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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May 17. 2024

환상과 현실의 차이

예술가에 대한 환상


영화 속에서의 이상화된 러브 스토리가 현실에서 존재하는가? 영화는 <남자의 향기>이지만 현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물론 각자 사연은 구구절절하고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기도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선택된 기억은 왜곡되고 아름답게 윤색된다.


영화 속에서는 순수하게 헌신적으로 모든 것을 바치고 목숨을 걸고 운명 같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데이트 비용 혼자서 독박 쓰는 것 같다고 열받아하고, 바람피우다 걸려서 싸우고 헤어지고, 헤어진 후에 비싼 선물 준 거 아까워하고 어떻게 하면 돌려받을 수 있을까 궁리하고 하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의 삶과 러브 스토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심어주는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삶과 작업실 내부의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작업실도 그냥 보통의 직장인들과 같은 일터인 것이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조금 더 게으른 사람이 있고, 처음엔 재미있었을지 몰라도 계속하다 보면 지겨워지고 지겨워도 일이니까 해야만 하고, 그런 거다. 막 영감을 받아서 접신한 듯하는 작업은 예전에 어떤 작가의 작가노트에서 본 적은 있지만, 내 주변에서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사회성이 결여돼 있거나 자기 신념이 특별히 완고한 작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활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계속 똥고집 부린다고 통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 쯤은 다 안다. 때로는 내키지 않고 자존심 상해도, 타협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때로는 무릎 꿇어야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람들이야 그런 이미지와 편견을 가지고 있어도 어쩔 수 없지만, “진정한 작가의 모습은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고독하게 가는 리베로의 모습이야. 그런 멋이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지.” 하고 생각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실천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생활 오래 못 간다. 몸과 정신이 망가지고 폐인이 되거나, 살기 위해 예술을 포기해야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대학생일 때나 그런 광기의 예술가 흉내를 내본다고 폭음도 하고 막살아보고도 하지만, 졸업하고 프로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가 그런 겉멋을 부릴 여유가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을 소재로 한 <취화선> 영화도 그렇고, 로댕의 제자이자 내연녀였던 불운의 천재 조각가라고 사람들에게 입력된 까미유 끌로델의 삶을 다룬 <까미유 끌로델> 영화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주인공만 바뀔 뿐이지 분위기와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천재성, 광기, 외골수적 고집, 주변과의 불협화음,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생활, 비극적 종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과 열망에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게 부합하고 그 수요와 욕망을 배 부르게 충족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영화들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이미지와 통념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삶을 다룬 <바스키아>도 그렇고, 잭슨 폴록의 생애를 다룬 <폴락>도 그렇고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소재로 한 <프리다>도 그렇다. 이외에 전설적인 예술가의 삶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은 협동심 아름답게도 하나같이 그 클리셰로 돌진한다. 그 영화들을 모조리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전부 다 그 클리셰 안에서 전개될 것이라는데 내 작품 한 점을 건다.


예술가들은 항상 클리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들에 대한 이미지는 대단히 일관적이고 클리셰적이다. 이것도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물론 영화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자 예술이고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아름답고 감동스럽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거기다 대고 꼬치꼬치 따지고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느냐고 추궁하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짜증 나고 황당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실존 인물과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 자체의 예술성을 추구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다.

따라서 그런 영화들을 비판하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그런 영화들을 막으려는 게 아니다. 영화는 영화로서 재밌으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가 심어주는 이미지와 현실을 혼동하고 일치시키고, 영화는 또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고, 사람들은 또 영화를 보고 확인하고 강화시킨다.” 는 사실 또한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에 대한 책들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본다.


스토리 텔링의 위력


어떤 전시장에 가면 (보통 미술관에서 하는 블록버스터 전시) 전시를 해설해 주는 ‘도슨트’라는 직업이 있다. 요즘에는 스타 도슨트도 있고, 도슨트의 실력과 명성에 따라 관객 실적이 몇 배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전시마다 다 도슨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전시에서는 완성도를 채우는 핵심 요소가 되기도 한다.

 

유명하고 실력 있는 도슨트는 잘 생긴 외모와 좋은 목소리 같은 인기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덤으로 가지고 있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전시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능력이야 말로 도슨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없는 감동도 만들어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무언가 오늘 내가 제대로 된 예술 감상 한 번 했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실력과 경쟁력이 있는 도슨트일 것이다.


여기서 도슨트의 딜레마가 발생할 것이다. 재미있어야 하니까. 감동스러워야 하니까.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에게 무언가 영화같이 극적인 사연과 스토리를 원하고, 그런 상품이 잘 팔린다. 자연스럽게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이 형성된 작가들도 있겠지만, 인간 삶의 이야기라는 것이 대부분 과장되고 여러 필터에 의해 각색되는 것 아니겠나? 억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들도 있고, 있는 스토리도 여러 조미료가 들어가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다 어렵게 살았어야 하고, 고난을 극복했어야 하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야 하고, 반항아적 청소년기를 보냈어야 하고, 여러 이성을 만나고 이혼을 몇 번쯤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예술가들도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이고, 그들의 삶도 보통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라면 뭔가 비범하고 또라이의 광기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격정적인 삶을 살다 갔다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과장된 스토리가 그런 편견들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고, 그런 편견과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가 예술가들의 삶을 더욱 과장시키고 극대화시키고 허구적 요소를 펌프질해 나중에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흐릿해지게 만든다. 그런 스토리들이 작품에 아우라를 더욱 형성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스토리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무런 배경 설명이나 스토리 없이도 작품 자체로 훌륭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은 적고, 사람들마다의 주관성의 차이가 크다. 작품 자체로는 도무지 무언지 알기가 어렵고,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도 판단하기가 애매한 현대미술에서, 그나마 이해가 쉽고 감동을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스토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거나 또는 도슨트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것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당 부분 진실에서 멀어지게 돼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결국은 이미지(‘시뮬라크르’)인 것인데,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게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믿음,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도슨트의 딜레마


여기서 도슨트의 고민이 발생하고 그 지점이 실력을 평가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재미없는 진실을 전달할 것인가? 재미있게 가공한 판타지를 전달할 것인가? 조미료를 뿌리고 각색을 한다면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것일까?


재미가 없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하고 정직한 도슨트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실력 없는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도슨트가 너무 양념을 많이 치고 거의 없는 사실을 만들다시피 했다고 해서 배신감을 느낄 것까지는 없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고 누구라도 그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런 것들이 팔리는데, 그쪽을 연구하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내놓는 것은 욕할 것도 그다지 비윤리적인 것도 아니다. 명백한 거짓말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으나, 따지고 보면 약간의 과장과 명백한 거짓말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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