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취준생 시절을 돌아보며

by 봄봄

이제 독일에서 회사생활 한지도 반년이 넘었다.


처음 독일에 와서 의사소통이 안되서 답답한 마음에 9개월간 독일어를 스파르타로 배웠고, 어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독일 대학 입학을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었기에 수업은 DSH 준비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대학에서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어차피 같이 9개월 달려온거, 자격증을 남겨두면 취업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나도 DSH 시험을 봤고, 독일에서 시험 본 후 한국에 휴가차 간 사이에 인터넷으로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통과-라는 결과를 받고 9개월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성취감이란걸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직장생활 10년 가까이 하고 나름 내 분야에서는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가, 독일에 와서 내 정체성이 '어학원 학생+주부' 로 한정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던 차라 더 그 기쁨이 컸다. 늘 회사 다니며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 자유시간이 좀 있었으면 했는데, 막상 한정없는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그 자유의 끝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회가 나만빼고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이 된것 같았다. 참 무서운게, 쳇바퀴 굴러가던 생활을 하던 사람은 그 쳇바퀴가 멈추면 멈춘데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곧 난 지금 뭐하고있나-라고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데는 채 1달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는 독일이었다. 내 나와바리가 아닌, 아직 장볼때 하는 독일어도 긴장이 되던... 그런 시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9개월의 공부 끝에, 그 이후 아헨에서의 취업이 생각보다 쉽지않아 답답해하며 보낸 6개월 가량의 시간에 차라리 언젠가 취업이 되겠지-라고 맘편히 먹고 주어진 시간을 즐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늘 계획 속에 나를 집어넣고 스케줄을 다 소화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삶을 너무 오래 살았던 나로서는 chill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러지 못했다.

지금 와서는 일을 하고 있고 내 일상이 어느정도 정돈이 되었으니 돌아보며 그때 그러지 말걸-

하고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chill하기는 힘들것 같다. 나도 이런 내 성격이 답답하다.-_-



여튼 그 시간 동안 참 여기저기 많이도 기웃거린것 같다.

일단 어차피 취업이 안된다면 그 동안 공부라도 하며 언어를 verbessern할 생각으로 신랑이 다니던 아헨공대에 등록했다. 문제는 경영학 학사를 한국에서 이미 마친 내가, 독일에서의 학제에 맞추기 위해 몇개 과목을 다시 학부에서 들어야 한다는 것, 그에는 무려 1~2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여러번의 경영학 석사 행정실에 방문해 상담한 결과는 참담했다. 가뜩이나 뭐든지 늦고 Amt에서의 불친절한 경험 등 이래저래 독일의 시스템에 짜증이 나있던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학사가 3년인 독일에서 4년 공부한 경영학 학사가 인정을 못받고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을 낭비해야한다는 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우선 대학교를 등록했고, 18살 친구들과 경영학 1학년 1학기 수업을 시작했더랬지...


물론 집에서 노는거보다는 나았지만 Vorlesung+Uebung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은 외국인인 나에게는 꽤나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등록한 동시에 또 근처 회사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떤 통번역 회사에 Studentjob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몇날 며칠이 걸리던 identity-check 과정은 나를 질리게 했고, 면접 후 신상관련 모든 서류를 준비해 제출을 완료하고 출근하기까지 1달 가량의 시간이 걸렸었다.

출근일정을 잡는데도 몇명과 몇번의 메일이 오갔는지 모른다. 미국회사여서인지 모든게 이메일로 진행되었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그리고 첫출근.

학생 job이었지만 독일에서 단돈 10유로라도 내 힘으로 벌어보는 첫날이란 생각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15분 전에 로비에 도착해 일할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약 30분간 나를 담당하는 인사과 직원에게 업무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제 일을 하려고 하는데 로그인이 안되는거다.

인사과 직원을 비롯한 나에게 일을 준 팀의 담당직원은 서로 어쩌고 어쩌고 우왕좌왕하더니, 출근 45분이 경과했을 때 나에게 말했다.

미국 본사에서 너의 계정을 승인해줘야하는데 지금 IT가 작업을 안해줘서 넌 오늘 일 못한다.


"Sorry, we have to send you home."


뭐지 지금 이상황...?


정말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내 심정은...

학생잡으로 1시간 10유로 받는 이 일에서 '미안한데, 너 집에 가야겠다-'라니.

너무나 기분이 상했다...심지어 거긴 울집에서 멀어서 버스타고 몇십분을 왔는데...이런 대우를 받다니...

한국에서 취업한 신입 직원한테, 미안한데 너 계정 아직 세팅 안됐어. 오늘은 걍 집에 가라. 이게 말이 되냐고..;;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하다.


이 회사는 매일 정기적으로 일하는 회사가 아니고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그 때 그 때 연락을 해서 일하러 오라고 하는, on call 업무를 주는 회사였기에 난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프로젝트가 언제 시작될지 그냥 한량없이 기다리다가, 갑자기 메일로 다음주에 시간돼? 하면 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여튼 그 경험 후 이 사람들의 프로페셔널리즘에 의문을 품게 되고, 아주 정이 뚝 떨어졌다.

난 또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나에게 일이 주어진다면 감사하게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어느날 면접의 기회가 왔고, 감사하게도 면접 당일 바로 오퍼를 주었으며, 그 때는 크리스마스 일주일쯤 전이었다.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인것 같다는 사장님 얘기가 참 고맙더라.

막상 취업이 결정되니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이제는 어느정도 이 곳 일에 적응도 많이 했다.

쓰고 보니 참 힘들었던 시간이네...


그런데 얼마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인 친구와 같이 살기 위해 온 대만+아일랜드 혼혈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 유기농 농장을 하고 있단다. 그 친구는 전공이 미술이라 딱히 일을 찾지도 않고 돈이 안되도 그냥 집에서 예술작업을 하는 친구인데, 시간이 많고 vegan이기도해서 작은 농장을 시작했다고.

그 친구가 농사지은 호박을 한번 얻어먹었는데, 정말 맛있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여유시간이 주어져서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구나...싶었다. 신선했다고 할까.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도 반년 가량의 공백기간(?)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동안, Resume에 적힐 수 없는 시간은 그야말로 공백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걸...


삶에서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보다 더 의미있는건 언제나 경제적 환산이 불가한 시간인 것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 단단해져버린 선입견과 아집도 조금씩 깨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깨져서 나중엔 정말 몽돌처럼 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