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온전히 독립된 생활의 시작은 고시텔이었다. 하숙도 살았고, 기숙사도 살았던 나였다. 그러나 고시텔은 그 어느 공간보다도 비좁은 곳이었다. 내 몸하나 겨우 누일 침대와 책상이라 부르기 어려운 손바닥만 한 책상이 겨우 들어찬 방이었다. 누워있으면 손과 발로 모든 물건을 집을 수 있어 걸을 일이 없는 좁은 방이었다.
그 작은 방 10여 개가 따닥따닥 붙어있으니, 같은 층 첫 번째 방에서 알람이 울리면 끝방에서 들리는, 그만큼 소음이 취약한 곳이었다. 어느 호실에선가 아침마다 국민체조 음악을 트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걸 누구 하나 불만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생활 소음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곳이었다.
그뿐인가, 빨래를 하려고 하면 층마다 하나 있는 세탁기에 10여 명의 고시텔 주민들이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빨래건조는 그 좁은 방에서 겨우겨우 널어 말리거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야외 건조대에 널어놓는 것 중 선택해야 했다.
게다가 좁은 공간여건 탓에, 신발장은 입주자 1인 당 한 자리밖에 제공되지 않으므로, 그날 신지 않을 신발은 방으로 가져와 잘 챙겨두어야 했다.
그렇게 좁고 시끄럽고 불편한 공간이었지만, 서울에서 월세방을 구하기엔 보증금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기숙사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내겐 고시텔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짐을 옮겨주던 아빠는 비좁아터진 방을 보고 경악하였으나, 내겐 굉장히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아마도 그 만족감은, 온전히 누구도 침해하지 않을 나의 공간에 대한 자유.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옆에 있음으로써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누워있든, 빨래를 방에 널어놓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 누가 방을 어떻게 쓰는지 알 턱이 없고, 뭐라 할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누구든 항상 곁에 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으악!’ 소리 한 번이면 옆방이든 끝방이든 달려와 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사람들과의 거리감. 딱 그 정도가 고시텔의 매력이었지 않았을까.
이제 널찍한 월세방에 사는 내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결코 돌아가지 못하겠다 할 곳이지만, 내게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고시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