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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Apr 26. 2023

난 어른 좋은데?

8살짜리 조카가 말한다.

"나는 어른되기 싫어! 놀지도 못하고 힘들게 돈벌어야 하잖아."


내가 대답한다.

"이모는 어른 좋은데? 어른되면 밤늦게까지 유튜브 봐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조카가 움찔하며 생각에 잠긴다.



진짜로 나는 어른인 게 좋다. 어린 시절이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고작 유튜브와 아이스크림뿐일까.

누텔라를 숟가락으로 마음껏 퍼먹을 수 있고, 치킨과 떡볶이, 라면이 생각나면 새벽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에게 대령할 수 있으며, 우유를 입 대고 마시며, 빨래와 설거지쯤은 좀 미뤄도 되는 일상은 결코 꽁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20여 년을 꾸역꾸역(?) 살아내 마침내 내돈내산으로 독립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포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보다도 좋은 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삶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어른이 되기까지의 지난한 성장과정이 떠오른다. 나의 유년기는 유난히 예민했고, 그래서일지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친구를 사귈 때면, 나의 마음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른 채로 혼란스럽게 고뇌하는 밤들을 보내야 했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폭발하는 날에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버럭 화를 내곤 오랜 밤을 후회로 지새우기도 했다.

서투른 말주변으로 친구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일쑤였고,

매일매일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혼란스러운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래서 참 자주 아팠다.(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걸까.)


이제 독립가구의 세대주 어른이 되어 성년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는 지금,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내가 너무 좋다.

감정이 혼란스러울 땐 '아- 이러저래서 그런가 보다'하고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자기 이해가 생겼고,

화내지 말아야 할 때와 화내야 할 때를 구분하는 눈치와 참을성도 생겼고,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게 됐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들을 선뜻 고를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어른이 됐다.


이 모든 것들이 어린 내가 아파가면서 터득한 성장.

요즘에도 물론 정체성이나 감정의 갈등을 겪을 때가 있지만, 그런 것들에 조금은 익숙해져서일지 '아- 다음번엔 조금 덜 아프겠거니-'하며 스스로를 달랠 줄도 알아서, '오늘은 이 정도하고 그만하자'하면서 감정의 골에서 빠져나올 줄도 안다.


물론 지금 백수인 나는 조카가 말하는 '돈 버는 어른'은 아닌지라, 업무와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0에 수렴하고 있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입에 풀칠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돈 버는 어른'과 같은 선 상에 놔주는 자비를 스스로 베풀어보자면, 어른이란 거, 참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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