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고민하던 즈음에, 내적 평화를 위해 요가와 명상에 힘을 쓰기 시작했었다.
6개월 정도 요가를 다녔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허리가 찌릿찌릿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근육통과는 다른 짜릿한 통증.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요가동작을 무리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자세가 잘못된 것일까.
곰곰이 고민하던 나는 '난 척추측만증이 있으니까 요가를 하면 안 되나 보다!'라고 단정 지었다.
그것을 핑계로, 더불어 라섹을 핑계로, 수입이 없어짐을 핑계로 올초부턴 요가학원에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4월의 어느 날, 여전히 남아있는 허리의 통증에 혹시 디스크는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진찰결과 내 허리는 디스크가 아니었고, 유연성이 떨어져 근육이 놀란 것뿐이어서, 도수치료를 받게 됐다.
도수치료를 해주시던 물리치료선생님이 언제부터 허리가 아팠냐는 질문에, 나는 '작년에 요가를 하면서 허리를 삐었어요. 그 이후로 가끔씩 허리가 짜릿하게 아파요.'하고 말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리를 삐고, 발목을 자주 삐고, 이런 일들이 몸은 다 기억을 하고 있어요. 그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본인도 모르게 그 근육에 힘이 들어가려고 하면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오히려 몸의 균형을 잃게 되어서 궁극적으론 다른 통증을 동반하죠."
너무너무 맞는 말이었다.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내 몸은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허리가 아플 거야.'라고. 그러다 보니 요가동작이 점점 어색해지고, 긴장되어서 허리는 더 아파진 것이었다.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허리를 또 다치게 될까 두려웠지만, 다시 요가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아무 운동을 안 하고 살 순 없으니, 다시 요가를 해보자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때 그 부위가 똑같이 찌릿찌릿 아파오는 것이었다. 저릿해오는 허리통증에 '아... 괜히 시작했나...' 하는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허리를 달짝 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요가 선생님은 내가 허리에 힘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며 힘을 쭉 빼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처음엔 겁이 났다. '그렇게 하면 아픈데...'. 하지만 언제까지고 아픈 자세라서 피할 순 없는 법. 의식적으로 허리 힘을 빼고 요가를 하니, 다음날 통증이 마법같이 사라지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지나갈수록 허리건강은 나아지고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는 모양인가 보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가 고작 그뿐일까 싶다. 직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
책임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흐지부지로 마무리되었던 일, 잘 해결되지 않는 일들을 붙들고 마음고생을 했던 일, 선의로 도운 일이 온전히 나에게 다 덤터기 씌워진 일 등등.
그래서인지 여전히 책임 있는 일을 맡는 것이 겁나고,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겁난다. 나는 온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내 안에 내가 한계 짓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모양이다.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든, 허리에 힘을 풀듯 필요이상의 압박감과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그깟 마음고생했던 일들 따위 금방 딛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조금 통증이 있어도 좋으니 한 번 힘을 풀어보고, 더 내려놓아보고, 그렇게 조금씩 용기를 가지고 하나, 둘.
평생을 지난 일들에 묶여 스스로의 한계를 짓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나, 둘.
나의 이런 겁 많고 무른 마음이 부끄러우면서도, 이제라도 내 속의 두려움들을 알아채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 별 의미 없는 이 트라우마들을 극복해서 한결 더 성장해가고 싶다.
애먼 핑계로 합리화하고 피하기보단, 용기 내서 한 걸음 더 딛는 사람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