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수직하방으로 주입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by 김경섭

영화나 음악은 대중의 평과 소비가 모여 그것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호불호가 모여서 평균적인 대중의 의견을 형성한다. 이것도 깊이 들어가면 다른 시각과 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미술에 비해서는 분명히 대중의 의견이 영향력을 가진다. 그래서 권력을 대중이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대체로 맞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대중의 의견과 평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요인들이 훨씬 더 크게 작동하는 것이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으로서의 미술에 별 관심이 없다.


영화나 음악의 소비는 실패해도 타격이 크지 않다. 잘못 고른 망한 영화나 잘못 구매한 음원이나 CD라고 해도 그냥 “에이 돈 날렸네.”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큰 부담 없이 자신의 취향이나 구매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들이다.


하지만 미술품을 사는 것은 일단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어느 정도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어지간히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영화나 음악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충실하게 선택하고 부담 없이 지를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다. 큰돈이 들어가고, 자기 맘에만 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영화나 음악은 감상가치로서 끝나지만 미술작품은 투자가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자기 맘에 들어서 작품을 사려하는데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는다거나, 그 작품이 맘에 드는데 작가가 유명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을 경우에도 흔들린다. 나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하니까 나도 좋아해야 하는 것 같고,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 교양 없고 무식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이나 의견에 나를 대입하는 경우는 많다. 나의 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다시 되팔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고, 다시 말해서 가격이 오르거나 되파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작품이 좋아서 작품을 사는 사람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매우 소수이다.


음악이나 영화에서도 자신의 취향이나 느낌에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목소리에 묻어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술에 비하면 훨씬 더 남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만족도에 충실한 편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매할 때, 실패의 부담 또한 훨씬 적다. 하지만 미술의 경우에는 완전히 다르다.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들의 의견은 ‘슈퍼스타’ 작가를 만드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도 이미 대중이 아니고 소수로 추려진 부자들인데 말이다. 슈퍼스타 작가는 아트페어에 걸리기도 전에, 정보력과 자본력을 더 많이 가진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미 다 팔려 있는 경우이다. 슈퍼스타 작가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근래에 와서는 예전보다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들의 취향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중해지기는 했다. 아트페어 판매 실적을 통한 ‘스타’ 작가도 심심치 않게 배출되기는 하니까. 하지만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초일류 작가들은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반응해서 단계적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아니다.


미술은 주입되고 강요된다. 그냥 위에서 결정되어 대중들에게는, “그냥 이게 진리이니 닥치고 받아들여라잉.” 하는 식으로 툭 떨어진다. 그 위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콕 찝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공식적으로 그들이 드러내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미술계의 흐름을 핸들링할 수 있는 파워맨 그룹 정도로 막연하게나마 이야기할 수 있겠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이다.


그것은 판을 흔들 수 있을 만큼의 재력과 힘을 갖춘 슈퍼 컬렉터일 수도 있고, 초 메이저 갤러리일 수도 있고, 유수 미술관의 권력자일 수도 있고, 입김 발휘하는 저명한 평론가일 수도 있다. 그런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치가 정해져서 대중에게는, 그냥 위에서 결정된 것이니 너는 거부할 수 없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그 권위라는 것은 실로 엄청나서, 보통의 사람들은 이게 뭐냐고 숨어서 빈정거리면서 투덜거릴 수는 있어도 그 작가의 위상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이미 막강한 권위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고 반박하기가 힘든 휘황찬란한 기적의 논리들로,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지가 탄로 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그냥 함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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