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작품을 보는 색다른 시선
혐오 예술의 대가
안창홍의 그림은 굉장히 강렬하고 혐오감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작품들이다. 그에 비하면 프랜시스 베이컨은 매우 순하고 심심한 맛이다. 이런 작업들을 내가 결국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정해야 할 것은 작가의 솔직함과 용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이나 혐오감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꺼낸다는 것이다.
사랑받기만을 원하고 욕먹기는 싫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두렵고 오해받는 것을 억울해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런 작업을 꺼내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이런 작품을 발표한다면 나는 적어도 내 가족들은 초대하지 못할 것이다. 가족들이 본다면 나에 대해 많은 걱정을 또 할 것 같아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자 나를 걱정할 가족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면, 만약에 내가 그런 소중한 가족이 없고 그저 나 혼자 지탱해나가면 되는 천애고아라면 그런 작품들을 발표할 수가 있을까? 가족이 없다면 분명 많이 자유롭고 막 나갈 수 있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 있도록 타고나야 되는 것이다. 내가 항상 나에게 불만이고 참으로 싫은 지점이 그 부분인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쓰고 그것에 상처받고 위축되고 내 발언과 행동을 필요이상 검열하며 사느냐는 것이다.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때를 많이 느끼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와 이 사람 참 대담한 사람이다.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눈빛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두려워하면서도 작가적 자존심으로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한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표현들도 필요한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다 불편해만 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가장 솔직하고 가장 추한 ‘날 것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예술가의 표현으로써 그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매니아적 좁은 채널에서 깊게 교감하고 깊이 빠져들며 열광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혐오하고 얼떨떨해 하다가 점차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고, 끝까지 혐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미친놈 취급하듯 마음을 닫아버리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눈치 보며 자신의 안목을 조절한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또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싫어하다가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 자신의 안목에 자신 없어 하며 조금씩 조금씩 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취향과 세상의 간극을 좁히려 본능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주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이상씩은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욕망과 두려움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이러한 점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과 여러 면을 입체적으로 함유한다. 편견으로만 굳어질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취향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면서 생각의 폭과 호환성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또 간단치 만은 않은 것이, 장점으로도 볼 수 있는 그런 인간의 특성과 취약성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힘들이 또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서서히 잠식해 가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들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선택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수직하방으로 주입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많은 위대하다는 미술 작품들이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게 전자인 것인지 후자인 것인지 섞여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애매하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