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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Dec 27. 2022

퇴사는 지능 순이라면서, 당신은 왜 퇴사 안 하시나요?

퇴사에 대한 단상

정문, 내가 미리 말하는데, 지금 나가.  살이라도 젊을  나가.  늦었어.”     

신입사원 시절, 애틋하게 후배들을 잘 챙겨주던 선배 A는 내 미래를 설계해주곤 했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로스쿨을 가라고, 어느 날은 세무사가 되라고, 어느 날은 약사가 되라고 했다.     


“내가 5년만 젊었어도 공부했을 거야.”     

나에게 본인의 과거를 투영하는 A의 모습이 나의 미래라는 생각에 이르자, 대뜸 조급함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후회하게 되는 걸까?’ 아직 덜 여문 신입사원의 마음에 퇴사심의 씨앗이 심어졌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어쩔 수 없는 출근’이 일상이 되었을 때 즈음, 내게도 후배가 생겼다. 모델처럼 키가 크지만 걸어 다닐 때 삐약삐약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귀여운 후배다.     


“여기가 어떨지 모르는데 토익점수 만들어 놔요”     

이 회사를 합격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병아리 같은 후배에게 나는 농담인 척, 넌지시 회사를 깎아내렸다. 애사심을 고취시켜주어야 할 선배가 후배의 퇴사심을 키워주고 있었다. 부전자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연애상담해 주는 ‘아는 언니들’처럼 선배들은 “이딴 회사를 왜 다녀, 나가!”라고 하지만, 언니들이 정작 자기 연인과 헤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그 선배들도 끈적하게 회사를 잘 다닌다.     


그래, 어쩌면 ‘이 회사’가 똥차이고, 똥차를 버리면 벤츠가 올지 모르는 일이다. 아! 똥차라 정의 내리고도 제 때 하차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 미묘한가...     


내가 그만 이 차에서 내려야 할 이유는 많다. 사람이 별로라서, 일이, 급여와 복지가 별로라서, 도통 체계가 없어서, 아무래도 서울에서 사는 게 나아서, 내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어서 그만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나를 붙드는 이유도 많다. 게으른 나를 일으켜내는 9시의 출근, 밖에선 말 붙일 일 없는 세대 간의 교류, 아침의 테이크아웃 커피,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월급날... 백수시절 꿈꾸었던 나의 직장생활 로망들.     


언젠가의 나는 그냥 연봉 3천만 원짜리 사무직이라면 어디서 뭘 하든 좋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런 내가 입사할 땐 ‘우리 회사’에 얼마나 진심이었을지... 어떤 미래를 또다시 선택하게 되든 잊지 말아야 할 나의 오랜 진심.     


내가 후회하는 오늘도 언젠가 내가 선택한 미래다. 과거의 내 진심을 자조 섞인 농담에 섞어 가볍게 날려버리는 내가 되지 않길 바라며, 진득하게 퇴사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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