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작품을 보는 색다른 시선
진지본능 주의보
스타작가는 작품만 던져 놓으면 비평가들이 알아서 상찬하고 예술을 만들어준다. 참으로 부럽고 신기하기도 하다. 어떤 작품들을 보면 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화도 나는데 그 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의 피해의식과 루저의 넋두리 같은 것일까?
미술에 대한 신비감과 기대감 같은 것들을 가질 필요 없다. “무언가 깊은 의미가 있겠지. 수준이 낮은 내가 이해 못 하는 것이겠지…”, “아무 의미도 없고 이유도 말 할 수 없는 그냥 무의미한 동작의 낙서 같은 것들을 설마 작품이라고 내 놓을 수 있겠어?” 하고 생각하며 그 안에 들어있다고 믿는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하면 점점 더 멀어지고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다.
작품에 꼭 의미나 서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마다 전혀 다른 표현의 이유와 기준과 완전히 무게가 다른 발표의 책임감들을 가지고 있다. 과한 기대감과 신비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서만도 못하게 10초 만에 아무렇게나 툭 툭 붓질 몇 번 던진 대가의작품들 앞에서, 어느새 나는 또 진지본능이 발동하고 혈압이 오르고 만다.
작품이 꼭 진중하고 겸손하거나 성실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결국 열이 받는다. 꼰대 마인드 같기도 하고 참 내가 못난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작품들을 또 애써서 상찬하고 있는 글들을 보면 간신히 억누른 화가 또 뚫고 나오는 것이다.
세상이 내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리 화가 나는 걸까?
그 정도 작품에 그 정도 분노는 할 수 있게 해 달라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거나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어떤 작품을 보고는 정 반대의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쩔 수 없다. 내가 그 작가의 작업을 막을 수는 없고 작품을 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면 안 된다. 하지만 적어도 감상자의 자격으로 나의 불쾌감 정도는 표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특히나 그런 식의 작업이라면 보통 사람이 열 받을 만도 한데, 왜 감동의 표현은 해도 되고 분노의 표현은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예술가들은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척해 낸다면서 (대충 막 던지는 방식), 감상자들은 새로운 반응 (분노 표현) 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쌍욕을 하거나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미 하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숨어서 소극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방식의 작업이라면 새로운 방식의 반응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들이 감상자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과도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척 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의 부스러기 같은 배출물 들을, 대단하게 봐달라는 어떠한 의도도 없이 시크하게 그냥 툭 던졌을 뿐일 수도 있다. 평론가는 전시를 진행해야 하니까 자신의 임무에 맞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어사무사하고 시적이고 문학적인 글을 창조해냈을 뿐이다.
아무도 거기서 대단한 무엇인가를 찾아내 달라고 나에게 강요하거나 조르지 않았는데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요구하기는 하지.) 나 혼자 허우적 거리다가 나 혼자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아 이놈의 진지본능. 진지주의.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인지…나는 왜 진지충으로 태어나서 홀로 이러고 있는 것인가? ㅠ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야 말로 참 대단하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창조가 아닌가? 무언가 있는 것, 함께 공감하고 공유했던 무언가를 잡아내 올리는 것은 창조가 아니다. 그것은 ‘발견’이나 ‘포획’, ‘채굴’ 등일 것이다. 있는 것을 언어나 언어 이외의 것으로 변환한 것이니까.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별 이유도 의미도 없는 그런 것을 표현하고, 별 것도 없는데 주어진 분량만큼의 글과 말을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야 말로 진짜 창조가 아닌가?
투명 임금님 옷을 만든 재봉사들도, 시점을 바꾸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예술가들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 이라면 눈치가 빠르고 괜한 심각함과 두려움이 적은 사람들인 것도 같고, 재빨리 게임의 법칙을 파악하고 함께 게임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참 그런 작품들을 가지고 주목을 받는 선택된 작가들을 보면 참으로 경외감을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진정한 승리자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진짜 실력은 어떤 사유의 깊이나 고민의 공감성, 다양성의 인지와 체득 등의 요소가 아니라, 게임의 룰과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 채고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지고 기죽지 않고 살아남는 ‘담’ 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