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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Dec 09. 2023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점점 깨닫는 건데, 난 솔직한 척하지만, 사실 스스로를 속일 만큼이나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는 데엔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것이 제1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이제 나 자신을 낱낱이 파헤쳐보고 솔직해져보려고 한다.




오늘 파헤쳐보고 싶은 건 나의 자존감이다.


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데, 그에 비해 나의 능력이나 조건이 따라주지 않는다.

노력도 의지력도 낮은 편이고, 무언 갈 성취한 경험도 그다지 없는 데다, 직업적으로 뭔가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게 그다지 없다.


거기다, 거절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애쓸 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지도, 주장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시시때때로 고민하고 걱정하느라,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다.


그런데, 이제껏 나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랬는가 하니, 나의 자존감이 낮은 걸 스스로에게마저 숨기는 나만의 방식들 때문이었나 보다.




그 첫 번째는, 자기 검열을 통해 자존감 높은 ‘척’을 하는 것이다.


잘 웃고 친절하게 굴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말한다.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척 털털하게 군다. 그렇게 관계에서의 내 모습을 검열하고, 또 검열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미리 알아채고, 도와주고, 눈치껏 비위를 맞춰주면, 그냥 센스 있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 그걸 ‘어, 쟤 좀 자존감 낮아 보이네.’하고 판단하지 않더라. 그래서 더욱이 내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진짜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면, 나 자신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을 텐데, 나는 ‘자존감이 높은 척’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 나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모습을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믿어주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괴로워했다. 타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나 보다.




두 번째는, 내가 가지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 것들을 외부에 핑계 대는 것이었다.


성적이 나쁘면,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여건이 안 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일에 집중이 안되면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나쁘면, 호르몬 불균형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으악!     


실패를 통해 내가 어떤 부분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지 않고, 외부 여건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만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마음이야 편했겠지만, 그러니 발전이 있을 리가.


발전하지 못하니, 나 자신이 더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러면 더 외부에 핑계를 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핑계 댈 거리를 찾느라 그렇게 외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왔나 싶기도 하다.




세 번째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내게 아주 나쁜 버릇이 있는데, 사람들에게서 단점을 찾는 버릇이다. 이 사람은 눈치가 좀 없네, 저 사람은 예의가 없고 독단적이네, 그렇게 단점을 찾으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그런 건 괜찮지.'하고 안심한다.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굳이 이야기하진 않는다, 나도 안다.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자존감 떨어져 보이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내 속내가 여전히 못났다는 건 변함이 없고, 때때로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땐, 이런 나의 삐뚤어진 마음을 들킬까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을 평가하고 나면,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스스로에 대한 검열은 더 심해지고, 자존감은 더 떨어질 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자존감 낮고, 내 보기에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엉망인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 모습을 찾고,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안다. 다 아는데... 평생 살아왔던 그 방식이 마음처럼 쉽게 변해지는 건 아니다.


힘을 빼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여전히 잘하고 싶어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높으면서, 그에 비해 입력값(노력)도 출력값(성과)도 낮은 상황이 계속된다. 참 나. (정말 별로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나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는 척, 솔직한 척하면서, 은근히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회피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래도 요즘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다짐을 계속한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책임질 만큼만 하고, 기대를 했으면 그만큼 노력해서 실낱같은 기대에 부응할 줄도 알았으면 한다. 남들에게서 눈을 떼고, 나를 더 바라보았으면 한다.




기왕이면 밝은 글, 희망적이고, 행복을 이야기하며, 읽기만 해도 힐링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힘든 이야기나 나쁜 시각은, 전달해 봤자 부정적인 기운만 전할 것 같아서...(물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더 컸을 것이다.)

게다가 브런치 구독자님 중에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지인도 있어서, 나의 못난 면을 쓰는 게 겁이 나기도 하고, 내키지 않기도 하지만, 이게 내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생각에 용기를 내본다.

(이 글을 보고 구독자님들이 '아 고정문이~ 이런 찐따였어?'하고 생각했더라도, 슬쩍 모른 척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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