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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Jun 05. 2024

사기꾼을 잡기 힘든 이유


잡으려 하면 어디 한둘인가?


해체주의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에 대한 양 극단의 시선이 존재한다. 일단 그의 글은 매우 어렵고 뜬 구름 같다.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크 데리다 그 자신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면서 천연덕스럽고 뻔뻔스럽게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며, 그가 철학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다른 철학자들이 왜 사기꾼한테 박사 학위를 주느냐고 반대한 적이 있다. 심정적으로는 동감도 되고, 지식 사기꾼 누구 한 명 제대로 잡아내 해부해서 응징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크 데리다만 그러냔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에 이어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한 중세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를 가리켜, “단어들을 애매하게 사용하고 이해할 수 없는 논의와 궤변들을 떠벌려 배우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려고 한 사기꾼 철학자이자 음험한 방법의 아버지”라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셸링과 그 유명한 헤겔조차도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사기꾼들이라고 비난했다.


니체는 “내가 독일 철학이 신학자들의 피로 더러워졌다고 말할 때 독일인들은 당장 이 말을 알아듣는다. 튀빙겐 신학교라는 말만 하면 충분하다.”라고 했다. 이 역시 난해하고 사변적인 말만 일삼는 철학자들을 비난한 말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고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를 두고 “철학자이자 과학자, 사이비 교주이자 돌팔이 의사의 특징을 완벽하게 갖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거론한 대상들은 다 철학사의 한 자리씩을 꿰차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말장난하고 있는 것 같은 철학자가 어디 한둘인가? 자크 데리다와 몇몇이 표적이 되었을 뿐이지, 따지려면 표적이 된 개인에게가 아니라 해당 사항이 있는 전체에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


그리고 그것을 말장난이라는 심증을 갖고 그렇게 개인적으로 규정하고 판단을 하는 것이야 각자의 자유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공식적으로 증명할 것인가? 그거 쉽지 않은 문제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야, 수준과 설득력까지 필요가 없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논리와 근거가 타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우환의 작업과 그의 공감 안 되는 논리를 누군가 나와서 제대로 좀 논파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 수일 것이다.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은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제자인 멜리서스와 제논의 논리만 해도 개소리인 것 같기는 한데, 반박하기가 힘들다.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는 했는데 그 말도 무슨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우환의 논리를 깨는 것은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깨는 것보다 10배 이상 더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점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비슷해지는 지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확신 연기와 지속성이다


중요한 것은 논리의 치밀함과 완벽성, 핍진성과 설득력 등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조금 혹은 때로는 많이 부족해도 결국 큰 상관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공격과 합리적 비판에도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는 확신(그것이 진짜이든 연기이든)과 지속성이다.


왜냐하면 백 명 모두를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장사도 100명 모두를 설득시키고 그것을 사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명 중 50명, 안 되면 30명, 그것도 안 되면 10명만 설득시켜도 충분히 할 만한 장사이고 크게 성공할 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완벽하게 간파당하고 벗겨지듯 실체와 본질이 파악되는 것 같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몇몇이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욕을 하고 비웃어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들 말고 다른 몇 명의 사람들만 믿고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들에게 팔면 된다. 종교도 마찬가지이고,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너무나 허술해 보이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도 열성 신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가 건재하는 이유, 나에게는 와닿지 않고 말장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살아남아 위대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술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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