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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스타 Feb 23. 2024

원하면 언제든 커피 만들어주는 남편과 산다

철없는 아내의 성찰일기



 12년 차 결혼 생활을 하며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결혼 후 계속 마음의 성장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살면서 점점 더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남편은 결혼 전 보다 결혼 후, 그리고 10년이 지나면서 더욱 나에게 잘해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결혼 초반보다 지금의 결혼 생활에 만족도가 더 크다.

 로맨틱한 사람은 아니지만 다정하다. 말은 달콤하게 하지 않아서 가끔 서운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기념일을 챙기거나 이벤트를 자주 하거나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표현력이 많이 없는 편이라 12년째 교육시키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있어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진심인지 못 느끼니까.

남편은 항상 '마음이 진심이고 나는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잖아'라고 말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부부이야기, 결혼 생활 중 소소하게 일상을 보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브런치 작가 된 기념으로 틈틈이 남겨보려고 한다.




 남편은 매 순간 '고맙다'라고 말하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해왔는데 최근에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사실 바쁜 일상 속에서 집안 일도 자주 하지 못했고 (잘하지도 못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기에 남편이 나에게 해주는 일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커홀릭에서 번아웃 증상이 와서 내려놓고 쉬는 과정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12년 만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남편이 나에게 해주는 마음과 태도에 감사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알아차린 순간부터 나 또한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일을 줄이면서 가정에서의 모든 것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내가 원하면 언제든 커피 내려주는 내 남편이 더 멋지게 느껴졌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표현을 자주 하기로 약속했다.

사소한 일에서도 당연함보다 감사함을 잊지 않기로 한다.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남편이 출근 전 커피 만들어주고 출근할 때.



 서재에서 일을 하다가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커피 주문을 한다. 잠자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침형 인간인 서재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여보, 라떼 한 잔 해줘~

 주문을 받은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커피머신을 켜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고 나면 커피 마실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를 준비하면서 홈바리스타에게 질문이 들어온다.


"차갑게, 따뜻하게?" -따뜻하게

"꿀 넣어?" -아주 조금만


처음부터 주문을 잘했어야 하는데 매번 추가 질문을 받는다.

나 같았으면 "매번 여러 번 물어보게 한다. 한 번에 주문해~"라고 할텐데.


 남편은 연애 때부터 어떠한 일에도 짜증을 내지 않는점이 좋았다. 나는 짜증을 쉽게 내는 편이었고, 남편은 그런 나를 진정시켜주는 편이다. 함께 살면서 지금은 나도 짜증 내는 습관을 많이 고쳤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컵에 계절에 따라 다양한 컵에 카페라떼를 담아준다. 서재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만들어주고 출근을 하는데 이 짧은 모먼트가 나에게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주말에는 같이 만들어서 마시고 창 밖을 보며 수다를 떨다가 대청소를 시작하는데 그럴 때도 기분이 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누렸을 때 행복감이 드는데, 결혼 후 약 10년 정도는 집안일도 하기 싫었고 집에 있는 시간도 낭비되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다.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지금의 편안한 모습에 스스로가 안정감을 느낀다.

평소처럼 똑같이 커피를 내려주고 가는 모습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내 남편이 예뻐 보였다. 사실 나는 멋지다는 표현보다 애정 섞인 감정으로 예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하루에 한 가지씩 남편으로 인해 웃고, 행복감을 느끼는데 나도 남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서 물으면 "네가 웃고 행복하면 나는 그걸로 됐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닭살 돋고 '사랑해'라는 말도 잘 안 하면서 그런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한다고 뭐라고 하면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건데 왜곡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람에 대해 의심이 많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더욱 의심이 많았다. 연애할 때도 감정을 쉽게 주지 않았으며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으로 인지한 게 3년쯤 지나서였을거다.

가족이 우선이고, 핏줄이 섞이지 않은 타인을 온전히 믿는다는 일이 나에게 쉽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변화시킨 건 남편이다. 1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보여주는 마음과 태도에 '진심인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으니 더 믿지 않았던 것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 힘든 건 없는지, 어렵고 힘든 건 내가 해줄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두 사람을 좋아하는 거죠.
아내와 딸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내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풀 뜯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JTBC 신예리의 밤샘토크 중 장항준감독-


 이 영상에서 나오는 말들이 평소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당신은 언제 행복해?" -네가 환하게 웃을 때, 걱정이 없을 때~

"음식물 매일 버리려면 귀찮지 않아?" -아니, 더럽고 귀찮은 건 내가 하는 게 낫지~


가끔 남편이 이렇게 칼 대답을 할 때마다 '왜 저러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장항준 감독 인터뷰를 보면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저 마음이 진심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고, 아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마음으로 출근 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표현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게 있을까.

부부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서로에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감사함을 가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당연하게, 안일하게 생각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끝까지 기다려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일에 있어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워커홀릭, 프로페셔널한 내가 집에서는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순순히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가정에서의 서로의 역할에 대해서 쓰고 싶지 않았다. 쓰는 순간 내 상황을 직면해야 하고, 그 순간 아마도 나는 철없는 아내가 되는 건 피해 갈 수 없을 테니까.

나에게 인정하기 어려운 수식어이지만 이 표현이 딱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순간들을 모두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글을 써본다. 남편이 잘해주는 것을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그 순간들을 사진이나 글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지고 쉽게 잊힐까 봐 남긴다.


브런치에서만큼은 나를 내려놓고 솔직한 일상을 써보고 싶다. 그 기록이 쌓여 언젠가 나도 철없는 아내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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