 취업준비를 하려니 영어스피킹 성적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아-.
나는 수소문 끝에 강남에서 손꼽히는 1타 강사 OPIC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선생님은 '토익성적이 몇이든 상관없다. 오픽은 자신감이다. IH 밑으로는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며, 틀려도 괜찮으니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큰 목소리로 유쾌하게 영어를 구사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영어를 잘해 보인다나...(?!)
수강생들은 실제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오버해 가며, 자신감 있게, 큰 목소리로 2주 동안 수업을 따라갔다.
나는 연습시간에 시제 구사도 자유롭게 하지 못해서 자주 지적받았으나, 실전에선 실력에 가당치 않는 IH를 받았다.
선생님은 인생의 그 어떤 것도 다르지 않다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꿈꾸면서 살라고 하셨다.(아아, 역시 1타 강사님..!)
기대 이상의 영어성적과 함께 '내 영어 구려병'을 완치받은 나는 머지않아 최종면접 합격통지도 받게 된다.
그래, 인생의 그 어떤 것도 다 같지 않을까. 조금 부족해도 씩씩하게 자신감 있게 내가 킹왕짱인 것처럼 흉내 내다보면, 어느 순간 킹왕짱도 되지 않을까.
'내OO구려'하며 가만히 누워있는다고 마법처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당장 달리지 못한다 해서 걸음마를 멈출 순 없는 법. 넘어져가며, 아장아장 우습게라도 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기어 다녀야 할 테니까.
마치 내가 우사인볼트라도 된 양 씩씩하게 아장거려본다. 내가 우사인볼트라고 생각하면, 걸음마가 더 즐거워지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