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감상은 '권위에의 호소'와 '의도확대의 오류'이다
대가들이 자주 쓰는 보통의 침투 방식
권위에의 호소와 의도확대의 오류
우리가 현실에서 미술을 감상할 때 은연중에 사회적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것은 국어시간에 배운 ‘권위에의 호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에 해당되기도 한다. 속되게 말해서 ‘분위기로 조지는 것’인데, 거기서 솔직하게 발언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예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내부이다. 밖에서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저렇게 허술하고 말도 안 되고 조잡하고 천박한 것에 몰입하고 완전히 지배되고 장악당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먼저 교주가 절대자임을 자칭한다. 그리고 정치인, 박사, 교수, 법률가, 의사, 성공한 사업가 등 사회 각 층의 유명하고 쟁쟁한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린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세계적 명문대 출신의 화려한 스펙을 가진 이들과 세련되고 매력적인 외모권력을 가진 이들이 확신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경쟁적으로 충성한다. 교주부터 그 밑의 추종자들까지 모두가 대단한 권위를 가진 자들이다. 그렇다면 저들과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내가 의심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된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저러는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사이비 종교 내부의 사람들은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엄청난 권위에 완전히 지배당해 있다. 밖에서 보는 관찰자들은 멀리 서는 답답해하고 욕하고 비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까이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그들의 광기에 어떠한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이 사이비 종교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술에 그런 부분들이 없다고 할 수 있을 텐가?
‘감상은 감상자의 몫’이라는 말은 그저 매가리 없는 허공의 외침이 될 뿐이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과 비판적 견해를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괜히 비판했다가 망신만 당할 것을 직감하기 때문에, 아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기껏해야 질문 몇 번 하다가, “아하!” 하고 이해가 가는 척하는 수 정도밖에는 없다. 그렇게 억누른 분노는 주로 보통 아직 권위를 획득하지 못한 힘없는 작가들에게 향하기도 한다. 사장한테 뺨 맞고 김대리한테 화 푸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