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그들만의 허세 잔치인가?

예술은 세상과의 기싸움 이다

by 김경섭


미술은 0.1을 백만으로 불리는 마법이다


현대미술은 0.1을 백만으로 또는 무한대의 수량으로 변환시키는 마법이다. 0과 0.1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0에서는 무엇이 더해지지 않는 이상 그것 자체로부터는 0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0.1 아니 0.0001이어도 그것 자체로부터 증폭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대이다.


그 아주 미세하고 섬세한 것을 잡아낸다는 것. 그것을 보고 “뭐야 그래 봤자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주 사소한 거잖아? 그게 그래서 뭐가 어떻다고. 뭐 하러 그걸 잡아내고 있는 건데?” 이렇게 말하고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 정말 대단하다! 이걸 어떻게 잡아냈어? 맞아 아주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야. 우와 이걸 잡아냈어! 소름 끼쳐.” 이렇게 정반대의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0.1이 백만으로 확장되는 마법의 순간은 이렇게 깨우침과 받아들임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렇게 발상의 전환과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위대한 마법의 예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린 그림의 제목으로 <이미지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_1929>라고 붙였다. 그것은 그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고 이미지일 뿐이지 실물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리고 또 해석의 지평은 열려 있다. 더 다채롭게 해석할 수 있고 그래도 된다. 그래주면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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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폰타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에 주욱 칼자국을 냈다. 그리고 ‘공간주의’(1949~1968)를 창시했다. 캔버스는 그림을 그리는 매체이고 평면이라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작품에 부여한 것이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캔버스에 무언가를 ‘더해서’가 아니라 ‘빼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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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가는, “나는 구멍을 뚫는다. 무한함이 그곳을 통해 지나가고, 빛이 지나간다. 그릴 필요가 없다. … 모두들 내가 파괴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우환은 엄격한 자기 호흡 수련을 거쳐서, 커다란 캔버스에 혼신의 힘을 모아 점을 하나 찍었다. 아무렇게나 찍은 점이 아니다. 텅 빈 공간에서 점 하나를 찍는데, 점 하나가 텅 빈 공간과 맞물려야 되고 상호작용으로 버티는 어떤 힘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연습과 연구를 거쳐 나름대로의 모든 힘과 지혜를 총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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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찍은 그 점은 그린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 짓는 행위이다. 때로는 두 개 혹은 세 개 또는 그 이상을 찍기도 한다. 점의 위치와 크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그것은 완전히 다른 점이 되고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 점이나 저 점이나 똑같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들은 ‘다른’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어제 먹은 짜장면과 오늘 먹은 짜장면은 같은 것이 아니고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점과 선 그리고 여백의 캔버스 앞에서 순간적이며 초월적인 경험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이우환이 의도하는 ‘만남’이란 대상과 마주하는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대상을 넘어선 일체감이자 인간과 물질, 안과 밖이 상호 공존하는 열린 세계, 즉 ‘탈아의 경지’이다. 그렇게 그는 작품을 통해 자아와 세계와의 일체감을 자각하는 일회적 경험을 열어준다.

작가는 “나의 관심은 이미지나 물체의 존재성보다 ‘만남’의 관계에서 오는 현상학적인 지각의 세계에 있다.”라고 말했다.


자. 후두부를 가격하는 엄청난 깨달음이 밀려오는가? 소름이 돋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가? 사유가 열리고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가? …

예술은 그것을 이해하고 상상하고 느끼며 감탄하는 사람이 더 우월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들은 확고부동한 세계적 거장들이다


르네 마그리트, 루치오 폰타나, 이우환. 이 작가들은 미술사에 수록된 확고부동한 세계적인 거장들이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색채가 강하지만 개념주의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기반을 닦았다. 그의 작품을 아무것이라도 한 점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이 작가!” 할 정도로 매우 유명한 작가이다. 폰타나는 ‘공간개념’을 창시하고 르네상스부터 이어진 전통적 회화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우환은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수용해 낸 한국의 대가이다.


이들의 작품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이미 장식하고 있는 엄청 중요한 것들이다. 작품 가격은 수십억 또는 수백억, 그 이상이다.


대부분 마법은 통한다


돈이 매우 많고 지식도 많고 자신감 가득하고 당당한 사람이 있다. 그에게 우호적인 팬들 앞에서 전문용어들을 섞어서 자신의 미술 지식을 뽐내가며 이 작품들을 청산유수의 달변으로 소개한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보다 돈과 지식이 부족하고 왠지 모를 열등감과 추종심을 가지고 있기도 한 많은 사람들은, 가뜩이나 사는 세상이 다른 ‘그사세’의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흠모하기도 하고 있는데,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미술작품을 소개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화려하게 설명한다. 무언가 대단한 대상을 마주한 것처럼 위축되기도 하고 좌절감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닿지 못하는 지적이고 신비한 어떤 세계에 닿고 있는 것 같은 그 사람에게, 존경과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낼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마법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쪽에는 큰 관심과 지식이 없지만 지적 능력과 유머 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큰 인기와 그로 인한 권위가 있고 자신감과 자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손님이자 미술전문가 패널인 젊은 미술학도가 미술 교양 코너에서 이 작품들을 열심히 소개한다고 해보자. 그들은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매불쇼>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음… 너네는 막 손뼉 치고 감탄하고 그러냐? …이야 대단하다. 대단해. 너희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 예술가들이 굉장히 한가한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근데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저런 주제 중 한 개를 가지고도 논문 한 편을 쓰기도 하고 책 한 권을 만들어내기도 하잖아? 그것도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그러고 나면 끝나고 집에 가서 혼자 있을 때 현타 오고 막 그러지는 않냐? 난 그것이 진짜로 더 궁금하다.”


이렇게 반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 자리에서 을의 입장인 미술전문가 패널은 ‘이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대단한 일’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두 상황에 다 충분히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된다. 똑같은 작품인데, 왜 그 마법이 어디서는 통하고 어디서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두 상황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분위기의 차이이다. 누가 그 상황의 주도권을, 누가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냉정하게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만만할 때 통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직급이 훨씬 더 높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 앞에서, 그가 잘 모르지만 나는 잘 알고 있는 무엇에 대해서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해 잘난 척하며 설명할 수가 있을까?


예술작품은 그저 소재일 뿐이고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술은 주도권 싸움, 기싸움이 되어버리고 만다. 본질은 파워 게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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