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42418
사실 나는 내공이 부족하여, 일상의 삶에서 늘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없다.
아주아주 노력을 하고 애써서 들여다봐야 조금의 통찰이란 것이 생길까 싶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건축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저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온 지식인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을 구입한 이유 역시, 프로그램에 대해 인지도와 함께 거론되는 패널들의 명성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건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통찰이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질문 하나가 마음에 새겨졌다.
"나는 어디에 살고 싶은가?"
1. 책 이야기
책의 목차를 보면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제목들이 참 많다.
책의 모든 내용이 신선했다. 특별히 전에 학교 건축에 깊이 관여한 적이 있어서인지 학교 건축에 관한 내용은 참 마음에 와닿았다. 시대는 변하는 데, 학교의 건축 모형은 변하지 않는다. 학교 안 시설의 발전은 두드러지는 데, 구조의 틀은 변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교육을 모든 곳에서 외치지만 정작 획일화된 학교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창의적인 생각 혹은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꽉 막힌 구조물이 아닌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 옳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들은 어느 하루도 똑같지 않은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만들어내는 자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똑같이 생긴 교실에 똑같은 책상과 의자, 똑같은 모양의 창문, 이런 학교와 비교할만한 것은 '교도소' 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선택을 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혁신적인 교육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땅 장사를 통해 이윤을 얻어 기득권의 배를 불릴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학교 건축과 관련하여 저자의 안타까운 외침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이 선택의 문제로 나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의 이윤을 기득권이 포기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혁신적인 교육 환경을 마련한다면, 10년 혹은 20년 후의 대한민국은 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징검다리'에 대한 저자의 시선도 참 따뜻했다.
'징검다리는 물 위에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가지게 해 준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내가 디디고 있는 작은 돌 만큼의 면적은 온전히 내 공간이 된다. 주변은 물로 둘러싸여서 마치 성 주변에 해자가 만들어진 것처럼 확실한 나의 영역이 확보된다. 때로는 마주 오는 사람과 그 좁은 공간을 나누어야 한다. 징검다리 돌 위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교차할 때에는 서로 친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 다이어그램 안에서 가깝게 묶이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또한 징검다리는 하늘과 물 사이에 혼자 존재하는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물이다.' - 내용 중
'징검다리는 물이 불어나면 사라지는 다리다. 물이 불어나도 항상 물 위에 군림하는 다른 다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징검다리는 때론 자연에 양보하는 겸손한 다리다.' - 내용 중
건축의 또 다른 얼굴은 권력이다. 힘을 갖고자 한다면 더 높이 다른 사람들이 감히 오르지 못한 정도로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그 위에서 서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더 높은 건축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로 인해 힘없는 이들은 점점 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공간은 둘로 나뉘어 서로 극명한 대립을 이루게 된다. 갈등은 깊어지고 보이는 장벽 혹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 사이를 가로막아 더 이상 만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건축의 의미가 '갈등과 분열'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징검다리와 같이 서로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고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하는 '화합과 통합'이 아닐까! 더 높아지려는 교만이 아니라 자연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그 섭리에 순응하는 겸손이 아닐까!
저자는 책의 말미에 자신이 건축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필자는 세상에서 갈등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세상을 더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건축을 한다. 잘 만들어진 건축물은 '상을 받은 어린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통찰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