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앞의 인간은 바람에 흩날리는 촛불일 뿐

마크 호닉스바움 <대유행병의 시대>

by Lana H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대유행병은 흑사병이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 병은 자그마치 2천5백만 명(당시 유럽 인구 30%)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1700년대까지 흑사병은 100여 차례 유럽을 휩쓸었다. 이렇게 흑사병이 창궐했던 가장 큰 이유는 깨끗하지 못한 위생상태였다. 더군다나 유럽인은 몸을 씻는 행위 자체가 영혼을 더럽힌다는 미신을 믿고 있어 좀처럼 전염병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흑사병 이후 유럽은 조금씩 공중위생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상하수도를 건설하고, 미생물학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덕분에 세균을 발견하고, 백신과 항셍제를 개발하는 토대를 마련해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인간이 전염병을 정복하고자 애를 써도 계속해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돌연변이가 출몰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은 바이러스와 그 밖의 여러 전염성 병원체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이 발전해도 의학계가 이와 같은 생태학적, 면역학적 통찰을 어떻게 놓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유행병으로 번질 위험이 그대로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p,15




지금은 인간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20세기 강대국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그들은 자연을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더 많은 자원을 채취해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게 환경보호보다 중요했다. 자연을 밀어내 도시를 건설했고, 공장에서 더 싸게 더 많이 물건을 만들었다. 자연을 개발한 대가는 끔찍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형태의 유행병이 생겨버렸다. 이를 막고자 중간 숙주 역할을 할만한 동물을 죽이고, 배를 갈라 원인을 연구했지만, 좀처럼 유행병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는 어려웠다. 잘 살고 있던 동물만 죽어나갈 뿐이었다.



페스트 완화 조치와 더불어 매서운 설치류 덫사냥과 박멸 캠페인이 실시됐다. 쥐 1000마리를 대상으로 검사가 실시됐으나 페스트 양성으로 나온 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p.134-135 (미국 로스앤젤레스 폐페스트)

홍콩 당국은 닭 150만 마리의 살처분을 지시했다. 사육된 닭에서는 문제의 바이러스가 확인되지 않은 반면, 야생 조류 검체에서 이따금씩 계속 나타났다. p.342 (홍콩 사스)

자연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가 박쥐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p.395 (에볼라, 시에라에온)



인간의 도시개발 때문에 야생동물은 서식지를 잃었다. 자연을 밀어내고, 콘크리트로 둘러싼 빌딩을 세우며 더 많은 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도시 거주민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더욱더 밀집한 공간 속에서 살게 되었다. 또한 항공, 철도,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더 먼 거리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은 먹을것을 찾고자 도시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인간과 가깝게 접촉하게 되었다. 이는 유행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조성했다.


인구과잉 문제에 국제 무역과 항공 여행이 더해지면 자연계에 생태 환경이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이 같은 병원체의 방출 사례가 점점 흔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살고, 따라서 인간의 질병 가운데 그런 평형 상태에 이른 것은 거의 없다. 경제와 산업의 급속한 변화는 인간과 미생물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p.202-203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코로나 19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이 말이 거짓으로 들린다. 인간은 자연재해, 질병 앞에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다. 지난 100년간 인간은 과학이라는 무기로 자연을 정복하고자 노력했고,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1970년 천연두 종식을 선언했을 때, 인류는 드디어 질병을 극복하고 자연의 주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끈질긴 유행병은 또다시 돌연변이라는 가면을 쓴 채 등장했고 강력해졌다. 아무리 전문가가 다음 질병을 예측하려 애를 써도 또 다른 유행병은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렇게 100년 전과는 상당히 다른 종이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의학 기술이 생기고 백신, 항셍제를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인류는 본질적으로 이전보다 더 취약한 존재가 된다. p.378
지난 100년간 발생한 유행병을 되짚어 볼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새로운 전염병, 새로운 대유행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이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지가 문제다. 전염병은 예측할 수 없을지언정 반드시 되풀이된다. p. 546





2015년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해 빌 게이츠가 했던 테드 강연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사태는 자연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전 세계에 알려준 미리보기와 같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연쇄적인 전파 경로를 추적할 의료보건 종사자들의 영웅적 노력, 그리고 감염자의 증상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바람에 돌아다니기보다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는 상황 덕에, 에볼라는 도시 중심부에서 더 큰 감염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타나는 신종 병원체가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원인처럼 공기로 매개되는 바이러스라면? 감염된 후 증상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아 감염자가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비행기에 탑승한다면? 다음번에는 그런 운이 따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참고영상


<TED 강연> The Next Outbreak? We're not ready.



<씨리얼> 코로나 19는 박쥐와 천산갑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