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은 조수들이 다 한다
미술계의 비밀아닌 비밀
보통의 작업 방식
보통의 프로 작가들은, 최대한의 효율성과 속도를 추구하면서 작업실의 한도 내에서 작품들을 여러 개 펼쳐놓고 동시에 진행한다.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진행한다는 뜻이다. 1단계부터 10단계까지의 공정을 10개의 작품 각각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느니, 10개의 작품을 동시에 펼쳐놓고 단계를 맞추어 진행하는 것이 효율성과 속도, 재료비 절감 차원에서 훨씬 수월하다. (작업 공정이 1단계에서 끝나는 작품이라면 하나하나 각개격파 식으로 진행을 할 것 같기는 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니 예술을 그렇게 일처럼 기계적으로 해? 한 작품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씨름하며 혼을 불어넣는 거 아니었어?” 하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작업실 광경을 그와 같이 상상할 것이다.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으며 자유롭게 폐인처럼 살다가 갑자기 영감을 받으면, 눈빛에 불덩이가 일며 다른 사람으로 변해 예술혼을 활활 불태우며 산고의 고통을 거쳐서 작품을 그렇게 생산해 낸다고.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들을 많이 갖고 있다. 다 영화 속 풍경이다. 사람들은 영화나 미디어가 우리들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환상과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조수가 다 했다고?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한 유명 작가의 시다 작업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선배들과 함께 작업의 물리적 실행을 우리가 다 하면서 “미술대학 실기 시험을 실기 시험이 아니라 실기를 감독하는 시험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교수님의 이름으로 제작되는 조각상 작업을 대학원생 선배들이 마무리 지을 때까지 그 교수님은 한 번도 작업장에 오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서 그런 시스템에 익숙해져 갔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을 만드신 분은 한참 전에 작고하신 조소과의 대빵 원로 선생님이신데, 내가 학교 다닐 때 그 당시 학교의 가장 대빵 선생님(이순신 장군상 제작 시절 그 분의 제자)께서 직접 그 작품을 만들 때 고생하셨던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했었다.
몇 년 전 이 문제와 관련해 조영남 사건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조수를 쓰는 작가가 있겠고 그러지 못하는 작가가 있다. 그것의 이유는 예술관이나 양심의 문제 등이 아니라 자금력이 99퍼센트이다. 어떤 작업은 기법의 난이도 문제 때문에 조수를 쓰고 싶어도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조수를 쓸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되고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 작업의 경우에는 거의가 다 조수를 쓴다고 보면 된다.
어떤 작가와 평론가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 작품은 진정성과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결여된 것이라고 아직까지도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경우는 그가 조수를 쓸 형편이 안 되거나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작업이어서 자기의 행위만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자기는 힘들게 몸 망가져가면서 조금씩 밖에 못 생산해 내는데, 누군가는 조수를 써서 휘리릭 휘리릭 많이 생산해 내고 잘 파니까 열받을 만도 하지. 나도 열받는다.
그리고 그 평론가는 아직까지도 작품의 서사성과 신화성, 작가의 신체성과 손맛에 대한 동경과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평론가들도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 나가는) 작가들의 조수 사용을 당연시 여기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평론가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상황을 합리화하게 되어 있다. 굳이 뒤샹과 앤디 워홀의 권위와 말까지 빌려 오지 않아도 된다. 박서보가 예전에 “조수가 다 한다.”는 비판에 대해, 남의 손을 통해 진행이 되고 완성이 돼야 자신의 작업 취지에 맞다고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 또한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작업한 자신의 작품이 공격받는 것에 대해 개발한 논리일 뿐이다.
그냥 간단하게, 조수 고용할 돈 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잘 팔린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잘 팔리고 바쁜 작가들은 대부분 그렇게 한다.) 사람 쓸 형편이 안 되면 자기가 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예술지상주의와 예술순수주의
나는 직업이 예술가이고 예술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굉장히 신성시하고 순수하게만 접근해야 한다는 식의 예술지상주의는 아니다. 충성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 그것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은 각자마다의 것이고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예술의 종류나 영역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어떤 식의 작업은 조수를 써도 되고 어떤 식의 작업은 안 된다는 것 또한 파고 들어가면 애매해지고 앞뒤가 안 맞게 된다.
어떤 작업은 조수를 써도 되고 어떤 작업은 조수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대형 조각 작업은 조수를 써도 되는 것이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은 회화 작업은 조수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딱 중간에 위치하는 중형 부조작업은 써도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 안 된다면, 어디서부터 써도 되는 것인가?
조수를 쓸 수밖에 없고 써도 되는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선을 간신히 넘긴 작업은 조수를 써도 되는 것이고 그 선에 미세하게 못 닿은 작업은 조수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 혼자서는 불가능한 대형 작업은 조수를 쓸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소형 작업 100개는 쓰면 안 되나? 일의 양은 소형작업 100개가 훨씬 더 많을 텐데?
이렇게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작가는 조수를 쓰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작가는 애써 숨기고 어떤 작가는 조수를 쓴다고 욕을 먹는다.
나의 경우에는 지금껏 조수를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도 좀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내 작업들은 내가 계획하고 그리고 있는 큰 바운더리 안에서 일부에 해당하고, 내 작업을 이루는 요소 중 물리적인 부분 또한 작업의 일부분일 뿐이다.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선택하고 버리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다. 나를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은 내가 하는 수밖에 없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대신해줄 수 있는 부분은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물질이 관념을 좌우한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그 사람이 처한 물질적 환경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정신이 물질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이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다.
조수를 쓰고 안 쓰고는 작가의 가치관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 형편의 문제이다. 작품이 잘 팔리고 그로 인해 돈 걱정이 없는 소수의 작가는 조수를 쓰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는 대다수의 작가는 조수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
간혹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 중에서도 조수를 쓰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도 가치관이 우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치관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켜주는 쪽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작업은 조수를 쓸 필요가 없게 품이 적게 드는 작업이거나, 조수를 쓰고 싶어도 기법의 난이도 때문에 쓸 수가 없는 작업이거나 아니면 그들은 작업을 정말로 즐기는 것 같다.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갖게 되는 사람들의 충격과 배신감도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국 적응하게 되어 있다. 상처가 크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주변을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눈치를 봐서, 남들도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신도 빨리 적응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혼자서 우기고 그 배신감을 유지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외로워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고지식한 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가 직접 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 작가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든지 간에 인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처럼 공공연하게 대놓고 조수를 썼든지 아니면 수많은 대가들처럼 은밀하게 조수를 썼든지 간에 그것이 결국 인정된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커다란 권위는 사람들의 저항선을 조금씩 침식시키고 결국 함락해 버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정된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분노와 비판은 아직 권위를 획득하지 못한 힘없는 작가들을 향할 뿐이다. 사장에게서 걷어차이고 김대리 찾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샌드백 김대리, 견디다 못해 회사 때려쳤댄다. 김대리가 회사를 나갔으니 조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영남은 그렇게 김대리의 역할이자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조영남이 가요계나 연예계에서는 한 자리 차지한 사장쯤 될지 몰라도, 미술계에서는 외부 인사에 대리급에 머물 뿐 인 것이다.
미술계의 대작 관행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자면, 만만한 조영남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다 한 것 같은 구도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실제로는 뒤에서 조수들이 다 한 대가들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