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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기다!"... 진짜로???...

쉽게 할 수 없는 질문 - 진짜로 예술은 사기일까?

by 김경섭

예술은 진짜로 사기일까?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진짜로 예술이 사기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백남준이 이 말을 할 때도, 그렇게 달랑 한 마디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그 말은 인터뷰 과정에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정의를 이야기하던 중에 들어가 있는 한 문장이다. 전체적으로 그의 인터뷰 전문을 보고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가 말하는 바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의 인터뷰 내용이라고 해봐야 그리 길지 않다. 한두 단락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거기서 발췌해 낸 짧은 한 문장보다는 좀 더 자세해지고 입체적이 된다.


앞뒤 문맥을 살펴본다고 반전이 일어나고 “본래 뜻은 그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의 주장을 구체화시키는 쪽에 가깝기는 하지만,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정의하기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이 말했다고 해서 정답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백남준이 세계적인 대가이기는 하지만, 한 명의 생각일 뿐이다. 수많은 대가들의 생각은 다 다르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더 정확하고 심층적이지만 길고 복잡한 설명이 따라붙는 주장보다, 편협하고 부정확하더라도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주장에 이끌리고 그쪽에 힘을 싣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생각은 질색이고 그것이 자기를 쉽게 이해시켜 주고 자신의 믿음과 비위에 맞는 것만 찾는 사람이라면 책 한 권의 분량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툭 던진 한 마디가 자신의 입맛에 부합하면 그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리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불만족스럽다면 또 완전 반대 방향에서 O, X 식으로 마치 정답인 것 마냥 간단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주장도 있을 테니,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예술은 사기다.” 이 한 마디에 자신의 궁금증이 해결되는 사람들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예술은 존귀한 것이다.” 이 한 마디에 만족스럽고 불만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 너 누구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을 한지 거의 20여 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나는 미술작가로서 내 작업에 대한 이야기보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또한 나로부터 빠져나와 작업을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meta적인 시점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예술’과 ‘예술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척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부모님의 열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에 갔고, 대학 시절에는 예술에 대해 열정적으로 진지하게 고뇌하는 동료들과 수많은 토론을 했다. 물론 항상 취한 상태였기는 했지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마냥 진지하고 바보스럽게 순수했던 것 같다. 예술이 진짜로 무엇인지, 나는 너무나 궁금해했었다. 질문을 던지고 바닥을 기며 여기저기 뒤져보며 답을 찾고, 별 생산성도 없는 그 일을 여태껏 반복하고 또 반복해 왔다.


예술계 밖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예술계 내부의 한 구성원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나 또한 예술작품을 대하는 감상자로서 예술가가 되기 전에 그 밖에서부터 내가 먼저 궁금해했고 답을 알고 싶었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름 치열하고 집요하게 고민해 오고 답을 찾아왔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정답도 아니고 내 생각일 뿐인데, 내가 뭐라고…’ 한 발 빼며 약간은 두렵고 겸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대에 입학한 후로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걸고 고민해 왔던 만큼,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해볼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전문가들의 실체


그 누가 정확한 답을 말할 수가 있으랴? 나보다 더 고민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더 깊고 질이 좋은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여전히 정답은 알 수 없고 누구도 별 수 없다.


학위를 좀 더 화려하게 갖추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의 타이틀을 획득해 낸 사람이라면 더 정확할 것 같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들이 파헤쳐보면 결국 허상인 경우는 많다. 부풀려진 이미지와 도전하기 어려운 권위에 의존해 안주하며 쌀로 밥 짓고 콩으로 두부 만든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전문가스러워 보이는 현학적인 단어와 자신도 이해 못 하는 표현을 이용해 더욱 어려워 보이도록 전달해서 쉬운 것도 어려워 보이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별 것도 아닌 것조차 보통 사람들이 겁을 집어 먹거나 포기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권위를 더욱 획득하고 격차를 더욱 벌리려 하는 이들이 전문가라는 자들의 태반이다. 공부를 많이 한 그들도 사실은 이해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누군가의 말을 그저 기계적으로 달달 외워서 마치 자기는 이해한 것 마냥 읊어대고 인용하기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계속 파헤쳐 들어가서 그 원천까지 도달했을 때, 그 말을 처음 한 사람(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위대한 성인이나 철학자, 예술가, 평론가 등)도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힘인 ‘권위’라는 것은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면 그렇게 정당하지도 않고 실체가 명확한 것도 아닌 허상과 같은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아이러니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실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국은 이미지이고, 그것은 ‘시뮬라크르’라고 하는 단어로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진다. 그것은 이 책의 전말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라고도 할 수 있다.


용어 정리


오해를 최대한 줄이고 논의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일단 몇 개의 용어 정리와 개념 제한부터 해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 즉 백남준이 말한 “예술은 사기다.”라는 표현에서의 ‘예술’은, 무언가 거창하고 충격적이거나 알쏭달쏭하고 희한하거나 때로는 매우 허무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데 대단하다고 하는 그 뜻을 당최 알기 힘든 ‘현대미술’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이라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것에 대한 개념과 정의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언제서부터 언제까지를 현대미술이라고 할 것인지 - 가 학자들마다 다르고, 명확하게 통일되고 합의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미술’이라는 표현보다는 시기적으로 그다음 단계인 ‘동시대미술’이라는 표현이 미술사적으로 더 정확하고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 표현은 대중들에게 낯설고, 아직 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계에서 분류하고 칭하는 ‘동시대미술’을 아직 ‘현대미술’이라고 부르고 인식한다. ‘동시대미술’이라는 표현이 더 한정되고 적확해질 수는 있겠지만 설명을 한 단계 더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과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그냥 사람들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쉬운 ‘현대미술’로 이야기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 아트, 미술, 현대미술, 동시대미술, 미술작품, 작품, 작업)

(예술가, 미술가, 작가, 화가, 조각가, 아티스트)

(비평가, 평론가, 이론가)

(감상자, 관람자, 관객)

(긍정론, 옹호론, 예찬론)

(혐오론, 부정론, 반대론, 비판론)

(레플리카, 복제품, 카피본)


이렇게 같은 지시체를 가리키지만, 단어만 바꿔서 말하는 것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의미가 조금씩 구분되는 것들도 있지만, 정확해지는 득보다는 복잡해지는 실이 클 것 같다. 괄호 안에서는 그냥 다 같은 의미라고 봐도 무방하다. 표현의 다양성 정도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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