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가 길어져서 하루가 길어진 느낌.
독일은 까페가 다 6시면 문을 닫아서 퇴근 후에 들러 책을 보거나, 친구랑 수다떨만한 장소가 음식점, 집, 술집 정도밖에 없다.
퇴근 후 집 근처 까페에 가서 한두시간씩 관심사 서핑도 하고, 글도쓰고, 일정정리도 하고 하며 혼자만의 정리시간을 보내는게 낙이었던 나에겐 이게 참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집에서도 커피내려 마시고, 인터넷도 할 수 있지만 내게 익숙한 많은 물건들이 보이는 장소에서는 이상하게 정신이 분산되는 느낌이라, 까페에서의 커피한잔, 컴퓨터, 정리된 공간 속 집중할 건 딱 그 두가지인 점이 참 좋았었다.
예쁜 까페가 생겨 한번 가봐야지 싶어도 영업시간이 오전 8시-오후 6시이니 내가 출근할때 열어서 퇴근할 때 닫는 상황. 그래도 주말이 있으니 이곳의 영업시간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까페 가려면 일찌감치 아침먹고 가방 싸들고 나가곤 한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해가 길어지고 날이 좀 풀린 덕에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기도 수월하고, 운동도 밤에 깜깜한데 공원지나는게 무서워 일찍 가야했는데 좀 여유있게 갈 수 있어져 좋고, 무엇보다 '햇빛' 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다.
회사에 내 옆자리가 모두 반이상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햇살이 들어올때면 뒷통수가 따가울 지경이지만 이런상황에 정말 드문 독일에선 그마저도 행복해 웬만하면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매일 똑같은 환경, 똑같은 일과, 똑같은 장소만 겪었고, 시간이 많고 자유롭다보니 오히려 뭘해야할지 몰라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마치고 주어지는 휴식시간이 참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저녁에 집에 와서 신랑과 오손도손 저녁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조잘조잘 늘어놓고, 빈공간이 많았던 우리집에 티비도 하나 들여놓으니 둘이 소파에서 뒹굴하며 영화한편 같이 보는 이 소소한 순간들이 문득문득 사무치게 행복하다.
그리고 그 전에는 그토록 지겨웠던 내 일과와 집안일들을, 일을 마치고 쉬는날 하나하나 돌보고 정리하는 일이 즐겁다. 내 손길을 기다리던 집안 곳곳에 하나하나 눈길을 주며 챙기다보면, 집은 어느새 내 구미에 맞는, 내가 있고 싶은 공간이 되어간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나타나는게 좋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이렇게 정성을 들이면, 그 다음 일주일은 꽤나 깔끔한 집이 유지되기도 하고.
식사의 경우 그 전에는 매번 요리하는게 싫어서 외식을 많이 했는데, 점심에 동료들과 거의 항상 밖에서 먹다보니 이젠 웬만하면 집밥을 해먹는다. (독일 외식이 맛 없기도 하고 ^^;;)
이젠 주어진 재료로 대충해도 제법 맛이 나는 요리도 할 줄 알게 되었고, 그동안 그 지겹던 전업주부로서 부엌에서 보내던 시간들 덕분에 이젠 퇴근 후 뚝딱뚝딱 간단레시피로 근사한 요리 한그릇 만들어낼 수 있는 내공도 생겼다.
그 힘들던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경험치로 쌓이고 내 스킬이 된 걸 보면, 뭐든 쓸데없는 시간은 없으니 항상 뭐가 주어지든 열심히 하다보면 인생은 또 다른 좋은 길로, 배움의 길로 나를 인도해주는 것 같다.
독일어 공부-라는게 항상 머릿속에 숙제처럼 남아있었지만, 늘상 하지는 않고 치우지는 못하는 책장속 세계명작같은 존재가 된지 오래였다면, 이제는 회사에서 직장동료들과 수다와 농담, 업무 이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독어로 된 글도 읽고 한번더 정확한 표현을 묻게된다. 그러다 보니 또 독일어가 조금씩 늘어 좋고..
어느새 일상이 된 이 포인트들을 어느 순간 크게 느낄 때면, 아 참 감사하다... 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인생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인데, 이런 감사함을 안고 내가 정말 추구해야할 가치가 뭘까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올 한해를 만들고 싶다.