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해몽보다 주입
알고들 있겠지만 미술은 꿈보다 해몽이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 또는 우리의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양의 텍스트들이 많이 있다. 만약에 그들의 작품을 아직 본 적이 없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들의 작품이 왜 그토록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필연적 이유와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감동과 경건한 찬양의 글을 먼저 본다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기에 그러는 것일까 매우 궁금하고 기대감이 생길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고, 아마도 십중팔구는 실망하고 상상과 기대에 한참 못 미칠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기대를 크게 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실망감과 함께 자괴감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모자란 건가?”, 그렇게도 대단하다는데 내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으니, “내가 감성이 메말랐거나 교양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건가?” 하고 위축되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가 눈치를 보아하니 남들도 비슷한 것도 같고, 적당히 무언가 느껴진다는 반응을 하면서 적당히 인정과 찬사를 보내며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인 액션을 취하게 된다.
그래도 교육을 받았는데, 남들은 뭔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임금님 옷이 참 멋지다고 하는데, 임금님이 벌거벗지 않았냐고 하면 무식하고 답답한 사람 취급받을 분위기이다. 혹시라도 용기 내서 그렇게 말해보면, 몇몇 사람은 공감하지만, 미술에 대해서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니 수준이 뭐 그렇지.” 하는 승자의 눈빛으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 한다.
이우환은 점 몇 개 찍거나 선을 죽죽 긋거나 아무렇게나 휘갈긴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하루 종일 유려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지 알듯 말 듯 한데 반박하기가 힘들다. 만약에 반박을 한다면 더 이해하기 힘들고 웬만해서 더는 추궁하기 힘들어지는 답변을 들어야 할 것이다. 방법은 고개 끄덕거리면서 “이제 나도 알 것 같다!"라는 표정을 짓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무슨 소리인 것인지 이해는 가지만 공감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근데?,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하고 튕겨내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특히나 까마득한 권위를 가진 대상에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무례한 행동이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공감이 가는 척 무난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냥 적당히 공감하는 척하면서 함께 고개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진짜 그러네!” 하고 하나마나 한 소리 정도 보태면 큰 문제없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