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나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식물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며,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차이가 무엇이냐?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느냐?” 질문을 던지며 나온 장르이다.
예를 들어서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_1964>는 이제 예술이 더 이상 비평가들의 고급 예술, 고급 취향을 가진 소수 예술 애호가들의 예술일 필요가 없고, 아무런 권위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일상 속의 사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권위도 지니지 않았던 평범한 일상 속의 사물도 예술로 인정받고 나면, 엄청난 권위를 획득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미술은 기존의 권위와 관념에 저항하고 항상 다르게 보기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와 가치로 삼는다. 그렇게 실험정신을 가지고 도전하여 권위를 획득하고 난 후 미술관에 걸리고 대가의 작품이 된 후에는 결국은 어떠한 권위와 관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압적인 힘을 가진다.
물론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생각해도 된다고 말은 한다. 하지만 진짜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면, 눈을 떴을 때 혼자서 외딴섬에 남게 되는 고독과 외로움으로 가는 길임을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형성되는 ‘막’
작품이라는 것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리는 순간 다른 아우라를 생성하고 어떤 권위를 획득한다. 하물며 그냥 입구에서부터 최고 권위를 꽂고 시작하는 국립 내지는 세계 유수의 유명 미술관 등에 입성했을 때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마법을 부리기 마련이다.
장 뒤뷔페 나 바스키아 등의 팝아트 작가들은 기존 미술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미술 뭐 별거 있어?” 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것’의 토대 위에 제작된 그들의 대충 막 처바른 듯한 작품들을 완전 뻔뻔스럽게 (또는 진정 멋있고 당당하게) 꺼내놓은 작가들이다.
장 뒤뷔페
바스키아
만약 그들의 작품이 미술관으로 입성하기 전이었다면, 작품의 의도가 오히려 설명 없이도 더욱 강하고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을 수도 있다. ‘작품’이라는 권위를 획득하기 전이었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작품과 관객 사이에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막이 없는 채로 작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고, 있는 그대로 날것의 생동감과 익살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짓궂고 능청스러운 그들의 표현에 피식 웃거나 킬킬거릴 수도 있고 그야말로 진정한 예술 감상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더욱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아무나 가 한 끄적거림 같은 가치 없는 대상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이중성 또한 발생한다.
아무튼 그런 작품들이 번듯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되면, 작품이라는 아우라가 생성되고 관객과의 사이에 몇 겹의 보이지 않는 막이 형성된다. 그 막의 개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막이 형성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저 작품의 원래 의도나 아니면 감상자 스스로의 주관적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고 그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다양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혼돈의 시대에, 어느 순간 어떤 한 이미지의 의도나 느낌이 자신에게 와닿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그게 정상이고 평균이고 사실상 대부분이다. 나도 대부분이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작품이 미술관에 걸려서 막이 형성된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심오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신비감과 기대를 가지게 하고, 작품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결국 사람들과 멀어지고 어려운 대상이 되고 만다.
나와 어제까지 치고받고 뒹굴며 놀고 살색 가득한 음담패설과 거친 쌍욕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던 친구가 신분을 감추었던 재벌 회장의 아들임을 알게 된 순간, 갑자기 그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그냥 편하고 진짜로 친한 친구가 하는 농담이라면 웃기면 웃으면 되고 안 웃기면 면박을 주며 갈굴 수도 있는데, 어려운 직장 상사가 하는 농담이라면 안 웃겨도 무조건 웃어야 되는 그런 상황.
쉬운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편견과 막을 형성하고 멀어진다. 그렇게 되니 그 편견을 없애고 본래의 의도를 알기 위해 설명을 들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 작품이 아주 유명해지고 작품 가격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에게는 경외감이라는 더욱 두껍고 강력한 막이 한 겹 더 형성이 된다.
딱딱하고 허영심과 권위의식 가득한 기존의 미술을 조롱하고, 쉬운 미술 날 것의 미술을 의도하고 추구했던 작품들이, 그들 역시 미술의 권위를 얻게 되는 순간서부터는 결국 대중들과 멀어진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과 의견이 존재할 것이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점에서는 대중과 가까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개개인에게는 결국 권위의 대상이 되어버린 역설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미술이 꼭 그렇게 진지해야 돼? 나는 이렇게 막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막 한 것들과 기존의 대단한 미술들과의 차이는 무엇이냐?"라고 반항적 질문을 던지고 기존 미술의 허세적 권위에 조소를 날려 그 용기와 전복성을 인정받아 가치가 형성된 작품들이 결국 범접하기 힘든 권위의 대상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이런 장난치는 듯한 것들도 대단한 예술인 양 행세하는 것이냐?”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다섯 살짜리 우리 아들보다도 못 그린 이런 허접한 낙서 수준 그림이 수백억이라고 하고, 대단한 예술인 양 추앙하는 것이 사람 농락하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현대미술은 알 수가 없는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