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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에 대한 집착

by 김경섭

감동에 대한 기대와 강요, 그리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의 차이


관객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와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감동을 나에게 달라.”며 작품에게 강요하는 관객 또한 존재한다. 그것들은 “미술은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대작에는 무언가 대단한 의미가 숨어 있을 것이다.”라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감동을 주는 것은 미술에 있어서 일부의 목적이며 그런 목적이 없어도 미술은 충분히 성립한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는 것도 각자에게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없어도 잘못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사람들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입장과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예술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따분하고 진부한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장난치는 것 같은 싸지름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재기 발랄하고 엉뚱하고 자유롭고 독특한 작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어떤 문제 제기가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지적인 쾌감을 주는 작품 일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와 감동에 대한 집착


현대미술을 보고 감동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중국에 가서 피라미드를 찾고 있는 것과도 같다. 이미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지는 한참 전이고, 미술의 가치는 감동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움과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개혁성 등에도 있다.


다시 말해서 가슴으로 감동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를 하는 인식의 대상인 작품들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감동의 대상도 아니고, 이해의 대상도 아니고, 그냥 보는 대상이기도) 피카소도 그렇고 앤디 워홀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의 작품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유를 이해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전반적인 맥락 같은 거 잘 모르고,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냥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감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고, 감동을 주려는 목적이 아닌 작품들을 대상으로 감동을 받으려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추켜세우고 찬양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에 부응해야 하는 전시 주최자들은 감동의 분위기를 연막탄처럼 마구마구 만들어 낸다. 다들 감동하고 찬탄하는 분위긴데, 나만 아무것도 안 느껴지면 고독하고 불안해지지 않나? 그렇게 되기 싫으면 감동 연기라도 하면서 대세에 묻어가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대중의 그런 심리를 쥐고 흔드는 것이 마케팅이고 이 세상의 자본과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대중은 그 안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이끌려가는 쥐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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